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단 하나뿐인, 24시간 문 여는 약국 ..

김유곤(57)씨 약국은 경기 부천시에 한 곳뿐이지만, 고객은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각지에서 온다.

치통을 앓다 일산에서 달려온 손님, 두드러기가 올라 경기 광명시에서 약을 사러 온 손님, 기침이 멎질 않아 서울에서 찾아온 손님 등 아주 골고루다.

다른 곳엔 없는 약이나 용한 만병통치약을 파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고객들이 먼길 마다않고 찾아오는 이유는, 약국 운영이 조금 특별하기 때문이다.

그의 약국은 밤이나 새벽에도 문을 닫는 법이 없는, 우리나라 유일한 ‘365일 연중무휴 약국'이다.

24시간 약국

교대 근무는 없다. 약사는 김씨뿐이다. 그러니 약국을 떠날 겨를이 없다. 새벽 1시가 되면 문을 잠그지만, 잠은 약국 내에서 청한다.

잠결에 벨 울리는 소리가 들려오면 몸을 일으켜 손님을 맞는다.

일요일엔 당번 약국이 문을 여는 동안엔 잠시 쉬지만, 그 약국이 문을 닫으면 오후 8시 즈음부터 다시 일을 시작한다.

2010년 6월 19일부터 시작해, 7년 넘는 세월을 김씨는 그렇게 살았다.

특별한 계기가 있어 시작한 일은 아니었다.

“2010년 5월쯤 대한약사회에서 공문이 왔는데, 지역별로 24시간 문을 여는 ‘레드약국’을 최소 하나씩 운영해 달라는 내용이었어요.

새벽 2시까지 여는 ‘블루약국’은 지원자가 있었는데, 레드 쪽은 나서는 사람이 영 없었어요.

어차피 누군가는 해야 하니, 그냥 제가 맡아보겠다 했죠.”

6개월짜리 시범 사업이었지만, 기간 종료 후에도 김씨는 약국 문을 닫지 않았다.

“솔직히 야밤에 누가 오겠나 싶었어요. 그런데 뜻밖에 방문객이 제법 있었어요. 일과 중 나갈 틈이 없어 밤늦게 퇴근하고서야 약국에 들른 직장인이나, 새벽녘에 아이 감기 증세가 도졌는데 문을 연 병원이 없어 급히 찾아온 분 등등이요. 늦은 시간에도 약이 필요한 사람이 이렇게 많다는 걸 알게 되니, 오후 8시 즈음이면 문 닫고 떠나버렸던 지난날의 제가 부끄럽게 여겨지더군요. 그래서 자발적으로 밤샘 약국을 운영하기로 마음먹었어요.”

지난 7년간을 통틀어 약국 아닌 곳에서 잠을 잔 날은 2개월 정도뿐이다.

“2015년에 즈음 아내가 약국을 찾아와 샤워장도 없는 곳에서 모기장도 못 치고 지내는 꼴을 보고, ‘24시간 거기 있는 건 정말 아닌 듯하다’며 저를 뜯어말려서 두 달 간은 근처에 자취방을 얻고 새벽 1시에 퇴근했어요. 그런데 좀 지나니, 새벽에 찾아온 분들이 문을 얼마나 두드렸는지 문가에 붙여둔 스티커가 너덜너덜해져 있더라고요. 약을 찾는 분들이 그렇게 많으니 외면할 수가 없어서, 도로 방을 빼고 약국에서 지내기 시작했어요.”

시키는 사람이 없는데도 자진해 중노동을 한 통에 한때는 제법 오해를 받았다.

“약국을 비밀 노름장으로 의심하거나, 이혼해 일부러 집을 찾지 않는 것이리라 추측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지금이야 다 풀린 오해죠. 요샌 도리어 고맙다는 말 참 많이 듣고 있어요.”

요즘엔 알음알음 소문이 퍼져 밤과 새벽 시간대에 찾아오는 손님도 많아, 동이 틀 때까지 푹 자본 기억이 별로 없다 한다.

“새벽 1시에서 아침 8시까지 손님이 적어도 다섯 분 정도는 찾아오세요. 대부분은 멀리서 오시는 분들이죠. 오죽 급하셨으면 어두운 밤에 서울이나 경기 북부에서 여기까지 운전해 왔을까 싶어요. 이렇게 약국이 문을 닫은 때에도 애타게 약을 찾는 분들이 있으니, 심야약국이 더 있다면 좋을 텐데 말이죠.”

남는 건 없다시피

24시간 영업으로 더 벌어들이는 돈은 그리 많지 않다.

“보통 약국이라면 문 닫았을 시간대에 오는 손님이 많이 쳐서 50~60명 정도 되는데요.

대부분 처방전 없이도 살 수 있는 간단한 약을 구하러 오시니 제 입장에선 남는 게 별로 없죠.

사실 사람 안 쓰고 저 혼자서 밤새 운영하는 게 그 때문이에요. 야간 근무약사를 쓰면 인건비 감당이 안 돼요.

지금이야 당연히 전기 요금 떼고 생각하면 평소보다 이익은 더 나지만, 노동시간 대비 버는 돈은 낮에 비하면 없다시피 하죠.

밤샘약국 한 뒤로 신용 등급을 높여달라 요청한 적이 있는데, 거절당했어요. 수입이 늘지 않았다면서요.”

그럼에도 심야약국을 닫을 생각은 없다 한다.

“밤중엔 200원짜리 관장약 파는 곳이 없어 경기 안양시에서 여기까지 오신 분도 있었고, 애가 밤새 보채 뽀로로 비타민 하나 사러 경기 파주시에서 안개 길을 뚫고 찾아오신 분도 있었어요. 제가 24시간 영업을 그만두면 이런 사소한 약이나마 구하질 못해 온 밤을 고생하는 분들이 많아지겠죠. 그렇게 생각하면 저 편하자고 손을 놓는 건 도리가 아닌듯합니다.”

건강과 체력이 허락하는 한, 밤샘근무는 유지할 계획이다.

"아직까진 당수치가 좀 오르고 살이 약간 빠진 것 외엔 괜찮은데요, 영원히 이렇게 살 순 없을 것 같습니다.

함께 봉사해주는 약사 분들이 더 많아지면 좋을 텐데 말이죠. 물론 절대 억지로 할 일은 아니지만요."

기부와 봉사

  사실 김씨는 그나마 밤샘으로 더 번 돈도 거의 기부한다. 19년째 매달 150만~200만원 정도를 어려운 이웃을 위한 기부금으로 내고 있다. 지난 8월엔 경기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매월 일정액을 기부한다는 내용으로 서약하고 ‘나눔약국’에 이름을 올렸다.

그 밖에도 자유학기제 시행 이후 약사를 꿈꾸는 중·고등학생을 초청해 강연과 실무체험교육을 해준다거나, 홀로 지내는 어르신 약 관리를 돕고 복용법을 안내하는 등 지역민을 위한 사회봉사활동도 한다.

“나라에서 장사 열심히 해서 돈 많이 벌어 잘 먹고 잘 살라며 제게 약사 면허증을 준 건 아니겠죠.

국민을 위해 약을 잘 관리하고 그들이 아플 때 신속 정확하게 도움을 주라는 뜻에서 약사를 키우지 않았을까요.

저는 그저, 나라가 면허를 주며 함께 부탁한 그 사명을 다하고 있을 뿐입니다.”

글 jobsN 문현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