코엔 형제 6 - 파고

조엘 코엔은 1954년생, 에단 코엔은 1957년생이다.  

2017년 113번째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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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파고 Fargo (1996) : "응"은 "알았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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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이한 장면이 둘 있다. 하나는 보여지고 하나는 보여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욱 괴이하고, 이에 대응하는 관객의 자세에서도

그러하다. 하나는 경찰서장 마지(프란시스 맥도맨드 역)가 학창 시절 친구인 마이크를 만나는 단락인데, 영화 시작 후 1시간이

막 경과되면 전시된다. 하필 왜 마이크가 동양인 남성인가에서 '동양인'에 방점을 찍어 이견을 제출함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오히려 문득 이 장면에서 거의 공유점이 없는 데이빗 핀쳐의 <소셜 네트워크> 초반부가 연상되었음을 구술하는 편이 솔직하다. 상대에게 열의를 다해 감정을 토로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전혀 진실의 그물 위에 놓여지지 않았음을 감지할 수 밖에 없는 순간.

본편의 중심 서사인 납치 살인과는 전혀 관계없는 단락의 출연자인 마이크가 오히려 영화의 주제를 드러내는 데 가장 적절한

인물임을 갈파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데, 그가 마지에게 행하는 추근덕거림, 거짓말, 사랑 고백 등을 마냥 거짓이라고 매도함은

현명한 독법이 아니다. 이는 진실/허위의 이분법으로 제도하기보다 마이크가 자신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함을 지목해야한다.

가령, 마이크-마지의 만남 전후 단락에서 마지는 제리(윌리엄 H. 머시 역)와의 대화나 납치범 칼(스티브 부세미 역)이 여성과의

대화에는 진실의 습기라고는 없는데,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과연 그들이 그 밖으로 나갈 의지가 남아있는가가 중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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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마지를 대하는 마이크의 태도에서 애당초 그들에게 어떤 출구의 가능성도 열어놓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사를 보인다.

하지만, 문제는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본편에서 납치 범인을 비롯, 그와 관련되지 않은 인물들에게도 영화는 단순함이라는

폄하를 노출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어투이다. 그들의 대답에서 "Yes"에 해당되는 "야"라는 발음은 극 내내 무척이나 거슬린다.

마지의 부관 경찰관을 비롯해 주변의 많은 인물들이 "야"라는 단음을 발화함으로서 자신을 표면적인 자리에 안착시킨다.

그들에게 "야"는 상상력의 부재를 뜻하지만, 동일한 발음을 행하는 마지의 매순간은 의구심과 반문의 여지를 생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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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왜 마지는 이같은 권능이 가능한 것인가라는 질문이 필연적으로 제출된다. 우선 마지는 임산부라는 신성의 육체성을

외형으로 한다. 그녀는 말하자면 곧 태어날 아기의 몫까지 두 사람의 이지를 겸비한 것이 되며 다르게 말하자면 아기를 위한

태교를 위해서라도 참과 거짓 너머에 갇혀있는 이들을 통찰하는 시선을 겸비해야한다. 누군가에게는 마지와 그녀의 남편이

서로에게 발음하는 '사랑해'가 지극히 일상적인 격식이라 할지라도 그것 자체의 음성적 존재가 본편에서는 권능의 부여가 된다.​ 무엇보다 남편은 겨우 3 센트짜리 우표에 들어가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지만, 정물로부터 동작을 상상할 수 있는 예술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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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새벽에 일나가는 아내를 위해 계란을 굽고, 도시락을 가져오는 사람이다. 이에 유사한 인물은 극중에서 제리가  납치를

사주한 아내 진이나 그의 아들 뿐이다. 문제는 진에게는 거의 대사가 배제되고 납치 이후에는 묶여서 결국 소명된다는 점이다.

이들을 제외한 이들의 잔혹함으로 인해 오히려 마지와 남편의 엔딩의 중산층적 일상은 가치 보존받는다. 이에 마냥 동의할 수도

없지만, 본편은 극 내내 과연 그 정도의 중산층적 윤리라도 있느냐고 몰아붙인다. 칼과 공범인 게어(피터 스토메어 역)은

주요 살인 외에도 주차장 관리요원에 대한 모독과 살인을 추가시키며 불필요한 잡담과 단절된 침묵 위에서만 생존한다.  

무엇보다 경찰 서장 마지와 그녀의 남편 노옴은 서로를 격려할 줄 안다. 그것의 가치에 합당한 다른 인물이 부재할 때 서두에

언급한 두번째 괴이한 장면의 실마리가 풀린다. 마지가 코엔 형제의 절대악인 게어를 체포할 때 관객은 긴장감에 젖는다.

경찰은 물론 미래의 증인을 쫓아가 정리하는 게어는 납치된 여인 진마저도 보여지지 않는 장면에서 살인한다. 게다가,

마지가 게어를 발견했을 때 그는 이제껏 하지 않던 행위를 한다. 왜 게어는 공범 칼을 분쇄기에 넣어서 해체시키는 것인가?

​이는 칼이 이전에 그가 살인한 다른 인물들과 다른 위치를 점함을 드러내는데, 그 중 가장 선명한 것은 '말을 하라'일 것이다.

말의 진실성을 부인하는 코엔 형제의 살인마 계보을 이어가는 게어는 그같은 기반을 붕괴시키려는 하찮은 칼의 도발인

납치대금과 차량 분배의 제안을 더 이상 참지못한다. 그는 마을로 들어서는 입구에 있는 거대한 동상의 모습처럼 도끼를

들어 공범 칼을 처단하는데 그치지 않고 굳이 그의 사체를 가루로 만들어버려야만 한다. 이른바 칼은 게어에게 꼰대노릇을

한 것이며, 유사 아버지적인 위치를 감히 탐한 것이다. 코엔 형제의 전작에서 이같은 위치의 절대악들은 제거되어야한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임산부 서장인 마지가 게어를 체포하는 과정에서 다리 관통산 외에는 보여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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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왜 마지의 경고를 듣는 순간 게어는 소지하고 있을지도 모를 총으로 반격하지 않고 곧바로

설원 속으로 도망치기 바쁜지 의아하다. 그 곳은 엄폐물이 없어 사격 초보라도 곧 명중시킬 수 밖에 없는 장소이고 동시에

도망가기가 극히 좋지 않은 지형임에도 불구하고 게어는 하필 그 쪽으로 도망친다. 만약 본편이 흔한 스릴러물이었다면

게어는 저항 총격을 하거나 아지트인 집으로 엄폐물을 이용해 도주하고 반격했을 것이다. 초반부 검문하던 순찰 경관을

순식간에 처리하던 모습과는 현격히 다르다. 이같은 차이는 전술한 바 마지가 과연 누구인가라는 권능의 정체성을 답변된다.

영화는 마지가 다리가 총상을 입은 게어를 어떻게 순찰차 뒷편에 태울 수 있었는지를 전혀 보여주지 않는다. 그 과정을

대체하는 것은 어색하게도 교훈자적 마지의 어록이다. 마지가 게어에게 전하는 말들은 휘발된다. 왜냐하면, 게어는 결코

그것을 듣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시선은 오직 마을 입구의 거대한 도끼를 든 사내의 동상으로 향하고, 차 앞과 뒷좌석에

있는 두 사람은 결코 하나의 프레임 안에 놓여지지도 않는다. 여기에는 타자로 향하는 가능한 출구의 폐쇄만 있을 뿐이다.

그것은 마치 칼이 돈가방을 묻고 식별 기구를 놓은 다음 철조망 양끝을 보는 시선이나 설원을 조망하는 카메라와도 동일하다.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드넓고 확트여있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출구가 없다. 엔딩이 겨우 마지와 남편의 침대라는 공간에 배당됨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침대와 식탁을 제외한 마지의 집에서 자동차 시동을 요청하는 마지와 남편이 벽 하나로 단절될 때의 두려움은 이로부터

생성된다. 장식품 태양과 벌레 이미지 외에는 거의 먹통인 TV 화면의 불신이 그러하듯이 마지는 길가 햄버거 가게에서도 종업원을

보지 못하고 정신질환의 마이크를 만나고 너무도 담담한 성매매 여성들에게 "야"라고 응하는 등 그녀 역시 단절의 벽에 둘러싸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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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의 마지막 질문은 결국 영화가 마지의 출산으로 종결되지 않고 두달의 출산 기일을 유예한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의

남편은 우표 그림에서 선두가 아닌 당선 정도에 머문다. 코엔 형제의 6번째 발언에서도 주인공은 여전히 돈가방의 행방을 알지 못한 채

​종결된다. 물론, 돈은 중요한 것이 아님을 마지가 말하지만, 그럼에도 그 가방에 얽힌 인물들이 거의 죽음과 유사 죽음 하에 있을 때

맥거핀이지만 동시에 맥거핀일 수만은 없는 돈가방이 영원히 설원 어딘가에 묻혀있을 때 폐기되는 것은 단순한 머니 환타지가 아니라

다다를 수 없는 악의 실체라는 불가지론의 영원한 존속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파고'에는 봄이 오지 않거나 올 수 없을 것이다.

<파고> <분노의 저격자>의 연장 확장판으로서 속임수의 끝에 누구도 인지할 수 없는 진실의 자리를 매장시키는 부조리극이며

그 곳에 가난한 상상력의 예술과 일상적인 단어로서의 사랑의 미약한 가능성에 기대를 걸고 출산을 연기시키는 죽음의 설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