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까지 그를 7번 만날 수 있었다.
장률은 1962년생이다.
1. 중경 重慶 (2007) : 언어, 이방인을 만나 황폐의 무늬로 오발되다.
지난 '망종 芒種(2005)'의 푸른 보리밭은
오갈데 없는 절망이 흐드러지게 피는 기차도 사람도 없는 종착역에 막 도달한 접경을 쏘아올렸다.
그리고 그 여인은 다시 새로운 아들을 얻어서 "경계(2007)"의 몽골로 도피하였고
그 곳에는 한국의 이리와 중국의 중경을 거쳐 몽골에 정착했을 사내가 나무를 심으며 맞이했을 것이다.
그 여정의 중간역에는 서로의 몸으로 잔혹의 텔레파시가 연결된 이란성쌍둥이거나
어디로 간다한들 결코 만날 수 없는 '사람'의 흔적을 찾으려는 도플갱어가
자신의 고향말을 거부하며 보이지 않는 선으로 한국의 이리와 중국의 중경을 연결짓고 있다.
감독의 이제까지의 전작에 대한 무례하고도 불순한 이야기 연결에는 그의 데뷔작 "당시 唐詩(2004)"가 빠져있다.
이제 관객은 '중경 重慶'에서 그 '唐詩'의 소리가 위세를 잃고 울려퍼지는 것을 들을 수 있다.
장률의 영화 단 두편만으로 그의 문법을 말하기는 이르지만
확실히 그는 '망종'이후 이번에 개봉한 두 편의 작품에서
일회용품적인 단조로운 클리쉐의 연쇄와 폭발하는 폐허 위의 잔해를 줍기만하는 버린 은유에 도착한 듯 하다.
사실주의의 빈 공간으로서의 잔혹한 자본주의 시간의 산화들이 깡통소리를 내는 것을 들으며
예견된 단절과 거세된 욕망의 폭발과 무덤덤하지 못한 연대는
매번 손을 넣어 받아들던 커피자판기의 공장용 설탕과 프림맛 이상을 휘저어내지 못했다.
현실의 단락을 선뜻 익숙하게 건네는 풍경과 인물들로 직조한 거의 공식화된 프레임들의 연속선
가령, 냉랭한 벽의 무서운 공허와 힘없는 주인공의 대비
대사를 지우고 소음과 동작으로만 채운 소통 불가의 가족이라는 혈연공간의 막장
끓는 물과 난무하는 칼과 총 옆에서도 무덤덤한 폭력에의 일상화
사랑과 관계와 욕망의 삼차선 경계가 사라진 몸 혹은 성기의 들뜬 공개된 발작
안토니오니와 양덕창과 차이밍량들에서 가져왔던 외면. 한숨. 울음의 삼차원 후예들의 파티
그 처연한 익숙함에도 적으나마 매혹을 감추지 못하는 '重慶'으로
장률의 다섯번째 두글자 한문 제목의 영화를 반색하며 맞이한다.
영화에서 감독이 선택한 관객의 첫 시점은 어느 건물의 가운데 통로로 물통을 들고 걸어오는 남자로 시작된다.
양쪽으로 막힌듯이 느껴지는 벽면과 마치 숨구멍을 찾아 기어오르는 벌레처럼 느껴지는 인물의
첫 발성에 답하는 화면 밖의 여인의 대사가 들리고 카메라는 옆으로 움직여 당나라 시인 이백의
시 한구절을 칠판으로 들려준다.
북경어를 가르치는 여선생은 당나라 시 구절을 내내 외국인 수강생을 상대로 강의하는데,
주인공인 이 여성은 실상 중경 토박이이고 이제는 의도적으로 자신의 고향말-사투리를 잃어버렸고
이제는 상실 대신 득음한 북경어로 국외의 이방인들을 위해 다시 자신의 정체성을 부인하는 것을 반복한다.
이런 연유로 강의실의 수강생은 면면을 달리하고 그 때마다 여주인공의 시를 읊는 '말'은 떨리기 마련이다.
이 장면에서 '당시 唐詩' 의 구절에서 배어나오는 물화일체의 정감은 영화 본편과
완전히 동떨어지면서 다른 장면에서 이층 노인과 아버지, 폐품수집상 노인에게서 대책도 관객도 없이 흘러나오는데
이 노랫가락은 이후 들리는 고통에 찬 비명과 성매매 호객행위, 깡통소리, 파티음악, 성기구의 민망한 효과음과 대비를 이룬다.
唐詩의 발성의 끝에서 동일한 맥락에서 노인들의 인터내셔낼가를 뜬금없이 맞이할 때 그것을 덮는
차량들의 경적소리와 소음을 듣는 관객은 이미 익숙한 물리법칙을 경험한 이후와 동일하다.
연금을 받을 정도의 먹물 지식인이자 중경어 重慶語로 당시 唐詩를 읊고 인공 폭발-철거된 도시의
잔해를 수거하고
자신의 성욕에 충실한 아버지-노인이 무정형의 과거-고향의 무방비의 인간주의를 은유한다면
주인공 여성은 자본화된 사회와 규격화된 일상에 무반응하고 사랑-관계-성욕의 경계를 적절히
울타리치지 못하고
한국에서 온 김선생과 경찰반장과, 맹인노숙자의 관계 안에서 막연한 충동으로 자신을 내몰아가다가
망자가 된 모의 무덤에서 가족 간의 소통과 한탄을 늘어놓은 이후에 미약한 사랑과 연대로 옮겨간다.
여주인공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유일하게 한번 타는 버스라는 공간 안에서
붉은 두 화기 상자의 숨겨진 폭발성 바깥으로 중국의 노상 폭력은
쌍둥이 영화 '이리'의 과거 폭발의 현전성과 숨겨진 성폭력의 변화된 양상이다.
버스의 가로선과 다리 난간의 가로선과 저 멀리 물 위의 선박들의 가로선이
여인의 세로선의 십자가 시점으로 완전히 분할 배신당하지 못하는 근접한 공간의 초점은 오랜 황량이 된다.
영화에는 모두 세번의 나신, 각각 여성과 남성의 맨몸이 그대로 벗겨지지만
왠지 성기 주변의 음모들은 그 자신의 에로틱함을 잃어버리고
자신의 직업적 상징-성노동자와 경찰-조차도 희미하게 탈색시켜버린다.
즉, 그들은 정작 그들이 가장 솔직해져야할 시간에 말이 없이 걷기만한다.
전대의 지식인-현대의 성노동자가 지폐 몇 장으로 맺어지는 반대편에 선 여인은 오히려 관계의 기회를 얻는다.
아버지의 런닝은 딸의 티셔츠에 무채색의 색감 그대로 타락되어 유전된다.
하지만, 보이는 대가와 보이지 않는 대가, 즉 타인 간의 관계 사이에 절대적 경계 긋기는 무의미하다.
그래서 여인은 아버지가 떠날 때쯤에야 성노동자 그녀에게 손을 얹을 수 있다.
가능한 모든 장식을 배제하고 프레임 안에 폐허의 정서를 양육하고
주위를 조금식 집어삼킬듯한 검은 어둠이 두 인물의 허리춤까지 침범하였다가
유일한 교집합인 백의의 옷가지 앞에서 한발 주춤거리는 식탁이라는 공간
딸은 아버지를 두고 쓰레기를 정리하러 가던 시작에서
고기 반찬을 준비하여 아버지의 밥 그릇에 올려주는 이해의 시간으로 이동된다.
영화 내 제시되는 부르조아적 공간들에서 찾아볼 희망은 없다.
그들이 관계를 가지는 호텔방에서도 수강생들과 벌이는 파티 연회장에서도
소유할 수 있는 것은 발사하지 못할 권총과 폭발로 사라져버린 성기뿐이다.
정작 경찰반장에서 발사되어야 할 총알은 도리어 김선생의 성기 부재로 결론지어져서
여인의 관계 열망과 성욕에 대한 죄책감의 채찍질로 돌아오는데
엉뚱하게도 이는 맹인 노숙자에의 심적 강간으로 해소되는 망극함을 낳는다.
감독의 전작 '망종'에서 보여진 공간/시간/관계의 부침의 황홀한 조선 김치의 익힌 내음이
전혀 실리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선배들의 모더니즘의 지난 사진첩에서 익히 발견할
액자틀과 음성들만으로 채워진 '중경'은 분명히 그의 작품이 변화되고 있음을 노정한다.
아직은 판단 유보할 지점이지만, 관객으로서는 우려에 가득 찬 전환으로 남을 듯 하다.
(유머)
스마트폰 중독 테스트.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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