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 밖을 나서자 다른 관객들이 이렇게 말했다.
"곡성과 비슷한데."
하지만 나는
오히려 곡성을 보았을 때 허정 감독의 2010년 단편 <저주의 기간>이 떠올랐다.
물론 누가 누구의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첫 상업영화 숨바꼭질로 성공을 거둔 뒤, 그는 자기가 그리고 싶은 세계의 원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화를 보면서 같은 그림찾기 처럼 그의 단편에 나왔던 장치들을 발견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잃어버린 것을 찾기 위해 어두운 통로로 들어가는 주인공.
초록색에 집착하여 테이프로 가구들을 둘러싸는 모습.
20여분에 지나지 않는 짧은 영상물이었지만, 여운히 상당했다.
보는 이를 압도하는 힘이 있었기에
만약 이 감독이 단편에서 보여준 역량을 그대로 장편까지
끌어올수만 있다면 과연
어떨까하는 기대감을 갖게 하는 작품이었다.
그리고 그 기대는 첫 상업영화 숨바꼭질에서 산산조각났다.
집을 가진자와 가지지 못한자의 관점에서 풀어나가는 기괴한 소재는 신선했다.
그런면에서 단편 <저주의 기간>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이야기의 긴장감은 후반으로 갈수록 느슨하고 산만해졌다.
그럼에도 그의 두번째 영화를 보고 싶었다.
감독의 역량이 제대로 발현되지 않았다고 믿고 싶었기 때문이다.
장산범은 인간의 목소리를 흉내내어 사람을 홀리는 상상의 동물이다.
감독은 친근하게 알고 있는 목소리의 실체가 다를때 오는 공포감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하는데
탁월한 선택이었다.
친근한 목소리를 통해 기척을 주고 목소리의 실체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조여오는 공포가 핵심이다.
이 영화는 그것을 힘조절을 하며 무수히
반복한다. 그럼에도 루즈해 지지 않는다는 것은 소재가
가진 힘이 그만큼 안정적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염정아의 초중반 연기와 몇몇 조연들의 어색함은 몰입을 방해한다. 아이를 잃은 상처에 경찰에게 불신감을
드러내는 희연의 히스테리칼 태도는 이해가 가지만 디렉팅이 클리셰적이고 몇몇 대사는 아애 빼버리는게 낫다고 느껴지는
장면들이 있다.
박혁권의 연기는 안정적이긴 하지만 몰개성적이고 특징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경찰역할과
멀리서 지켜보는
무당 아지매는 말할것도 없다.
이러한 초중반의 허술함을 상쇄시키는것이 희연이 숲에서 발견한 여자아이 신린아의 연기다.
딸의 목소리를 흉내내며
극의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기능적인 역할을 넘어서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지탱한다. 배우로서의 아우라가
느껴졌다. 나홍진 감독의 추격자에 나왔던 김유정 이후로 그런 아우라를 풍기는 아역 배우는 오랜만이었다.
어쨌거나 이 영화도 전작과 마찬가지로 감독이 풀어놓는 주제는 집착하는 인간의 불안과 광기다.
희연이라는 캐릭터는 5년전 준서라는 아들을 잃은 상처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어딘가 살아있을 거라 믿는다.
치매를 앓는 시어머니의 기억에 집착하는 이유도 아들의 마지막 목격자이기 때문이라는 설정은 관객들의 감정이입을
돕는 적절한 설계이다.
그리고 이러한 설정은 토속신앙과 결합된다.
하지만 그 만남이 썩 자연스럽게 맞물리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것들이 갑자기 희연에게 불쑥 찾아오기 때문이다.
80년대에 찍힌 여자아이 사진을 내미는 경찰과 장산범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찾아온 이웃집
탬버린 무당아지매 장면은
보기 괴로웠다. 서둘러 이야기를 진행시키기 위한 초조함이 드러난 것 같았다.
전작인 <숨바꼭질>처럼 중후반부의 긴장감이 무너지고 상투적인 결말을 향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그 순간 영화는 뒷심을 발휘한다.
<장산범>은 후반이 압권인 영화다. 뒤로 갈수록 세지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이 압도적으로 세다.
희연이 남편과 시어머니를 찾기 위해 동굴로 들어가는 장면부터 완전히 다른 영화가 된다.
마지막 준서의 목소리를 내는 여자아이와 함께 동굴로 들어가는 희연의 모습은
기괴한 신화를 본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그 장면이 주는 무게감과 임팩트는 상당하다.
희연은 진짜 아들이 내는 목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동굴로 되돌아간다.
그녀의 집착은 사실이 아니라 믿고싶은 것을 향한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그녀가 미쳤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오히려 중후반부까지 쌓아왔던 장면들을 통해 그녀의 행동을 이해하게 된다.
장산범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살고 있는 괴물이다. 그녀가 헤매는 동굴은 실상 우리가 헤매고 있는
어두운 자아다. 괴롭고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 앞에서 인간의 마음은 신을 만들었다.
아들의 목소리와 함께 동굴로 향하는 희연과 신의 구원을 바라며 기도를 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무엇이 다른가?
어쩌면 우리는 진실이 아니라 믿고싶은 것에 현혹당하고 싶어하는 존재라는 것을...
(후방)
화보 찍는 파란색 란제리 일본 처자 .mp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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