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 아닌 자동차 고장 수리 쿠폰 제공…‘성의 없다’ 비판
‘디젤게이트(배출가스 조작)’ 파문을 일으킨 아우디폭스바겐에 한국 소비자는 안중에도 없는 것일까.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가 뒤늦게 100만원 상당의 자동차 수리 쿠폰을 지급하기로 했지만 ‘꼼수’란 비판이 나오면서 차량 소유주들은 오히려 부글부글 끓고 있다.
아우디폭스바겐이 차량 소유주에게 100만원 쿠폰을 지급하겠다고 밝히면서 논란이 뜨겁다. 사진은 서울시내 한 폭스바겐 전시장 모습. <사진 : 윤관식 기자>
▶폭스바겐 100만원 쿠폰 속내는
▷‘리콜 빨리 마무리하려는 꼼수’ 비난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는 2016년 12월 22일 국내에 등록된 모든 폭스바겐, 아우디 차량 소유자에게 100만원 상당 쿠폰을 제공하는 ‘위케어 캠페인(
We
Care
Campaign
)’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대상 차량은 배출가스 조작 차량으로 밝혀진 12만5000대를 포함해 국내에 판매된 아우디, 폭스바겐 차량 27만대가량. 2016년 12월 말 기준 아우디폭스바겐 차량 소유자는 새해 2월 20일부터 쿠폰으로 차량 유지보수, 고장 수리 서비스를 받거나 차량용 액세서리를 구매할 수 있다. 요하네스 타머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 총괄사장은 “소비자 믿음에 보답하고 브랜드 신뢰를 되찾고자 위케어 캠페인을 준비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피해 보상을 기피해왔던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가 갑자기 100만원 쿠폰을 지급하기로 한 속내는 뭘까.
자동차 업계에선 “아우디폭스바겐 리콜 승인 조치를 앞둔 상황에서 ‘브랜드 신뢰 회복’이란 그럴듯한 포장 아래 리콜을 빨리 마무리하려는 꼼수”라는 의견을 내놓는다. 환경부가 소비자 리콜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 현금 보상을 요구한 상황에서 현금 보상 대신 쿠폰 지급이라는 고육책을 선택했다는 의미다. 이번 보상안이 환경부 리콜 승인 결정에 영향을 미칠 거란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아우디폭스바겐이 소비자 재산, 정신적 피해 보상 없이 리콜 이행률을 높이고 인증서류 위조차량 재인증, 검찰 기소 등 산적한 이슈에서 유리하게 결론을 내려는 의도”라고 꼬집었다. 아우디폭스바겐 피해자 소송을 진행 중인 법무법인 바른은 “환경부가 리콜 방안을 졸속 승인하게 하려는 조치로 의심된다. 환경부와 검찰이 말려들지 않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아우디폭스바겐이 제시한 캠페인은 2015년 11월 미국에서 실시된 ‘굿윌프로그램(
Good
-
Will
Program
)’과 유사한 형태다. 당시 미국에선 절반은 카드, 절반은 현금을 지급했다. 하지만 한국에선 그로부터 1년이나 지나서야 현금도 아닌 100% 쿠폰 형태의 보상안을 제시한 셈이다.
금액도 차이가 크다. 폭스바겐은 디젤게이트 파문을 일으킨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소비자 1인당 최대 1만달러(약 1200만원), 5950캐나다달러(약 530만원)가량을 보상금으로 지급하기로 했다. 총 보상금액은 미국의 경우 100억달러(약 12조원), 캐나다는 21억캐나다달러(약 1조9000억원)에 이른다.
하지만 한국 소비자에 대해서는 아무런 보상안도 내놓지 않은 상태다. 뒤늦게 발표한 100만원 상당 쿠폰 역시 현금이 아닌 고장 수리 쿠폰 형식이라는 점에서 소비자 불만은 오히려 커지는 모습이다. 쿠폰 지급안을 두고 온라인상에는 “현금 없이 불필요한 쿠폰이 웬 말이냐” “중고차값 폭락은 어떻게 보상할 거냐” 등등 불만이 들끓고 있다. 때문에 국내 소비자들이 캠페인을 선뜻 수용할지는 불투명하다.
2013년 폭스바겐 티구안을 구매한 A씨는 “미국, 캐나다처럼 거액의 배상안까지는 아니더라도 뒤늦게 내놓은 조치인 만큼 소비자 불만을 달랠 만한 방안이 담겼어야 한다. 기껏 내놓은 방안이 현금도 아닌 차량 고장이 나야만 쓸 수 있는 쿠폰 형식이다. 수입차 특성상 엔진오일을 교체하거나 부품 1~2개 바꾸면 금세 쿠폰이 소진된다. 중고차 가격 하락 등 산적한 이슈에 대한 보상안 없이 ‘현금 대신 쿠폰으로 해결하겠다’는 식의 무성의한 조치에 실망했다”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 측은 “이번 이벤트는 디젤게이트 관련 보상과는 상관이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해명을 두고도 논란이 뜨겁다. 한국과 같은 조작 논란이 일고 있는 유럽 여러 나라를 의식한 것으로 풀이되기 때문. 만약 한국에서 보상 조치라고 규정되면 유럽에서도 최소한 이 금액 이상을 보상해달라는 요구가 쏟아질 수 있다. 아우디폭스바겐 측은 여전히 한국 소비자에 대해선 국내법을 근거로 현금 보상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한편에선 국내 소비자를 홀대했던 아우디폭스바겐이 갑자기 100만원 쿠폰 지급안을 들고나온 건 그만큼 사정이 다급하기 때문이란 분석도 나온다.
아우디폭스바겐 입장에선 리콜 승인도 중요하지만 당장 급한 건 판매금지 차량 재인증이다. 환경부는 폭스바겐 32개 차종, 80개 모델에 대한 인증취소 처분을 내린 상태다.
본사 입장에서 한국은 놓칠 수 없는 중요한 시장이다. 아우디폭스바겐은 매년 한국 시장에서만 수백억원씩 이익을 내왔기 때문. 2015년 영업이익은 472억원, 당기순이익도 321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인증취소로 차량 판매가 급감하면서 수익도 고꾸라지는 모습이다. 폭스바겐은 판매정지 제외 차종인
CC
, 투아렉 재고가 바닥나 2016년 11월 들어 차량을 단 한 대도 팔지 못했다. 2016년 1~11월 폭스바겐 누적 판매대수도 1만3178대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60% 이상 감소했다. 아우디도 11월 판매량이 463대에 그쳐 1년 새 88%나 줄어든 상태다. 자동차 판매량이 급감한 만큼 2016년엔 이익은커녕 오히려 적자를 낼 가능성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아우디폭스바겐은 한국 시장에서의 독일 디젤차 열풍으로 한동안 쏠쏠한 재미를 봤다. 하지만 2016년 들어 판매량이 급감하면서 경쟁사에 고객을 뺏기자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판단 아래 정부 마음을 돌리려 100만원 쿠폰 지급안을 들고나온 것으로 보인다”고 귀띔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아우디폭스바겐은 리콜과 차량 인증취소를 별개 사안으로 보고 리콜 이전에 재인증 절차를 밟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이르면 새해 초 환경부에 판매금지 차량 재인증 서류를 제출할 계획이다. 또한 신규 차량 인증 작업도 동시에 진행 중이다. 이미 2016년 11월 아우디 A7 55
TDI
연식 변경 모델에 대한 환경부 배출가스, 소음 인증을 받은 상태다. 하지만 업계에선 폭스바겐에 대한 국내 여론이 악화된 상황에서 정부가 당장 판매금지 차량을 재인증하긴 어려울 것이란 의견이 나온다.
“당초 아우디폭스바겐 측은 2016년 내 리콜 문제를 마무리하고 재인증 절차를 진행하려 했다. 하지만 리콜이 계속 늦어지는 데다 딜러사가
BMW
등 다른 브랜드로 빠져나가고 손실도 불어나면서 리콜과 별개로 재인증 작업에 나선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재인증에 사활을 걸겠지만 정부 입장이 우호적이지 않고 여론 반발을 극복하는 것도 만만찮은 변수다.” 또 다른 수입차 업계 관계자 분석은 눈길을 끈다.
▶폭스바겐 사태 해법은
▷과징금 효과 미미, 징벌적 손해배상 필요
아우디폭스바겐이 자꾸 꼼수를 부리는 만큼 이참에 정부가 강력한 처벌을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새해 12월부터 대기환경법을 위반한 자동차 회사에 대해 차량 교체 명령뿐 아니라 신차 가격 환불 명령, 중고차 재매입 명령을 내리기로 했다. 과징금 요율이 현행 매출액의 3%에서 5%로 높아지고, 상한액도 차종당 100억원에서 500억원으로 상향된다. ‘제2의 폭스바겐’ 조치를 막기 위해서라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란 비판이 쏟아진다. 우리도 미국처럼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같은 강력한 처벌 방안을 마련하거나 정부가 나서서 폭스바겐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나온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가해자에게 징벌을 가할 목적으로 실제 손해액을 훨씬 넘어선 액수를 부과하는 제도다.
“아우디폭스바겐이 뒤늦게 100만원 쿠폰을 제시했는데 차량에 문제없거나 서비스가 불필요한 차주에게 쿠폰은 별 의미가 없다. 외국처럼 반액은 현금, 반액은 애프터서비스 형식으로 제공했더라면 그나마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물론 정부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차량 교체나 환불은 물론이고 미국처럼 징벌적 보상제를 도입하는 등 수입차 업계에 경종을 울리는 조치가 필요하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 주장은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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