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까지 그를 12번 만날 수 있었다.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는 1912년에 출생하여 2007년에 사망했다.
그는 15편의 장편
극영화와 더불어 극
단편
, 옴니버스 단편
, 장 단편 다큐멘타리 25편을 감독했다.
3. 정사
L' Avventura (1960) :
<Gone Girl>과 <애정만세>의 선인을 만나겠다면
어떤 말로 시작해야할까.
영화사라는 단어를 호명하기에 알맞은 나라는 불과 3개국 뿐이다라는 과언이 있다.
독자는 즉각적으로 할리우드와 프랑스를 떠올릴 것이다. 물론, 할리우드는 미국 영화 내외를 지시한다.
여기에 당신은 아마도 일본 영화사와 더불어 이탈리아 영화사 사이에서 갈등할 것이다.
지금 일본과 이탈리아는 전대의 영예를 지속시키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것이다.
네오 리얼리즘과 모던 시네마 그리고 혁명과 로마라는 길 안에 이탈리아의 선인들이 있다.
그들은 누벨바그나 할리우드 장르만큼이나 영화사 안에서 후인들의 공부를 독촉한다.
그 안에 이제 찬란한 허무라 일컬을만한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60년대의 또다른 시작 <정사>가 있다.
독자에 따라 아래 기술할 1957년작 <외침>이나 1975년작 <여행자>까지 범위를 확장할 수도 있다.
흡사 그것은 동시대 일본의 오시마 나기사, 이마무라 쇼헤이의 전열과 비견하게된다.
분명 <욕망>과 <정사>는 국내 정품 비디오시장에서 다르게 발견되었다는 점은 재론할 필요가 없다.
<
욕망>이 하나하나의 화학공식처럼 해독되어야할 대상이었다면 <정사>는 이미 확답으로 목록에 올려져있었다.
이같은 표면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두 편 모두 원제와는 완전히 다른 번역제목으로 국내에 유통된다는 점인데,
기이하게도 두 편의 원제만큼이나 번역제는 나름의 적정성을 담보하고 있다는 점 역시 공유된다.
'볼 수 있다라는 <욕망>'과 '보지 못하는 것에 대한 <확대>
Blow-Up'는 폭발할 수 없는 허무로 귀결된다면
일회성으로서의 <정사>가 내미는 안식을 버리지 못하는 인간들의 <모험>
L' Avventura의 무모함이 정열된다고 할까.
여튼 본편이 국내에 일본 개봉 번역제인 <정사>라는 기이한 제목으로 극장에서 관객을 만났을 때
관객들이 이 황량한 이탈리아의 공허감을 어떻게 소화했을지 몹시 궁금해진다.
하지만 우리는 그 시대 국내의 씨네필들을 만날 수도 없고 알지도 못한다. 무려 60년대의 영화광이라는 건 !
말이 나온김에 2014년 작품성 자체를 떠나 독자들의 논란에 좋은 꺼리가 된 데이빗 핀처의 <나를 찾아줘> 역시
원제와 국내 개봉제 모두가 작품 자체와 부합한다는 재기를 드러낸 바 있는데,
그보다 20년 앞서 발표된
차이밍량의 <애정만세>와 더불어 두 작품은 본편의 영향 아래 있는 후예들이라는 점에서 길항한다.
전술한 바 어떻게 이 고립과 무기력한 저항을 이미지화할 것인가에 자신만의 미학을 선보인 두 후인에게서
본편이 가진 서사와의 유사함-사라진 그녀를 찾음-이나 엔딩에서의 조용한 눈물을 연상하게됨은 필연적이다.
조금 더 곁가지 망상으로 확대하자면 영화 속 두 남녀 주인공, 산드로와 칼라우디아가 찾는 여인은 '안나'이다.
엉뚱하지만 독자에게 '안나'는 안/나 즉 내가 아니다 Not I로 읽혔다가 기필코 존재가 아니다 Not to be로 넘쳐버린다.
본편에 안나는 존재하지도 않은 상어를 말했다가 그 스스로 실종되어 사람들의 수색 대상이 된다.
고전적인 관점에서 본편의 첫번째 화두는 '안나'는 과연 누구인가가 아니라 그것이 존재하는가가 된다.
다시 말하자면, 문제는 왜 그같은 전후의 고립과 공허가 생성되었는가라는 사회학적 관점일 수 있지만,
이는 60년대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에게서는 그것은 마치 라캉의 탐구처럼 혹은 실존주의의 고뇌처럼
이미 신 앞에 홀로 혹은 인간들 사이에 덩그러니 내던져진 존재론 그 자체였기 때문에 다만 표현의 화두만 남겨진다.
딱히 뭐라고 규정지을 수 없는 안나라는 인물의 성격화나 실종의 사유 및 해제의 불가능은 이같은 존재론의 면모가
된다.
말하자면 실종이 원래부터 있었는가 혹은 안나는 누구였는가라는 문제는 이 모험담의 구차한 변명에 불가하달까.
보이지 않지만 호명됨으로서 공포를 일으키는 상어와도 같이 안나는 자신이 인간 군상에게 그같은 존재의 각성을
담당하게될 방안으로서 실종될 필요가 있었음을 주지시킨다.
기억할 것은 안나가 그의 애인 산드르에게 갑작스런 '정사'를 유도하고 이후에 바다와 섬 사이로 사라졌다는 점이다.
그녀의 실종과 관련해서 가장 훌륭한 이미지는 드넓은 바다 위에 잠시 생기는 환영의 돌개바람일 것이다.
독자는 희뿌연 그것이 필름의 낡음인지 실제 촬영한 자연현상인지, 인공의 장치인지조차 명확히 알 수 없다.
두말할 나위 없이 그것이야말로 영화의 존재론 그 자체이며, 있음과 없음의 경계파괴라는 허무의 반란이다.
굳이 안나가 사라진 돌섬의 황량함을 주무대로 하지 않더라도 영화 속 거의 모든 건축물이 냉정한 온도는 지속된다.
그나마 그 틀을 깨기위해 클라우디아와 산드로가 성당 종탑에서 종을 울릴 때 어딘가에서 소리가 반향하는 것은
일회성에도 불구하고 환희를 포기할 수 없는 극 내 인물들의 캐릭터에 대한 음성적 육체감일 것이다.
건축물 외벽 조각을 섬세하게 그려낸 젊은 이의 스케치를 고의적으로 훼손하는 산드로의 행위는
영화 혹은 예술이 과연 진품일 수 있는가라는 낡은 논제보다는 그같은 시도 자체를 견딜 수 없는 내적 허무에 가깝다.
얘기를 되돌리자면, 지난 <나를 찾아줘>에 대한 체론님의 지적은 매스미디어에 중독된 인간 내부의 황폐함이었다면
본편은 매스미디어를 동원하지 않고 곧바로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인간의 공허로 정주행하는데,
산드로가 안나의 행적을 쫓는 과정에서 거의 톱스타 수준으로 남성 대중의 시선을 획득하고 그것을 즐기는 여성이
영화의 결말부에서 산드로와 소파 위에서 밀회를 하는 성매매 여성이라는 장치는 산드로 자신의 욕망을 드러낸다.
여기에 클라우디아(모니카 비티 역)가 어느 마을에서 뭇 남성들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것을 포갤 수 있는데,
그녀는 그들을 피하기 위해 상점으로 들어가 짙은 감색의 '물감'을 엉겹결에 주문하는 데
곧이어 상점에 들어선 산드로가 이를 취소함으로서 에로티시즘적 욕망에서 도피로의 예술로의 가능성을 폐기한다.
이는 여성의 누드화를 그리는 10대 청년이 클라우디아의 친구와 맺는 성적 욕망과도 궤를 같이한다.
독자는 엔딩에 도달하기 전에 이미 '나를 찾아줘 -
Gone Girl'의 안나가 찾아질 수 없는 유령임을 알고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같은 진실에 대해서 저항할 수 밖에 없는 인간군상의 실존에 대한 이미지를 기다리게된다.
그리고 <애정만세>의 엔딩에서 양귀매의 기나긴 울음이 다소 지나치다고 처음 판단할 정도로
본편에서
클라우디아와 산드로의 눈물 그리고 멈출듯말듯 망설이지만 결국 산드로의 머리로 가는 클라우디아의 손길은
1년전 <소매치기>에서의 로베르 브레송의 신체의 자취마저 연상될 정도로 극도로 위태로우면서 동시에 나약하다.
우리가 살아가는 순간의 안간힘에 대한 조용하지만 냉정한 지적으로 이 눈물과 손길을 부인할 수는 없을 듯 하다.
<정사>는 너를 찾아서 내가 너가 되는 것이 아닌, 본래적으로 아무도 내가 될 수 없는 근원적인 배경에 대한 여행이며
그 곳에서 감히 예술이 가능한가에 대해 과격한 부정으로 응수하는 무기력한 작가들에 대한 동조극이다.
4. 외침 Il Grido (1957) : 길을 떠나면 돌아올 수 없다.
본편은 교육방송 일요시네마를 녹화한 비디오테이프를 통해 일독했다.
이번 여정의 1/3지점에서의 정리 혹은 표지판 부착.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장편 데뷔작에서부터 1960년 <정사>까지 드러난 흥미로운 두 소재의 반복.
속도와 의상, 독자는 <어느 사랑의 연대기>에서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고급 자동차의 굉음을 들었다.
이는 본편 <외침>에서 물 위에서 경주하는 모터 보트들의 물살로 되돌아오는데.
나머지 두 편에서도 유사 사례(헬리곱터의 비행과 착륙)를 거론할 수 있다면 속도는 무시될 수 없는 요소다.
카메라가 중핵의 서사를 두고 굳이 외면가능한 대상에 시선을 돌린다면 그것은 문법상 일종의 은유일 수 있다.
여기서 은유란 감독의 영화 언어 중 하나가 그 대상의 포착으로부터 연상될 수 있다는 의미라면
20세기의 기계문명의 발명품들이 일으키는 굉음, 물살, 먼지 등은 일종의 스펙타클의 소외,
시선의 담지자가 시선을 제어하지 못하고 주체를 상실하는 미혹의 상태를 생산함으로서 인물의 공허에 근접한다.
당연하게도 추가할 것은 본편에서는 거의 자취를 찾아볼 수 없지만,
전작 두 편과 <정사>에서 화려하게 드러나는 의상의 과시을 재삼 지적하는 것이다.
이는 이미 재론한 바와 같이 남성-속도감과 더불어 여성-의상을 통해서 동일한 스펙타클의 소외를 발생시킨다.
주인공 그녀들이 소규모 패션쇼장을 비롯 내면의 공허를 위장하기 위해 의상의 치장에 몰두함으로서
영화의 독자는 빠를수록-화려할수록 더욱더 표피 안으로 몰락하는 군상의 면모를 확인하게된다.
이같은 맥락에서라면 본편은 전술한 다른 세 편의 영화와는 다소 간극을 보인다.
일단, 인물이 더 이상 부르조아라는 계급이 아닌 노동자 남성으로 급강하하는데다가,
로드 무비라는 장르성 안에서 고전적인 공식을 경유한다는 색감을 완연히 드러낸다.
동료인 페데리코 펠리니의 1954년작 <길>의 잠파노(안소니 퀸 역)가 연상되는 남자 알도의 육체와
그가 걷는 길의 흙먼지와 여인들과의 사연은 로드 무비의 거죽을 거부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동료의 <길>이 이미 길 위에서 영원히 지속될 수 밖에 없는 광대의 운명이라는 골격이 있었다면
본편의 남자 알도의 '길'의 여정은 명확히 그 이유에 동의할 수 없을만큼 충동적이다.
비록 애인 이르마의 이별 통보에 분노가 들끓었다고 해도 굳이 어린 딸 로시나를 대동해서 무작정 나서야할까.
이르마와 같은 마을에 살 수 없다라는 생각이 의심스러운 것은 영화가 이르마의 새 애인의 존재에 대해서
7년동안 연인으로 지냈던 알도를 밀어낼 정도로 중요함에도 정작 프레임 안에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은 미심쩍다.
이것은 미스테리로서의 인물 추구라기보다 한발 물러서 영화의 오프닝이 이르마 남편의 사망통보였음을
새삼 되살림으로서 해제될 수 있는 지점일 지 모른다. 독자는 이르마의 남편과 이르마의 사이가 어떤 것인지
명확한 정황을 알 수 없지만, 대사를 통해 이르마의 남편이 돈을 벌어 송금했다는 추정은 가능하다.
즉, 이르마의 남편은 과도하게 말하자면 길을 떠나는 알도의 예언으로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르마의 남편과 알도 두 사람은 모두 이르마를 사랑했지만 순식간에 보이지 않는 존재에 의해서
이별을 통보받거나 통보조차 받지 못하고 길을 떠나거나 죽음에 이른다.
여기서 다시 강조할
것은 이르마의 애인이 보여지지 않는다는 점임은 재론의 여지가 없는데,
그것(는)은 다시 말하자면 보여져서는 안되거나 보여질 수 없는 무형의 존재인 것이다.
그러므로, 알도가 길에서 옛애인 엘비아를 비롯 두 명의 여인을 만나고 정작하지 못한 이유는 장황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정착하지 못함의 각각의 어떤 사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운명처럼 길을 떠날 때 이미 더 이상 알도는 정주할 수 없다는 존재론 안에 갇혀버렸기 때문이다.
부유하는 존재, 이것이야말로 이르마의 애인을 카메라가 보여줄 수 없는 이유가 된다.
이는 충분히 정착 가능한 상황을 제시함에도 알도의 위반된 선택에서 독자가 능히 유추할 수 있다.
더불어, 알도가 다시 그의 고향으로 되돌아왔을 때 보게되는 벽보의 공항 활주로 건설 내용이
그로 하여금 자신이 왜 정착하지 못했는지 그의 귀로가 가능한지를 엿보는 시금석이 된다고 상정할 때
알도의 자살은 마치 <어느 사랑의 연대기>에서 여주인공 남편의 자동차 사고사와 동일 선상에 놓인다.
<여자 친구들>에서 로제타의 죽음과 <정사>에서의 안나의 실종을 여기에 포개놓는다면
영화가 사랑을 잃거나 사랑을 믿지 않을 때 취하는 죽음과 실종의 그림자는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가
자신의 현대 영화에서 인간을 존속불가능한 실체로 간주하는 형식의 반복을 발견할 수 있다.
이 형식 안에서 굳이 본편의 정주하지 못함의 사유를 되새기는 것이 정작 필요한 지는 의문이다.
엘비아의 거절, 주유소 여인의 알콜 중독 아버지, 성매매 여성의 배고픔 등은 개별적으로 작동할 수 있지만,
그 모든 것은 결국 알도가 그 자리에 머무를 수 없음을 위한 고단한 변명에 불과할 뿐이며
귀향한 자신의 마을마저 '떠난다'는 의미의 공항 활주로가 될 때 알도는 그의 정착의 따른 방법을 각성했을 것이다.
그것이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50년대 인간 존재론인 죽음과 실종임은 전술한 바와 같다.
그같은 맥락에서 '외침'이라는 본편의 반어적인 제목은 차라리 '절규'라고 읽는 것이 적절하다.
그리고 독자는 뭉크의 회화 <절규>의 가르침을 '
The
Cry'라고 쓰고 읽기를 병행하게 될 터이다.
<외침>은 길 위에 정주할 수 없는 로드무비의 고전적 어법을 재활용하면서
가혹하게 50년대의 인간 군상을 폐기하고 있는 감독의 시선을 고착하는 유령의 귀향곡이다.
(유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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