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빗 크로넨버그 5 - 네이키드 런치//M. 버터플라이

​ 나는 이제까지 그를 20번 만날 수 있었다.

데이빗 크로넨버그는 1943년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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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네이키드 런치 Naked Lunch (1991) : 당신의 언어는 항문기의 죽음을 통과했나요

 

객담으로 시작하는 것을 이해해주기 바란다.

본편은 개인적으로는 거의 드물게도 3번 만난 작품이다. 이는 작품의 난해함과는 관련이 없다.

이번 여정에서 몇몇 작품이 오래전 정품비디오로 인연을 맺고 다시 만난 것과 유사하게

2000년에 본 조악한 복사본 비디오는 화질이 어찌나 최악이었든지 극의 특별한 곤충효과들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2005년에 막 어둠의 경로를 알게된 이후 두번째 만난 것이 실질적인 첫 감상이라고 해야겠다.

그 때 이 글을 썼어야 하는 데 너무 늦은 감이 있다.

 

감독의 최신작 <코스모폴리스>는 추상 표현주의 미술로서 10년의 간격을 두고 수미쌍관(?)했던 것처럼

본편은 잘 알려져있다시피 비트 제네레이션 세대의 윌리암 S. 버로우즈의 동명 소설에 바탕을 두고 있다.

개인적으로 로스트 제네레이션이나 비트 제네레이션 등의 미국 문단의 경향성에 대해 그리 호감도가 높지 않다.

이들 미술과 문단의 성공이 당대의 문화적 공기와의 연관성보다 과잉된 도피의 결과가 아닌지 둔감해진다.  

 

그들이 프랑스의 누벨바그들만큼도 대중적으로 기존 제도에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고

기껏해야 환각 따위로 도피했음에 기본적인 불만도 있지만,

이같은 미국 예술계의 경향성을 굳이 찬란한 수사로 지켜볼 이유를 이 땅에서 찾을 수 있는지 의문스럽다.

그들이 돌아가자고 했던 원시적인 무정부주의에 대한 찬반 표명이 아니라

그것의 가능성 자체가 미학적으로 탐구될만큼 새로운 것인지가 궁금할  따름이다.

고대의 박카스에서 20세기의 LSD로의 재료적인 이동 이외에 본질적인 차이가 과연 있을까.

 

본편의 뼈대는 부인할 수 없을 정도로 원작 소설에서 기인했을 것이고,

원작 소설은 잘 알려져있다시피 소설가 자신의 개인적 경험에서 길어올려진 것이다.

재언할 필요도 없이 1991년에 데이빗 크로넨버그는 자신의 세계에 근 30 여년 전의 소설을 끌어왔는가를 점검하는 것은

본편을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좌표 안에 놓고 받아들여야한다는 의미가 된다.

즉, 윌리암 S. 버로우즈의 소설이 아닌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영화로서의 <네이키드 런치> 보기.

 

그렇다면 필요한 것은 그의 전작들의 함성을 메아리로서 다시 듣는 회고 일진대

제일 먼저 선연하게 다가오는 것은 무의미할 정도로 반복의 의미조차 찾기힘든 신체의 변형이다.

이는 카프카적 환영 안에서 예술의 가능성(존재론이 아닌) 찾기라는 본편에 대한 간략 40자평으로 번역되어도 좋겠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데이빗 크로넨버그는 비트 제네레이션의 고전을 빌어오면서 자신의 그림자를 상당 부분 손실당한다.

 

그의 과학자들이 가졌던 좌표는 언제나 몰락과 죽음이었다면,

본편에서 로이 슈나이더가 맡은 의사이자 마약제조 총책은 결코 문책받지 않거나 종결까지 당당하다.

문제는 그의 생존 자체가 아니라, 그가 주인공 윌리암 리를 타 지역(과거의 동구공산권 )으로 파견보내는 저력의 근거에 있다.

기존의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과학자들은 그 자신이 주인공(<데드 링거>)일 때에도

자기 파멸과 세계 오염에 대한 책임을 모면하지 못하는 데 반해 본편은 철저히 자신의 구역을 장악하고 건재하다.

 

주인공 남성, 그의 영화는 거의 모든 작품에서 언제나 백인 남성이 극을 주도하고 종결시킨다.

여성은 항시 보조적인 위치에 머물거나 사건의 원인으로 작용하거나, 동반자로 보인다.

본편에서 주인공 윌리암 리(피터 웰러 역)는 애시당초 처음부터 준비된 중독자이자 작가이다.

윌리암의 부인 역할의 조안(주디 데이비스 역)은 차라리 각성과 거듭남의 재료로 제공된다.

이같은 변형은 이전에 어떤 작품에서도 조짐이 보이지 않았다는 점에서 급격한 진전이 아니라 신체 변형에 가까운 파격이다.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세계가 원작자 윌리암 S. 버로우즈의 환영에도 무리하게 침울해진 것은 아닌가 의심스럽다.

 

결국, 변명이자 해답은 작품 전체가 하나의 환영을 위한 우화라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막말로 이같은 맥락이라면 모든 것이 용서된다.

항문으로 말을 하는 타이프라이터, 부인 살해, 살충구제 원, 수생 지네의 검은 가루, 살충 퇴치약, 동성애 등등은

원작을 떠나 본편에서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세계로 들어서면서 다만 무너져야할 당위를 지닌 현실 그 자체의 유비가 된다.

 

본편의 음영을 데이빗 린치와 비교하는 것은 우스꽝스럽다.

두 감독 사이에는 두말할 나위 없는 현격한 간극이 있거니와,

본편은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세계 안에서도 특이한 외동아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편은 그나마 현실 그 자체를 근거로 했었던 전작들을 완전히 벗어나

도저히 돌아갈 필요조차 없는 환각 이전의 세계 대신에 환영계의 종횡무진 스파이물이 되기를 염원한다.

요원과 보고서라는 단어가 횡행하는 외피에서 거의 모든 등장 인물은 자신의 정체성 너머의 반전을 가진다.

 

주인공 윌리암 리가 살충 구제원에서 살인범으로 다시 사건을 풀어가는 요원이자 파견원으로 바뀌듯이

조안은 두 번 죽어야하고, 밴웨이 의사는 여성 파델라의 가죽을 쓰고 벗으며,

클로퀘트(줄리안 센즈 역)은 남성 동성애자에서 인간의 피를 빠는 거대 수상 지네로 변신한다.

여기에 항문을 말하는 타이프라이터나 인간의 말을 하는 머그웜프 등은 굳이 첨가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이같은 등장 인물들의 변신을 그 자체로 주목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는

그것들은 모두 주인공 윌리암이 자신의 소설을 써내려가며 만들어낸 환영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관객이 본편 안으로 들어가기를 원한다면

당신이 제일 처음으로 혹은 끝까지 주목해야하는 발언은 술집에서 작가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주인공 윌리암 리가 한마디 툭 던지는 발언 "모든 이성적인 것을 제거해야돼"라는 말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제 1차 세계 대전 이후 로스트 제네레이션이 그러햇듯이

아우슈비츠 혹은 히로시마 이후, 비트 제네레이션들이 간 마약의 선지자 노릇이

68년을 전후로 한 히피족과 록 뮤지션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든지간에 

1991년 사막의 푹풍이 지나갈 즈음, 데이빗 크로넨버그가 이같은 현실 배제를 선택한 감회는 위 대사 한 마디로 집약될 수 있다.

 

사실주의가 지적했듯이, 인간은 사물 그 자체가 아닌 사물의 허상에 경탄해왔고,

20세기의 대량 복제 시기에 시물라시옹으로 한층 더 내공을 쌓은 작금에 이르러 

현실 그 자체를 아예 타자화 시켜버리는 일련의 환각의 나라로 오세요라는 시나리오는 차라리 지체감마저 든다.

주인공 윌리암 리가 부인 조안의 머리를 관통한 이후 떨어져 굴러떨어져 발 아래로 닿는 위 장면의 플라스틱 컵에서 주목할 것은

또다른 세계로 집입할 수 있는 열쇠라는 상징이 아니라 그 세계조차 텅 비어있다는 현실적 기호에서 찾아져야한다.

 

항문으로 말하는 타이프라이터와 자신의 수액으로 인간을 중독시키는 머그웜프 등과 남성 동성애가

노골적으로 프로이드적인 항문기와 구강기로의 퇴행을 의미한다고 해독할 때 이는 무지한 반역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그같은 불가능한 뒤로감기를 수행하려는 태도를 취하는 것은

소설이라는 예술의 운명, 즉 상상계에서 상징계로 진입하기를 거부하고 실재계로 잠영하고픈 욕망에서 찾아져야한다.

 

자기검열이냐 아니면 정성들인 퇴고냐 따위의 문학 논란이 무의한 것은

발화된 음성언어의 휘발성보다 더욱더 계산할 수 없을 정도로

본질 저 너머 기표의 행렬 속에서 자신을 과신하는 문자언어의 불구성에서 근거하는데,

본편에서 정작 보고서를 작성하거나 소설을 써내려가는 것은 인간이 아닌 타이프라이터 그 자체라는 설정은

그것들이 항문으로 음성언어를 내뱉는 것 만큼이나 문자 언어의 실재계에 대한 출입불가능성을 의미한다.

즉, 인간은 결코 문자로 상징계 질서 너머로 들어갈 수 없지만, 예술은 끊임없이 그것을 환각처럼 시도한다.

주인공이 더 이상 펜과 같은 과거의 기구를 통해서 문장을 달성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후반부 이브 클로퀘트의 차를 타고 밤도로를 주행할 때

주인공 윌리암 리가 들려주는 항문의 성공과 입의 퇴행이라는 노골적인 프로이드성보다 주시할 것은

자동차 불빛으로 보여지는 길가의 낙타와 인간 군상이 지독히도 가련하고 나약하게 보인다는 점이다.

자동차 불이 꺼지면 도대체 어떻게 길을 나아갈 수 있을지 모를 정도의 깊은 어둠 하에서

그들이 의지하는 시력의 점멸은 오히려 그들을 어둠의 나락으로 초대하는 무모한 초대장이니,

그저 스쳐지나가는 단역일 뿐인 그들의 행렬에서 관객은 인간 군상의 존재론을 찾는 편이 적확할 것이다.

 

엔딩은 차라리 데이빗 크로네버그의 초기 3부작과 인접해있다.

여성 변형체 3부작에서 세계는 완연히 버려지고 오염되게 방관해야할 어떤 것이고,

남성 초능력 2부작과 <비디오드롬>의 예수 재림과 수난극은 꺼꾸로 구원되어져야할 가능성이었다면

지극히 개인적인 남성들의 이형환위의 초상이었던 <플라이>와 <데드 링거> 이후에 도착한

본편 <네이키드 런치> 역시 그 자신이 아니라 남성이 속한 세계 자체를 무화시켜버리는 확장을 택한다.

이것이 미학적으로는 진전일 지 모르지만, 거기서 상징계는 너무도 간단히 무화된다는 점은 무책임하게 느껴진다.

 

만약, 그것만이 내 세상,

환각으로서의 초대장을 받고 또다른 소설 창작을 써내려가는 것만이 황홀경에의 안착이라 한다면

그것이 가련한 어느 여성의 죽음 이후에 당도한 것이라해도

무시무시한 눈물의 공포를 애써 포장하여 엔딩에 묶어둔다고 해도

우리는 그것을 1991년의 CNN 이라크 침략전쟁의 생중계 쇼와 더불어 즐길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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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결코 구강기와 항문기로 퇴행하지 않을 수 있다고 자신감있게 다짐할 수 없다손 치더라도

지금 우리는 실재계로 진입하기보다 상징계를 휘두르는 아버지의 법 앞에서 계속 지쳐가야 옳다고 말할 수도 없다.

본편의 여정이 죽음과 환각과 중독과 창작과 탈피라는 매혹들을 전파함으로서

단 한번의 제대로 된 점심이나 성관계 대신에 마약 중독의 천국을 지지하는 것에 선뜻 동의할 수 없는 이유가 동일하다.

 

 

<네이키드 런치>는 사막의 폭풍을 환각의 천국으로 위로받으려는 자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도피의 만찬이지만,

구강기와 항문기의 퇴행이나 실재계로의 도착, 양쪽에 모두 무관심한 이들에게는 잃어버린(릴) 나에 대한 자각진단서가 된다.  

  

  

 11. M.버터플라이 M. Butterfly (1993) : 향락에게는 성관계가 없다.

 

영화가 흥미롭지 않다면 배우 이야기로 시작하는 편이 재미를 줄 수 있다. 

데이빗 크로넨버그는 음악, 촬영, 의상, 캐스팅 등의 제작진이 으례 그렇듯 일종의 군단을 이루며 작업한다.

그들이 감독의 세계에 동의하든 아니든간에 관계없이 익숙한 이들과의 작업은 효율적이라는 측면에서

많은 작가군 감독들(할리우드의 고용 감독이 아닌)은 그들만의 제작진 집단을 거느리고 연출한다.

 

몇몇 감독은 여기에 특정한 배우 페르소나까지 포함시켜서 그들과 10년 이상을 작업하기도 한다.

데이빗 크로넨버그는 자신만의 특정한 배우 페르소나를 지정하지 않는 부류의 작가이지만,

초기작에서 간간히 두세번 가량 출연하여 익숙한 얼굴의 단역이나 조연들이 있다.

다만, 주연으로서는 동일 배우가 재기용되는 경우는 드문 편인데,

최근작에 연이어 출연하는 비고 모텐슨을 제외한다면 제레미 아이언스가 거의 유일하다.

 

의미심장하게도 제레미 아이언스는 40대로 접어들면서

루이 말의 <데미지>와 애드리안 라인의 <로리타>에 주연으로 등장했는데.

이 작품들 사이에 본편이 삽입되어 있으며 이들 작품들의 내러티브가 일종의 금기적 성욕으로 상통함은 기괴한 우연이다.

생산을 위한 본능이 아닌 성장 이후에 나타나는 충동으로서의 성욕, 그것들은 결국 실존적 죽음으로 이어진다.

 

상징계의 질서를 넘어서서라도 다다르고자 하는 욕망은 고통의 경로와 접합하면서 향락(주이상스)가 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 원작을 소설가 자신이 영화 각본 각색에 참여한 본편을

데이빗 크로넨버그가 <네이키드 런치> 이후 <데드 링거>의 제레미 아이언스를 재기용하여 배치했을 때

즉각적으로 전작에서 환각작용에 불과했던 남성 동성애와 이성-감성의 분리불가능성에 대한 다른 전환을 엿보게 된다.

 

1964년에서 1970년 즈음의  6년동안의 역사는

서구 유럽에서는 68 운동으로, 중국에서는 문화 반혁명 파시즘으로 기억되는데,

본편은 그 와중에 유럽(프랑스)-중국, 여성-남성이라는 이분법의 지리적 신체적 오리엔탈리즘을

표면적인 테제로 자극적으로 전달하려 하는데, 이는 실화에 기반했다는 자막으로 인해 힘을 얻는다.

 

문제는 여장 남자의 오페라 경극 가수가 프랑스 부영사를 완벽하게 속여 스파이 활동의 수단으로 삼는다는 거죽이나

제레미 아이언스가 맡은 프랑스 부영사가 존 론이 연기한 경극가수 송 링링에게 함몰되는 과정의 전달에 있지 않다.

다시 말해, 남자가 남자를 사랑했다는 사건의 진실은 본편에서는 그저 표면에 불과하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는가?

본편이 친절하게 설명하는대로, 두 문화 사이의 간극이라는 답변은 유치한 오리엔탈리즘의 반복이다.

정작 참으로 친절한 답변은 본편의 엔딩에서 찾아져야 할 것이다.

 

 

왜 제레미 아이언스가 맡은 부영사는 자신의 민완한 업무 실력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정치적 판단(베트남 침략전쟁 등)으로 인해 본국으로 귀환되고 이혼과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져야하는가

실화나 소설과는 관련없이 이 난감한 사랑이 한 남자를 추락시켜야하는 이유를 찾는 것이 본편의 열쇠가 된다.

 

위 장면 안에서 제레미 아이언스는 자신이 그토록 오리엔탈리즘적으로 염원했던 대상인 나비 부인이 스스로 된다.

여기서 실마리는 여장남자인 존 론은 정작 부드러운 음성과 은밀한 성적 체위에도 불구하고

제레미 아이언스를 진실로 사랑한다기보다 정보제공원 정도로 활용한다는 실없는 느낌에서 찾아져야한다.

즉, 존 론의 역할은 제레미 아이언스의 충동이자 향락의 대상에 머문다.

 

그-그녀인 존 론에게는 별도의 주체성이 필요하지 않지만, 

그가 자신을 담당하는 공산당 당원여성과 하는 대화 "경극에서 왜 남성이 여성을 연기하는가?"라의 문답에서

본편의 사랑이란 실은 오리엔탈리즘의 가면놀이를 벗어나

상징계의 질서를 포기하고 도전하고싶은 실재계로의 진입에 다름 아니다.

 

고급 회계사로서 능력을 보이던 제레미 아이언스가 한순간 사랑에 빠지고

그로부터 급박한 추락을 겪는 과정이란 결국 향락 이후에 도달할 수 밖에 없는 죽음충동에 다름 아니다.

실제로 엔딩 장면에서 제레미 아이언스는 자결하고, 존 론은 본국으로 송환된다.

 

논자들이 본편에서 거북하게 느낄 68 운동의 가두 시위 장면에서 제레미 아이언스가 물대포를 맞으며 거리에 서 있거나,

문화 반혁명 파시즘의 홍위병들이 경극 예술의 전통 기구들을 불에 태울 때 

카메라가 기꺼이 그를 그 자리에 배치시키는 이유는 단순히 시대성을 발현하려는 것이 아니라

어색하게도 두 개의 전혀 다른 성격의 혁명이 공유하는 성질, 새로운 아버지를 찾는 여정이 갖는 맥락이

제레미 아이언스가 존 론에게서 가지는 사랑의 성질과 동일한 향락에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기존의 도덕률과 제도, 관습 등을 뒤엎어버리는 운동의 기운은 그것이 혁명이든 반혁명이든간에

도저히 가능할 것 같지 않은 남성 동성애가 아닌 남성과의 사랑이 가지는 고통이라는 이름의 쾌락과 같은

실재계로의 불가능한 진입 로맨스 서사와 동일하다는 것이 본편의 전략이 아닐까.

그러므로, 두 남자 사이에는 본능이 아닌 충동으로서의 성관계는 없다고 해야 옳다.

 

이와 관련해서, 본편에서 주의해야할 장면은 제레미 아이언스가 중국 사교계의 여왕과 같은 지위의 여성이

먼저 유혹하여 성관계를 맺기 직전에 그녀의 나체를 보는 제레미 아이언스의 시선인 데,

거기서 그는 자신이 평소 상상했던 여신이자 사교집단의 여왕을 맞는 모습에서 다소 당황스러워 보인다.

이 성관계는 본능적이면서 동시에 상징계의 질서에 순응하는 규율에 매달린 주인공의 면모를 알린다.

 

 

<M.버터플라이>는 본능이 아닌 충동적 대상과의 성립되지 않은 성관계의 부재를 통해

1960년대의 두 혁명적 기운과 동일하게 실재계로의 진입하지 못하고 죽음충동에 이르는 향락의 로맨스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