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모니 코린 1 - 구모//스프링 브레이커스

나는 이제까지 그를 4번 만날 수 있었다.  

하모니 코린은 1973년생이다.

 

1. 구모 Gummo (1997) : 고양이 대학살은 영원히 반복된다.

21세기의 이상한 나라(미국)에는 앨리스는 없을 수 밖에 없지만,
프릭스적 마을에 몰아닥친 태풍 전후 모습에는 행복은 여전히 뻑큐해지고,
10대들의 어줍잖은 욕망은‘고양이 대학살‘에 머문다.
자 그래! 우리 마음껏 자학해보자.....   

 

윗 글은 2006년에 본편을 처음 본 이후의 단평이다.

아직 그 이후로 수정하지 않았다.

 

이제 와서 재차 호들갑을 떨고싶지는 않다.

나는 영화잡지 기자도 아니고 영화 일기랍시고 잡문을 남기는 일개 블로거일 뿐이다.

2006년으로 7년, 충분히 지난 날의 충격이 상쇄되고도 남을 시간이 지났다.

더불어, 하모니 코린이라는 젊은 천재가 끼친 영화적 영향력 등의 영화 가십에도 관심없다.

지금은 한 명의 독자로서 하모니 코린의 근작 개봉을 맞아 단지 한 감독과의 여정이라는 일반적인 길을 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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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소설의 가장 큰 차이는 그 안에 서사, 이야기가 있는가에 달려있을지도 모른다.

몇몇 시의 조류에서는 시에서도 이야기를 조립하고 다시 무너뜨리기도 하지만,

시는 여전히 극단적인 이미지의 건축성으로 인해 독자를 환상에 빠뜨리는 장르다.

물론, 언어 놀이와 사칙 연산까지 동원한 현대시의 경우는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하모니 코린의 영화는 콜라쥬다.

본편에서 그는 버려질 자료 화면에서나 찾을 수 있는 장면들을 오프닝으로 사용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내러티브라고는 거의 없는 본편의 촬영분 모두가 기실 자료화면에 다름 아니다.

그는 시퀀스라고 호명할 수 없는 장면들을 엮어가는 것을 거의 풀칠에 가깝게 넘겨버린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나 나옴직한 토끼 모자를 착용한 소년이 주는 이미지로부터 출발하여

엔딩의 뚱뚱한 두 여성이 누운 침대 자락의 노래가락까지 각 장면은 거의 개별적인 시로 이루어져있다.

민감한 독자라면 개별 이미지들이 준비했다는듯 던져질 때 일종의 기대감과 리듬감에 쉽게 동화될 수 있을 것이다.

 

그같은 맥락에서 본편의 인물들은 굳이 이름으로 호명될 이유가 없다.

클로에 세비니가 연기한 금발 소녀 자매부터 다운 증후군 장애인 여성들,

토끼 모자를 쓴 소년과 웨스턴적 무법자를 연기하려는 소년들,

하모니 코린 자신이 연기한 남성동성애자와 흑인 왜소증 남성 동성애자,

한바탕의 팔씨름 이후 의자를 부수며 화풀이를 하는 일단의 어른 집단,

모금을 통해 자본을 축적하는 사기꾼 흑인 소년 형제

그리고 실질적인 극의 중심축인 고양이 사냥꾼 소년 두 명과 그의 가족, 무엇보다 고양이의 사체들

 

더불어 남성 동성애자와 복장 도착자, 근육맨과 청소년 성매매, 근친 상간과 여성 동성애

자살과 노동자 계층, 폭풍과 그로 인한 죽음과 손상들, 거대한 몸집의 비만

독자는 이같은 소위 비정상 혹은 혐오라고 칭해질 것들의 개체 각각에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

알다시피, 그것들은 단지 시의 재료, 콜라쥬의 부속품들일 뿐이다.

 

사진 기술이 발명된 이후로 서구 유럽의 화단은 리얼리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너무나 선명하게 현존을 복사해내는 사진 기술을 넘어서 그들은 사물의 본질을 그리는 리얼리즘을 시도한다.

( 포토 리얼리즘을 여기에 포함시킬 수 있다면 그들이 사진이야말로 리얼리즘의 본질 구성이라고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인상파로부터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신사실주의 , 팝아트, 미니멀리즘, 추상 미술까지

일련의 소위 모더니즘 미술이라고 무리하게 포괄되어 호명되는 각기 다른 미술의 조류들은

결국 문학이 그러했던 것처럼 지금 우리 곁에 있는 시공에 놓여진 사물과 인간의 본질을 고민한다.

물론, 사진 미학 역시 여기에서 그다지 멀지 않다. 그같은 의미에서 예술은 언제나 리얼리즘이었을 것이다.

 

'퍽큐 시네마 FUCK YOU CINEMA' 의 근원을 어디까지로 잡을 것인가는 위 화단의 리얼리즘 논쟁만큼이나 복잡하다.

최초의 영화인 <기차의 도착>에서 보인 관객들의 반응을 토대로 심리적인 퍽 큐를 연상하는 이부터

멜리어스의 <달세계 여행>에서의 우주선이 달의 눈에 박히는 장면에서 정치적인 퍽 큐를 추리하는 이까지 다양하다.

 

무엇보다 공포 영화들, 호러 장르들이야말로 가장 오래되고 공개된 퍽 큐 시네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호러물이 도덕 거부, 무정부주의, 자폐성, 금기 위반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프로이드를 동원하지 않더라도 호러물은 세계 속에 웅크린 퍽 큐적 감성을 포스트 모던적으로 회귀시켰다.

토드 브라우닝의 <프릭스>가 본편 이후에 가장 먼저 연상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호러물은 결국 내러티브와 재억압과 일시적힌 해제를 동반하지 않을 수 없는 장르성을 지녔다.

그것은 당연히 호러물의 쾌감이고 장르적 생명력 중 하나로서 오랫동안 유지되어왔다.

차라리, 선배로서의 자리는 포르그 파로흐저드의 <집은 검다> 다큐에서 찾아져야 할 것이다.

 

시와 리얼리즘과 퍽 큐 시네마의 조합 그리고 향연

현실을 어떻게 재현하는가는 어떻게 현실을 바라볼 것인가에서 시작하지만,

최종적으로 그것을 어떻게 배태할 것인가로 종결된다.

이야기로서의 현재에 대한 거부 그리고 도저히 구제불가능한 현재에 대한 도촬

그것이야말로 출구를 발견할 수 없는 죽음의 국가에 대한 정확한 재현임을 본편은 주장한다.

 

누구도 주인공이 될 수 없지만, 모두가 정상인이 될 필요 없는 놀라운 자유 안에서

그들이 긍정하는지 부정하는지조차 판단할 이유 없는 장소의 풍경화로서 본편이

퍽 큐 시네마로서 자신을 승인하고 깃발을 들고 나감을 당당히 선언할 때

실상 독자가 품는 것은 자극적으로 수용될 수 밖에 없는 이미지의 내러티브로 한정된다.

이 지점을 작가적 상업성으로 판단할 것인가는 각자의 수용 미학에 달렸다.

 

동시대 퍽 큐 시네마의 동지들,

가스파 노에, 래리 클락, 미이께 다까시, 벨라 타르, 라스 폰 트리에 등에 비해

본편의 하모니 코린이 독자들에게 좀 더 감상적이며 관습적으로 다가가는 전략을 활용했음을 부인할 수 있을까.

차라리 내러티브의 창작보다 더 손쉽게 콜라쥬와 시적 리얼리즘 안에서 본편은 한 조류의 대표격으로 살아남은 것이다.

 

더불어 말할 여기까지의 한계

극 중 고양이 사냥은 분명 '고양이 대학살'을 연상하게 한다.

더 이상 산명한 역사적 사료만이 아닌 민속으로서의 주변 기록으로서의 가능성을 설파했던

'고양이 대학살'에서 중요한 것은 물론 그것이 왜 발생했는가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더불어, 고양이 대학살로 인해 점검해질 수 있었던 1730년대의 노동자의 참혹한 실상도 제외시킬 수 없다.

이로부터 프랑스 대혁명의 근원을 추정하건말건 포스트 모던 역사학의 지적들은 새겨들을만 하다.

 

본편을 비롯한 퍽 큐 시네마의 한계는 '고양이 대학살'과의 대비에서 찾을 수 있다.

시스템 그 자체로 잠입하기를 거부하고 외곽 변두리 마을에 머문 카메라는

결국 지속적인 퍽 큐는 발사가능하고 그것을 무기이자 미학으로 선점함으로서 늠름해질지는 몰라도

시스템 내부의 악마성으로부터 구조 혹은 대안의 가능성으로 기능할 수는 없다.

알다시피, 퍽 큐 시네마는 분노를 위한 정치된 미학이기를 거부한다.

이 조류의 본질은 그 자체로 가능성이기도 하지만, 폐쇄성이기도 하다.

 

전진한다기보다 뱅뱅 제자리를 돌 수 밖에 없는 좌표,

토끼 소년이 죽은 고양이를 관객에게 직시하도록 카메라 앞에 갖다대고

비만의 두 자매가 성경을 조롱하는 것이 독자가 본편을 수용할 수 있는 최대치 전략이다.

말하자면, 당신은 본편을 긍정할 것인가 부정할 것인가가 아니라, 신선했는가로 몰락해버릴지 모른다는 근심.

 

 

<구모>는 20세기 말에 목도해야할 리얼리즘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젊은 회의주의자의 미학 선언이며

퍽 큐 시네마라는 조류 안에서 은근히 이미지의 전략으로 선회한 고개 숙인 고양이 대학살의 패배가이다.

 

 

2. 스프링 브레이커스 Spring Breakers (2012) : 비키니의 시, 남근종말의 계절을 꿈꾸다. 

 

15년이 흘렀다.

단편을 제외한다면, 그는 겨우 5편의 장편을 내놓았다.

2009년작 <트래쉬 험퍼스> 이후에 3년만의 귀환.

전주영화제에서 상영한 바 있는 <트래쉬 험퍼스>는 지프 떼끄에 가야만 볼 수 있다.

하모니 코린은 여전히 거기에 그대로 있는가?

 

본편 <스프링 브레이커스>는 전혀 엉뚱한 자리로 귀환한 하모니 코린을 발견하게 한다.

<엔터 더 보이드>의 가스파 노에나 초기의 송곳을 잃어버리고 최근 범작을 양산하는 미이께 다까시,

은퇴했지만 흑백 양식 안에 전형화되어같던 벨라 타르와 이제 장엄한 오페라를 연주하는 라스 폰 트리에보다

더욱 더 독자를 당황하게 만든 퍽 큐 시네마의 좌장격이었던 24살의 청년이 이제 마흔이 되었다.

 

그가 비키니 여대생들을 이끌고 강도와 갱스터 무비를 지향하면서

해변에 한 대의 하얀 그랜드 피아노로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노래할 때

15년전의 예기는 그저 하나의 범죄 내러티브 안에서 숙성된 것이 아니라 노화되었음을 직감한다.

 

이야기가 완전히 불필요한 것도 아니고 무시할 수도 없겠지만,

본편이 가지는 얼개는 환타지로 만들어졌음에도 무언가 다듬어지기를 거부하는 고삐 풀린 망아지 같다.

4명의 비키니 걸 중 셀레나 고메즈의 등장과 퇴장에서 오는 정형화된 이질감.

여전히 매 숏을 읽기보다 전체를 시퀀스 하나로 받아들여지기를 열망하는 구성에도 불구하고

낡은 페미니스트들에게는 유치한 남근 탈취와 정복에의 허무주의로 받아들여질 본편에서 특별히 첨언할 말이 있을까.  

 

제목의 '봄방학'이 지시하는 삶의 어떤 시기부터

그녀들의 강도행각, 등장과 더불어 보이는 남근 흡입의 성적 흉내,

유치하고 무모하리만큼 반복해서 도용하는 플로리다 광란의 해변 정경까지.

우리는 지금 1996년의 <트레인스포팅>을 다시 2012년에 리와인드해서 보고있는 것인가.

 

물론, 하모니 코린은 지금이라는 시간을 부여하기를 거부하는 전략을 유지한다.

지금이 없음으로 인해 벌어지는 현재의 실종, 즉 실제감의 이질화는

끊임없이 플래쉬백을 통해 시간과 장소를 교배시킴으로서

어느덧 <키즈>와 <켄파크>의 여대생 비키니 버전으로서의 좌표를 획득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뜬금없는 에일리언(제임스 프랭코 연기)라는 호명과 흑인 갱스터 집단의 제거 등에서

갑자기 묻어나오는 부질없는 허무주의와 귀환이라는 해방구는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강행되는 환타지 총격전은 고양이 대학살의 후속편인가

비키니의 폭발력, 원자폭탄과 비견할 일상의 패티쉬의 생산력이라는 초딩적 읽기조차 거부하지 못하는

무분별한 남근 배열과 제거가 결국 봄방학의 종결로 귀결된다면 본편은 퍽 큐의 대상과 방법을 잘못 선택했다.

 

<스프링 브레이커스>는 현란한 비키니의 광증으로 시적이었던 지난 날을 완전히 지워버린 채

힘없는 이야기와 스타성이라는 뒤집어진 형광물질로 덮인 가소로운 파우스트 드라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