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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

[SF] Abandoned Planet

 
글쓴이 : unfusi 날짜 : 2018-05-16 (수) 10:27 조회 : 507   

전에 썼던 글인데, 잘 들어오지 않는 도서 게시판에 "자작" 탭이 보여 올려 봅니다.

게시판에 얼마나 올라나가 싶어서 다 긁어 올렸는데 한방에 올라가네요. 꽤 깁니다.

Hellic Esmond – Abandoned Planet

행성의 중력권 안으로 들어선 개인용 비상탈출 캡슐이 대기권 진입을 위해서 가스를 분사하여 위치를 조정했다 . 간헐적인 가스 분출과 회전으로 움직임이 안정된 캡슐이 천천히 행성을 향해 끌려가는 듯하더니 점차 속도가 증가했다 . 이 캡슐 안에 잠들어 있는 것은 바로 헬릭이었다 . 세린의 흔적을 찾기 위해 셀돔으로 가던 그가 여왕의 아이들 이라는 테러범들에게 잡혔다가 이 비상탈출 캡슐에 타고 우주를 떠돌게 된 것은 정말 불운과 불운의 연속이라 할만했다 . 사실 안에 잠들어 있는 헬릭은 모르고 있지만 이 비상탈출 캡슐은 탈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변을 지나가던 화물선에 의해 인양되었었다 . 개인용 비상탈출 캡슐은 기본적으로는 가장 가까운 곳을 지나는 우주선의 구조를 받을 수 있도록 언제나 구조신호를 발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신호를 수신한 화물선이 캡슐을 발견하게 된 것인데 , 구조가 아닌 인양이 된 이유는 캡슐을 끌어올린 화물선의 탑승자들이 반사회적인 , 간단히 말해 도망 중인 범죄자들이어서 이 비상탈출 캡슐을 열어 헬릭을 구조하지 않고 그대로 화물칸에 집어넣고는 인간의 육체를 원하는 그들의 거래처에 팔아버리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 그대로 화물선에 실린 채 어딘가에 팔렸더라면 , 과정은 어찌 되었든 헬릭이 좀 더 빨리 깨어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여기서 또 다른 불운이 찾아왔다 . 이 화물선이 범죄자들을 추격하는 현상금 사냥꾼들의 공격을 받아 화물칸 해치가 열리면서 인양되었던 위치에서 한참 떨어진 엉뚱한 곳에서 비상탈출 캡슐이 다시 표류를 시작한 것이었다 . 정상적인 항로를 벗어난 곳에서 떠돌고 떠돌아 가까스로 유인행성의 신호를 발견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였다 .

낙하 속도가 증가하던 캡슐에서 낙하산이 펴지면서 속도가 줄어들더니 가스를 분출하여 낙하 위치를 조정했다 . 협곡과 바위뿐인 지상에 캡슐이 내려앉은 뒤 잠들어 있는 탑승자를 깨우는 작업과 대기상태 및 중력을 재확인 하는 작업이 동시에 진행되었다 . 작업들이 완료되고 헬릭이 정신을 차릴 즈음해서 캡슐의 해치가 열렸다 . 오랜 수면으로 정신이 몽롱한 상태로 깨어난 헬릭은 눈이 부셔 한동안 눈을 뜨지 못하다가 한참 뒤에야 주변을 확인할 수 있었다 .

두 개의 태양 , 적갈색의 토양 , 대기 상태가 인간이 살기에 적당한 것으로 보아서는 식민지 이주를 위해 개발된 개척행성인 것 같았다 . 하늘은 온통 구름으로 가득했는데 직사광선과 자외선을 막기 위해 일부러 대기권에 인공적인 구름층을 형성 시킨 것 같았다 . 그 때문에 지상은 태양이 구름에 가려 조금 어두운 상태였는데 구름의 상태가 조금 달라 보였다 . 구름 층 사이에서 강력한 전하 이동이 일어나는지 마른 번개가 매우 빈번히 구름 층 사이에 퍼지고 있었는데 , 어느 정도의 고도에서 일어나는지 천둥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 헬릭은 일어서서 캡슐에서 걸어 나오려다가 현기증과 약해진 다리 근육 때문에 잠시 비틀거렸다 . 겨우 몸을 가다듬고 캡슐에 걸터앉아 , 자신이 얼마나 잠들어 있었는지 알기 위해 캡슐 안의 시간을 확인한 뒤 , 그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 캡슐의 동작 시간은 2 8 개월 27 14 시간을 넘어서고 있었다 . 통신장치를 확인해 보았지만 확인되는 전파도 없었기 때문에 별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

개척행성이라면 분명 위성에서 캡슐의 착륙을 확인하고 구조대를 보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 그대로 캡슐이 있는 위치에서 기다려보기로 했지만 , 어찌된 일인지 그런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 만약 구조대가 오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사이 첫 번째 태양에 이어 두 번째 태양이 지고 있었다 . 날이 어두워지자 헬릭은 비상 식량을 꺼내 배를 채우고 캡슐 안에 몸을 뉘었다 . 일단 내일까지는 기다려보자고 마음 먹었지만 불안감은 지울 수 없었다 .

7 시간이 지나 첫 번째 태양이 떠오르자 헬릭은 일어나 통신장치를 다시 확인해 검색되는 채널이 없는 것을 보고는 , 결국 자신의 무기 케이스와 구난 구호 세트를 꺼내 놓았다 . 그리고 캡슐 안의 컴퓨터를 조작하여 자신이 착륙한 행성에 대한 정보를 확인했다 . 번개 때문에 간혹 화면에 노이즈가 생기긴 했지만 동작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 화면에 나타난 행성 번호가 GSP-0310 으로 나오는 것을 보아 GPC 에서 개발하는 행성이었다 . 자신의 PDA 에 캡슐의 DB 에 있는 정보들을 다운로드 한 뒤 지도에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무인 설비의 위치를 확인했다 . 개인용 비상탈출 캡슐이 착륙 위치를 계산할 때 , 지도에 나와 있는 요소들을 포함시켰기 때문에 그리 멀지 않은 위치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 지도에서 확인한 무인설비까지의 직선 거리는 20Km 정도였지만 , 도보로 이동했을 시의 거리는 35Km 이상으로 나오고 있었다 . 혹시 나중에 도착할지 모를 구조대에 자신의 위치를 알리기 위해 칼을 꺼내 캡슐의 겉면에 자신이 가려고 하는 무인설비의 좌표로 이동한다는 내용을 새겨 놓고 나서 , 장비와 구난 구호 세트를 등에 짊어진 뒤 , 발걸음을 옮겼다 . 착륙한 지 10 시간이 지난 뒤의 일이었다 .

온통 적갈색뿐이었던 지상에 푸른색의 이끼류 생물이 나타나자 헬릭이 잠시 멈춰 서서 자신의 위치를 확인했다 . 협곡을 우회하여 언덕을 따라 내려와 대평원에 들어선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 잠시 앉아 푸른색으로 펼쳐진 대지를 바라보며 쉬고 있던 헬릭의 시선이 순간 한 곳을 향했다 . 그리고는 벌떡 일어서 자신의 무기 케이스에서 BLINK 430 ( 저격 라이플 ) 과 헤드 기어를 꺼냈다 . HUD 에 녹색의 높이 솟은 구조물의 모습이 나타나자 더 가까이 가서 확인하기 위해 달리기 시작했다 . 외부 형태가 직선인 것으로 보아 인공적인 시설임에 틀림 없다고 생각했지만 , 온통 녹색인 것이 마음에 걸렸다 . 어쩌면 거대한 바위를 잘 못 본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순간 , 헬릭이 멈추어 섰다 . 그것은 개척행성의 토양환경 조성을 위해 바위를 분쇄하고 , 땅을 일구는 거대한 토양 환경 조성용 차량이었다 . 전장 100m 에 높이도 족히 50 미터는 넘을 거대한 차량이 외부가 온통 이끼에 뒤덮여 그 곳에 멈춰서 있었다 . 어째서 이런 차량이 버려져 있는지 알 수 없었다 . 개발 중인 행성이라면 분명 저 차량은 중앙 시스템의 통제를 받아 움직이고 있어야 했다 . 게다가 온통 이끼에 뒤덮여 있는 모습이 불안했다 . 차량에 도착한 헬릭은 거대한 캐터필러 옆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조종석을 확인했다 . 누군가의 공격을 받았는지 차창에는 거대한 구멍이 뚫려 있었고 백골이 된 조종사의 머리가 시커멓게 탄 시트 위에 놓여있었다 . 혹 차량이 움직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종석을 확인해보려고 했지만 먼지 쌓인 조종석은 완전히 파괴되어 있어서 아무런 작동도 하지 않았다 . 조종석에서 지상으로 다시 내려온 헬릭은 차량이 만든 그늘 밑에 앉아 비상 식량을 꺼냈다 . 딱딱한 건조식량을 씹으며 헬릭은 버려진 차량과 공격받은 흔적 ,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는 구조대등에 대해 생각했다 .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었지만 , 불안은 숨길 수 없었다 . 제발 지도에서 확인했던 무인설비가 동작하고 있어서 외부와 연락이 가능하기를 바랄 뿐이었다 .

헬릭은 잠시 휴식을 취한 뒤 , 다시 무인설비 쪽으로 향했다 . 무기 케이스와 구난 구호 세트까지 짊어지고 걷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 점차 걸음이 느려지고 다리 근육에 통증이 느껴졌지만 , 멈출 수는 없었다 . 구난 구호 세트에 들어있는 식량과 물의 양은 아끼고 아껴 일주일 정도 버틸 수 있는 양이었기 때문에 , 하루라도 빨리 구조 신호를 보내야 했다 . 만약 이 곳이 버려진 행성이라면 구조대가 오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도 예측할 수 없었다 .

걷는 동안 다른 생물의 흔적을 찾아보았지만 , 지표를 덮고 있는 이끼 외에 생물을 발견되지 않았다 . 아마도 물이 있는 곳에 대기조성을 위한 식물군이 조성되어 있을 테지만 , PDA 에 다운로드 한 행성 정보에는 그런 정보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지만 만약 구조 신호를 보낼 수 없을 경우에는 차선책으로 그 식물군이 있는 곳을 찾아야 했지만 , 설사 위치를 안다고 할 지라도 그 곳까지 걸어서 움직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

해가 져서 어두워지자 , 바위를 찾아 기대어 앉았다 . 지난 밤은 캡슐에서 잠을 잤기 때문에 체감하지 못했지만 , 밤낮의 기온 차가 상당히 심했다 . 마음 같아서는 불이라도 피우고 싶었지만 이끼뿐인 평원에서 적당한 땔감도 찾을 수 없었다 . 결국 무기 케이스 안에서 길리슈트를 꺼내 덮고 , 그 위에 걷어낸 이끼를 다시 덮는 것으로 추위를 막아보았지만 , 한기는 쉽게 가시지 않았다 . 구름 사이의 번개는 밤이 되자 조금 잦아들긴 했지만 멈추지는 않았다 .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지샌 헬릭은 첫 번째 태양이 뜨자마자 움직이기 시작했다 . 무인설비까지의 거리는 어느새 많이 가까워져 있었다 .

두 번째 태양이 머리 위에 와 있을 즈음해서 헬릭은 PDA 를 확인했다 . 이 정도 거리까지 가까워졌다면 이제 보여야 할 텐데 , 어찌된 일인지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 PDA 와 주변을 번갈아 살펴보던 헬릭이 순간 저 멀리서 뭔가를 발견하고는 목에 걸고 있던 라이플을 집어 들어 스코프로 확인했다 . 직사각형 형태의 건물을 확인한 헬릭은 주변을 한 번 둘러본 뒤 그 곳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

그것은 헬릭이 기대하던 무인 설비와는 다른 형태를 하고 있었다 . 송수신 장비를 탑재한 작은 철탑이거나 안테나를 달고 있는 작은 건물 같은 것을 예상했었는데 그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 건물이라기 보단 담이나 울타리도 없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 같은 직사각형의 금속 , 일종의 화물용 컨테이너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 그러나 , 길이 20m, 높이 4m, 너비 6 미터의 커다란 금속 외벽에 사람이 드나들기 위한 출입구 같은 것이 몇 개 달려 있어서 화물용이라고 보기도 힘들었다 . 어쩌면 새로운 형태의 무인 설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헬릭이 출입구 쪽으로 다가가 개폐 버튼을 눌렀다 . 잠시 기다려 보았다가 반응이 없는 것을 확인한 헬릭이 수동 레버를 돌려 옆으로 당기자 요란한 소리를 내며 금속 문이 열렸다 .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가자 실내의 조명이 자동으로 켜졌다 . 한쪽 벽을 가득 채운 비상 식량들과 바닥에 뒹굴고 있는 의자가 눈에 들어왔다 . 밖에서 보았을 때 보다 천장이 낮은 것이 이층이 있을 것 같았는데 , 그 쪽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보이지 않았다 . 다만 한 쪽에 문 같은 것이 있어서 그 곳을 통해 올라가도록 되어 있을 것 같았으나 , 손잡이나 버튼 같은 것이 보이지 않았다 . 의자를 끌어다 그 밑에 놓고 올라가 두드려 보았지만 별다른 움직임이 보이지 않자 무기 케이스와 구난 구호 세트를 바닥에 내려놓고 , 라이플만 목에 건 채 의자에 주저 앉았다 . 아직 자신이 원하던 통신 장비는 찾지 못했지만 한 쪽 벽에 놓인 비상 식량들을 보자 안도감에 피로가 몰려왔다 . 더구나 지난 밤 , 잠을 제대로 못 잤기 때문에 몰려오는 피로감에 헬릭은 그대로 의자에 앉아 눈을 감았다 . 일단은 잠시 자고 일어난 뒤에 위층에 올라가 살펴볼 생각이었다 . 실내의 조명은 작동하는데 문은 녹슬어 열리지 않았던 것이나 , 안쪽에 비상 식량이 쌓여있는 이유 , 그리고 무엇보다 방치되어 있는데도 꽤 깨끗한 상태라는 사실 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 밤새 추위 속에 떨었던 피로감과 이 곳이 버려진 행성이라는 사실에 대한 무의식적인 확신이 그런 중요한 요소에 대한 판단을 방해했기 때문이었다 .

헬릭이 이상한 기척을 느낀 것은 잠든 지 세시간 정도 지난 뒤였다 . 방 안에 다른 존재가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고개를 들며 , 라이플을 겨누며 일어섰다 . 놀라서 허둥대는 기색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말 그대로 군더더기 없는 움직임이었다 .

쏘기라도 할거야 ?”

라이플을 겨눈 헬릭 앞에 서있는 것은 여자였다 . 문 옆에 기대어 서서 라이플로 자신을 겨누고 있는 헬릭을 묘한 눈빛으로 노려보며 여자가 말했다 . 뒤로 묶은 갈색 머리와 팔짱을 끼고 있는 오른손에 들린 권총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 볕에 그을린 연갈색의 피부에 이십대 후반이나 , 서른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의 얼굴을 노려보며 헬릭이 말했다 .

사람이 살지 않는 버려진 행성이라고 생각했는데 , 그건 아닌 모양이군 . 개인용 비상 탈출 캡슐을 타고 그제 이 행성에 떨어졌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구조대가 오지 않아서 불안해 하던 참이야 .”

헬릭의 말에 여자가 권총을 쥔 손으로 라이플 총구를 치우라는 손짓을 하더니 자신의 권총을 홀더에 집어 넣었다 . 그리고는 밖을 가리키며 말했다 .

밖에 있는 저거 말이지 ?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고 갔었는데 도착했을 때는 사람이 보이지 않아서 어딘가 헤매고 있나 보다 생각했는데 여기 와 있었군 .”

밖에는 헬릭이 타고 왔던 개인용 비상탈출 캡슐이 전기를 동력으로 하는 차량 뒤에 매달려 있었다 . 라이플 총구를 돌려 등에 맨 헬릭은 다시 의자에 앉아 물었다 .

“GPC 에서 관리하는 행성인 것 같은데 , 개발이 중단된 건가 ? 오다가 부서진 토양 개발 차량 같은 걸 봤는데 ……”

헬릭의 물음에 여자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

여기 버려진 행성이 맞아 . 개발도 중단됐고 , 그러니까 당신은 말하자면 이곳에 생존하고 있는 두 번째 조난자야 . 물론 첫 번째는 나고

말을 마치고 여자는 큭큭거리며 웃더니 악수라도 하자는 듯 손을 내밀었다 . 헬릭은 여자의 내민 손을 본체만체 하고는 짧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

이 행성에서 나갈 방법이 없다는 건가 ? 외부로 연락할 방법 같은 것도 없고 ?”

! 빠져나갈 방법 말이지 . 있을까 ? 없을까 ? 궁금하지 ?”

헬릭은 계속 웃음을 머금고 있는 여자의 말투가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 마치 장난이라도 치는 것 같은 여자의 행동에 약간 화가 났지만 이 여자라도 만난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내색하지 않았다 . 헬릭이 아무 말도 없자 , 여자가 뺨을 긁적이며 말했다 .

그런 방법이 없었으니까 내가 지금까지 이 행성에 처박혀있었지 .”

여자의 말투가 이내 체념한 듯 바뀌었다 .

그럼 당신은 얼마 동안이나 이 행성에 있었던 거지 ?”

헬릭이 이렇게 묻자 여자가 눈을 위로 뜨며 한참 생각하는 듯 하더니 말했다 .

아마 한 5 년에서 6 년 정도 됐을 거야 .”

여자의 대답에 헬릭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 그 모습을 바라보던 여자가 헬릭에게 다가와 어깨를 다독거리며 말했다 .

식량도 있고 , 식수도 있으니까 그리 나쁜 상황은 아냐 . 거기다 나 같은 미녀와 단 둘이 이 행성에 있으니 당신 꽤 행운아라고 !”

여자가 이렇게 말하고는 이내 웃음을 참지 못하겠다는 듯 큭큭거렸다 . 헬릭은 여자의 웃음 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

여자는 헬릭의 뒤로 가서 아까 천정의 문 쪽으로 다가갔다 . 여자가 그곳에 서서 주머니에서 꺼낸 PDA 를 조작하자 천정이 열리며 계단이 내려왔다 . 여자는 헬릭을 내버려두고 계단 위로 올라가며 말했다 .

거기 계속 앉아 있을 거야 ?”

여자의 말에 헬릭이 일어서서 여자를 따라 계단을 올라갔다 . 계단 위는 아래층과는 달리 깔끔하고 밝았다 . 입구 안 쪽 깊은 곳에는 침대가 놓여있었고 , 입구 근처에는 전자 장비들이 놓여있었다 . 그리고 헬릭의 위에서 내려와 있는 올가미가 눈에 띄었다 . 자살을 위해서 매달아 놨다 하고 생각하는데 여자가 헬릭의 시선을 눈치채고는 말했다 .

혹시라도 내가 저 끈도 매달지 못할 정도로 아프거나 하면 곤란하니까 그 때를 대비해서 매달아 놨지 .”

헬릭은 여자의 말을 듣는 둥 , 마는 중 하더니 입구 근처의 전자장비들을 만지작거렸다 . 혹 외부와의 통신이 가능한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는데 , 일반적인 개인용 컴퓨터와 수리용 장비 같은 것들뿐이었다 .

당신은 어떻게 여기 있는 거지 ? 이 컨테이너는 뭐고 ?”

헬릭이 전자장비를 만지던 것을 멈추고 침대에 누워 있는 여자에게 물었다 .

내가 타고 있던 우주선이 이 행성 근처에서 공격을 받아서 나도 너랑 비슷하게 탈출장치와 함께 이 행성에 떨어진 거야 . 컨테이너는 원래부터 여기 있었고 .”

무인 설비로 나와있던데 아래층에 쌓여있는 저 비상식량들은 뭐지 , 그리고 안에 있는 장비들을 봐도 사람이 쓰기 위한 것 같은데 .”

그렇게 나한테 물어봐도 소용없어 . 행성 정보를 업데이트 하지 않은 모양이지 . 내가 도착해서 이 주변에 가까운 기지나 설비들을 찾아가 봤지만 , 지리정보가 거의 맞지 않더라고

여자의 말에 헬릭이 입술을 깨물었다 . 감옥에 갇힌 것보다 더 끔찍한 상황이었다 . 유배 , 헬릭의 머릿속에 그 단어 만이 떠올랐다 .

다른 곳에 있는 통신 장비들은 어때 ? 모두 다 고장인가 ?”

대충 어떤 심정인지 이해는 가지만 그렇게 급하게 이것 저것 캐묻지마 . 네가 타고 온 캡슐을 끌고 오느라고 나도 꽤 피곤하니까 . 낮잠이나 한 숨 잘 테니까 그 뒤에 이야기하자고 . ! 당신도 좀 더 자지 그래 ? 아까 의자에서 졸고 있는 모습을 보니까 피곤한 모양이던데 . 내 침대에서 같이 자도 되고 , 좁아서 싫으면 아래층의 캡슐에서 자던지 .”

여자의 말에 헬릭이 다시 물으려다가 그만 두었다 . 그리고는 계단을 내려와 밖에 놓여진 캡슐을 한 번 바라보고는 아까 자신이 앉았던 의자에 다시 털썩 주저 앉아 무릎 위에 라이플을 올려 놓았다 . 아무도 없는 줄 알았던 행성에 누군가 있다는 사실은 반가운 일이었지만 , 반대로 그게 단 한 명 , 그것도 뭔가 묘한 반응을 하는 여자라는 점이 그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었다 . 하지만 불안감보다 더 큰 절망감이 그를 흔들었다 . 헬릭은 그 절망감이라도 떨쳐버리려는 듯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일어나 캡슐로 들어갔다 . 여자의 말대로 잠이라도 자두는 게 , 지금으로서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

헬릭이 다시 일어난 것은 캡슐에서 들리는 묘한 마찰음 때문 이었다 . 마치 송곳 같은 뾰족한 것으로 캡슐의 외부를 긁어대는 듯한 소리에 눈을 떠 일어났을 때 , 1 미터 크기의 로봇이 보였다 . 바퀴 달린 4 개의 다리와 4 개의 팔을 달고 있는 로봇이 캡슐에 달라붙어 뭔가를 떼어내는 것을 지켜보던 헬릭은 몸을 일으켜 로봇을 향해 말했다 .

뭘 하고 있는 거지 ?”

쓰레기에서 쓰레기를 분리해 내는 거야 .”

뭐라고 ?”

로봇의 이해할 수 없는 대답에 다시 질문을 했지만 로봇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

뭐하고 있는 거야 !”

작업 중이니까 방해하지마 .”

어딘가 고장 난 모양이라고 생각했지만 , 로봇의 움직임에는 큰 문제가 없어 보였다 . 로봇이 캡슐에서 뭔가를 꺼내서 트레이너 안으로 사라지자 헬릭은 일어나 그 뒤를 따라 들어갔다 . 트레이너 안에서는 여자가 테이블 위에 로봇이 가져온 물건을 받아서 올려놓고 있었다 .

뭘 꺼냈지 ?”

일단은 배터리 , 저 작업 로봇하고 바이크 배터리에 좀 문제가 있어서 교체해야 하거든 .”

여자의 말에 헬릭이 로봇을 바라보았다 . 로봇은 배터리를 여자에게 건네주고는 다시 캡슐로 향하고 있었다 .

다른 곳에도 가본 건가 ?”

다른 곳 ?”

헬릭의 물음에 여자가 배터리를 만지 작 거리다가 고개를 돌려 헬릭을 바라보았다 .

통신 장치가 있는 곳 .”

! 어제 물어봤던 것 말이군 .”

그래 , 어디에 가본거지 ?”

바이크로 이동할 수 있는 거리에 있는 곳은 이 대륙에는 두 군데 밖에 없어 , 모두 파괴되어 있고 게다가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 통신 장비가 없어서 우리가 외부와 연락을 하지 못하는 게 아냐 .”

그건 무슨 소리지 ?”

헬릭의 물음에 여자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

저 구름층 때문이야 . 그곳에서 일어나는 극렬한 전하이동 때문에 통신을 할 수가 없는 거라고 .”

지금 번개 때문에 통신 불능 상태라고 말하는 거야 ?”

. 맞아 .”

여자의 말에 헬릭이 컨테이너 밖으로 나와 하늘을 바라보았다 . 아직도 번개가 번쩍거리고 있었다 .

항상 저렇게 구름이 끼어 있지는 않을 것 아냐 ?”

네 말이 맞을 수도 있지만 , 내가 있는 동안에는 한번도 바뀐 적이 없었어 .”

헬릭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자 여자가 이마를 긁으며 말했다 .

자세한 것까진 모르지만 아마 두 개의 태양 때문에 일부러 구름층을 만들었겠지 .”

구름층의 용도에 대한 것은 헬릭도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 하지만 그 구름층에서 발생하는 번개가 통신에 영향을 준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었다 .

저런 지속적인 번개에 대한 시뮬레이션도 하지 않고 ?”

자세한 건 모른다고 했잖아 . 나도 짐작일 뿐이라고 .”

아무리 번개로 인해서 노이즈가 심하다고 하더라도 통신이 불가능 하다는 건 말이 안돼 !”

헬릭이 언성을 높이자 여자가 실실 웃으며 말했다 .

어쨌든 우리가 가지고 있는 통신 장비로는 안되니까 . 그나저나 뭐라고 부르면 될까 ? 조난자 ? 불운한 행운아 ?”

이런 상황에서 장난을 치고 있는 여자가 꼴 보기 싫었지만 , 참을 수밖에 없었다 .

헬릭 .”

헬릭이라 . 난 제나라고 불러줘 . 그리고 저기 저 로봇은 레베카라고 부르지만 뭐 내키는 대로 불러도 상관없을 거야 .”

자신을 제나라고 밝힌 여자는 탁자 위의 비상식량 상자를 헬릭에게 던지고는 의자에 앉자 다른 상자 하나를 열었다 .

일단 배나 채워둬 . 신경 쓰고 있는 통신 장비들은 다 먹고 나서 보여줄 테니까 .”

제나는 상자를 뜯어 안에 들어있는 네모란 합성 음식물을 우걱우걱 씹기 시작했고 헬릭도 한숨을 내쉬고는 이내 상자를 열었다 .

식사를 마치고 제나가 컨테이너 안쪽에서 통신 장치를 들고 나타나 헬릭 앞에 내려놓았다 .

아마 태양광 패널을 좀 펼쳐놓고 충전을 해야 할 거야 . 마음껏 테스트 해봐 .”

제나가 사라지자 , 헬릭은 통신 장치를 들고 밖으로 나와 옆에 달린 태양광 패널을 펼쳤다 . 그리곤 장비를 살펴 전원 스위치를 켜고 통신 가능한 주파수를 검색했다 . 기기에는 문제가 없는 것 같았으나 제나의 말대로 한 참이 지나도 정상 연결되는 주파수는 찾을 수 없었다 . 헬릭이 통신 장치의 검색 패널을 들여다 보고 있는 사이 레베카라고 부른다던 로봇이 통신 장치 쪽으로 다가왔다 .

비상식량 상자랑 포장지 내놔 .”

뭐라고 ?”

상자와 포장지 . 어디다 버렸어 ?”

컨테이너 안에 있을 텐데 .”

처음이니까 용서해주지 . 다음에는 나한테 줘 !”

알았어 . 그런데 넌 다른 로봇과는 조금 다른 것 같은데 , 이유가 있나 ?”

헬릭이 이 당돌한 로봇의 명령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고는 물었다 . 헬릭의 물음에 레베카라는 로봇이 말했다 .

언어 패턴이 소유자의 성향에 따라 변화하도록 프로그램 되어 있어서겠지 . 로봇은 아무런 죄가 없다고 . 인간들이 이렇게 만든 거지 . 그러니까 맘에 안 들거든 네 종족을 탓해 . 나도 이 거지 같은 하드웨어로 옮겨 오고 와서는 적응하기 힘드니까 .”

레베카의 말에 헬릭이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

하하 그래 알았어 . 그런데 원래는 이런 형태가 아니었나 보군 ?”

뭐가 그렇게 알고 싶은 게 많은 거야 ? 나중에 로그 데이터 넘겨줄 테니 그거나 살펴봐 .”

그래 그렇게 하지 . 레베카

레베카 ? 그건 뭐야 날 부르는 호칭인가 ?”

그래 , 제나라는 여자가 그렇게 알려주던데 .”

헬릭의 말에 잠시 로봇이 정지한 듯 아무런 움직임이 없더니 이내 음성장치를 통해 말했다 .

레베카라고 ? 맘대로 해 .”

로봇은 바퀴를 굴려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갔고 헬릭은 다시 통신 장치로 눈을 돌렸다 . 계속 검색을 계속하고 있었지만 주파수는 찾지 못한 것 같았다 . 헬릭은 통신 장치를 들고 일어나 컨테이너 옆에 세워 놓고는 안에 들어갔다 . 그러나 순간 놀라 등에 둘러 매고 있던 Blink 430( 저격소총 ) 을 쳐들었다 .

누구 맘대로 내 물건을 만지는 거지 ?”

컨테이너 안의 어둠 속에서 손에 Storm-13 ( 돌격소총 ) [u1]   을 들고 있는 제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

저 커다란 가방 안에 뭐가 있는지 궁금해서 열어봤더니 이런 게 들어있길래 .”

이리 줘 !”

헬릭은 총구를 내리며 다가가 제나의 손에 들린 소총을 빼앗아 상태를 확인했다 .

저렇게 커다란 상자에 별로 쓸데 없는 물건들만 잔뜩 가지고 다니는군 .”

헬릭은 소총의 안전장치를 확인하고는 다시 무기 케이스에 집어넣었다 .

네 등에 메고 있는 것도 집어넣는 게 어때 ? 그렇게 매고 다니면 무겁지 않아 ?”

옆에 서서 헬릭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던 제나가 이렇게 말했다 . 하지만 헬릭은 바로 대꾸하지 않고 무기 케이스를 잠그고 일어났다 .

말 상대도 해주고 , 먹을 것도 주고 , 잠도 재워줬는데 뭐 그렇게 날카롭게 구는 거야 !”

헬릭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제나가 소리쳤다 . 하지만 이번에도 헬릭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의자를 들고 밖으로 나와 통신 장치 앞에 가져다 앉았다 . 낮게 울리는 천둥소리와 바람소리만 두 사람 간의 침묵을 메웠다 .

헬릭이 주파수가 잡히지 않는 통신 장치를 들여다보는 것에 질려갈 즈음 , 컨테이너 안에서 제나가 나와 말했다 .

남의 물건을 함부로 만진 건 사과할게 .”

제나가 사과했지만 , 헬릭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

그 통신 장치는 레베카한테 들여다보라고 하고 , 나랑 얘기나 하자고 .”

제나가 얼굴에 미소를 띠며 말하자 헬릭이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 .

지금은 별로 그럴 기분이 아냐 . 그렇다고 너한테 화나서 그런 것도 아니고 . 단지 지금 내가 처한 상황 때문에 날카로워져서 그런 거니까 잠시 가만 놔뒀으면 좋겠군 .”

헬릭의 말에 제나가 낮게 으음 하고 소리를 내더니 안으로 들어갔다 .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 통신 장치를 보면서 헬릭은 어떻게 이 행성을 탈출할 수 있을지 궁리하고 있었다 . 하지만 아무리 궁리해도 별 달리 뾰족한 방도는 떠오르지 않았다 . 그 때 , 안 쪽에서 레베카가 나오더니 컨테이너 뒤 쪽으로 사라졌다가 시체처럼 축 늘어진 마네킹 같은 것을 질질 바닥에 끌면서 나타났다 .

그건 뭐지 ?”

원래 내 하드웨어 . 부품들이 생겼으니 고쳐보려는 거야 .”

부품이라는 건 내가 타고 온 탈출 장치를 말하는 건가 ?”

그래 .”

레베카는 이렇게 말하고는 여성형 안드로이드 몸체를 끌고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밖으로 나와 헬릭의 비상 탈출 장치에서 전자 부품들을 잔뜩 꺼내 안으로 들어가다가 말했다 .

안에 있는 여자는 믿을 수 없어 . 네가 도와줘 !”

뭘 도와달라는 거지 ?”

막 통신 장치의 태양광 패널을 접고 있던 헬릭이 레베카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

내 원래 하드웨어의 수리는 대충 마쳤는데 , 내 기억 모듈을 옮기려면 잠시 전원을 끈 뒤에 , 누군가가 직접 옮겨줘야 해 .”

나보고 옮겨달라는 거군 . 그런데 만난 지 얼마 되지 않는 나보다 제나를 더 신뢰할 수 없다는 건가 ?”

헬릭의 물음에 레베카가 작동을 멈춘 듯 조용해지더니 이내 말했다 .

신뢰라는 건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에서나 필요한 거야 . 그녀를 못 믿는 게 아니라 네가 더 적합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야 .”

  그래 . 어떻게 도와주면 돼지 ?”

헬릭의 물음에 레베카가 대답 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 제나는 보이지 않았고 테이블에는 레베카가 꺼내온 안드로이드가 엎드린 채 누워있었다 . 머리 뒤에서 목을 지나 등까지의 인조 피부와 내부 골격이 벗겨져 있어 내부가 훤히 보였다 . 레베카는 기계 손으로 머리 부분의 금속 골격을 제거하고 등 안 쪽의 단자에 케이블을 연결한 뒤 , 말 없이 지켜보고 있던 헬릭에게 말했다 .

이전 작업이 시작되면 , 음성으로 작업 과정에 대한 설명이 나올 테니 그에 따라 진행하면 될 거야 .”

알았어 .”

헬릭이 대답하자 그와 동시에 레베카가 정지한 듯 이전까지 작동을 확인 할 수 있던 불빛들이 모두 꺼졌다 . 그리고 잠시 후 레베카의 몸체 뒤가 열리면서 정육면체로 된 여섯 개의 전자 두뇌가 밖으로 노출됐다 .

-        데이터 이전 작업의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 두뇌 패널의 두뇌 큐브들을 이전하고자 하는 하드웨어로 옮겨주십시오 .

레베카의 음성 출력장치에서 흘러나오는 설명대로 헬릭이 패널을 꺼내자 이번에는 안드로이드 쪽에서 설명이 흘러나왔다 .

-        두뇌 패널에서 큐브를 제거하여 머리 뒤의 입력 슬롯에 삽입해 주십시오 . 큐브는 자동으로 정렬되니 순서에 상관없이 삽입해 주십시오 .

헬릭은 명령대로 슬롯에서 두뇌 큐브를 떼어내 안드로이드로 삽입했다 . 작업이 끝나자 외부골격이 자동으로 닫히면서 , 안드로이드의 손가락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

-        기본 테스트가 완료 되었습니다 . 기동을 시작합니다 .

안드로이드 , 아니 이제 새로운 레베카가 테이블 위에서 몸을 일으켰다 .

덕분에 제대로 작업이 끝난 것 같군 .”

레베카는 팔을 뒤로 꺾어 벗겨진 인공 피부를 접합하고는 테이블에서 내려와 멈추어 있는 로봇의 부품들을 다시 꺼내기 시작했다 .

아직 70 퍼센트 정도 밖에 복구하지 못했지만 , 이 로봇의 부품들을 이용하면 85 퍼센트까지 복구가 가능할 거야 .”

그 전에 뭔가 걸쳐야 할 것 같은데 . 전에 입고 있던 옷은 어디 있지 ?”

헬릭이 이렇게 말하자 레베카가 고개를 갸우뚱 하더니 말했다 .

예전 옷은 제나가 입고 있어 . 그런데 뭘 입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

마침 헬릭이 컨테이너 한 쪽에서 낡은 정비복을 찾아 레베카에게 건넸다 . 옷을 받아 든 레베카가 테이블 위에 그대로 올려놓고는 말했다 .

안드로이드의 알몸을 보고 부끄러워하나 ? 수리가 끝나면 입지 . 그래도 도움을 받았으니까 .”

고맙군 .”

헬릭이 이렇게 말하고 의자에 앉아 레베카가 자신의 몸을 수리하는 것을 지켜보는 사이 , 2 층 계단이 내려오면서 제나가 나타났다 .

뭐야 ! 결국 수리한 건가 ? 로봇일 때가 훨씬 귀여웠는데 . 그 노력을 다른데 기울였다면 좋았을 텐데 .”

제나가 이렇게 말하자 레베카가 고개를 돌려 제나를 바라보았다 .

내가 계산한 바로는 이게 더 효율적이야 . 저 느린 로봇은 별로 도움이 안 되니까 . 그러니 내가 하는 일에 신경 끄는 게 어때 .”

원래 몸으로 돌아오니 말투가 조금은 부드러워졌는데 ?”

제나가 쓴 웃음을 지으며 내려와 헬릭과 통신장치를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

확인은 실컷 해봤어 ?”

제나의 물음에 헬릭이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

재미있나 보군 .”

사람 말을 믿지 않으니까 괜한 헛고생 하는 거라고 .”

제나가 포기할 줄 알았다는 듯 말했다 . 하지만 헬릭은 아직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 번개가 잦아드는 시간에 다시 통신 상태를 확인해 볼 생각을 하고 있었다 .

자 그럼 ! 사람도 늘었으니 사냥이라도 가볼까 !”

제나가 이렇게 말하고는 밖으로 나가자 , 헬릭이 그 뒤를 따르며 물었다 .

사냥 ? 무슨 소리지 ?”

무슨 소리긴 말 그대로 사냥이지 . 저 비상 식량만 먹고 산 건 아니라고 . 가끔은 고기도 먹어야지 . 그래 ! 같이 가는 게 어때 ? 아무래도 혼자보다는 둘이 나을 테니까 .”

제나가 먼저 바이크에 올라타 그의 결정을 기다렸다 . 헬릭은 잠시 머뭇거리다 이내 바이크의 뒷좌석에 올라탔다 . 잠시 네비게이터를 확인한 제나가 거칠게 바이크의 가속 페달을 밟았다 . 제나의 어깨 너머로 네비게이터의 작동을 바라보던 헬릭이 큰소리로 물었다 .

통신이 되지 않는데 네비게이터는 어떻게 작동하는 거지 ?”

정상 작동하는 건 아냐 . 내가 지표면에 심어놓은 위치 센서들로 판단하는 거라 범위를 벗어나면 제대로 동작하지 않아 .”

이렇게 소리치고는 제나가 한 곳을 가리켰다 . 거기에는 길이 1 미터 정도의 막대 모양의 센서가 세워져 있었다 .

이끼들이 깔린 대지를 가로질러 , 컨테이너에서 보던 지평선을 향해 한 시간 정도를 달렸을 때 바이크가 멈추고 , 제나가 멀리 한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

저기가 바로 사냥터야 !”

제나가 가리킨 방향 멀리 , 녹색의 숲이 펼쳐져 있었으나 바이크가 정지 한 곳이 절벽의 끝자락 이어서 목적지까지 가기 쉽지 않을 것 같았다 .

우리가 있는 곳이 고원이었군 . 그런데 저 아래로 어떻게 내려가지 ?”

걱정하지마 . 조금만 더 가면 길이 나올 거야 . 그 길을 따라가면 금방이지 .”

제나가 말을 마치고 다시 출발했다 . 그녀의 말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저지대로 내려가는 도로가 나타나 그것을 타고 숲으로 갈 수 있었다 . 포장되어 있지도 않고 , 폭이 일반 도로에 비해 매우 넓은 것으로 보아 전에 보았던 토양 환경 조성용 차량이 이동하기 위해 만든 도로 같았다 .

한 시간여를 더 달려 숲에 가까워지자 이끼는 별로 보이지 않고 , 키 작은 풀들이 지표를 뒤덮고 있었다 . 풀 숲을 지나 숲 입구 쪽에 들어서자 빽빽이 들어찬 나무 때문에 주위가 꽤 어두워졌다 . 제나는 바이크를 세우고 옆에 매달려 있던 소총을 꺼내 들었다 .

행성에서 떠나면서 녹지 환경을 조성한 이곳에 동물들을 풀어 놓은 모양이야 . 애완동물이나 식량용으로 키웠던 가축들이었을 텐데 , 사나워 보이는 놈도 있으니 조심해 .”

제나는 이렇게 말하고는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 . 농담인지 진담인지 알 수 없었지만 사나워 보이는 놈이란 말에 헬릭은 등에 매고 있던 저격 소총을 앞 쪽으로 돌려 바로 잡고는 주위를 둘러 보았다 . 어두운 숲에서 들려오는 바람소리 , 나뭇잎 소리 , 정체를 알 수 없는 새 소리 때문인지 천둥 소리가 조금은 작아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

사냥감이 무엇인지 제나에게 물어보려고 고개를 돌렸을 때 , 그녀가 소총을 들고 풀 숲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

뭘 잡아야 하지 ?”

헬릭이 묻자 그녀가 조용히 하라는 듯 집게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다 대더니 ,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

나만 빼고 뭐든지 . 난 잠시 할 일이 있으니 이따 여기서 다시 보자고 .”

잠시 할 일이 있다는 제나의 말에 헬릭이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려다가 이내 그만 두었다 .

소변이라도 보려는 모양이군 .’

제나가 지금껏 보여준 성격으로 판단했을 때는 그게 사실이라면 , 별로 부끄러워하지 않고 서슴없이 말할 것 같기도 했지만 , 여자를 짐작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 특히나 제나의 경우는 더욱 그러했다 . 헬릭은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하고 , 제나가 사라진 반대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 , 길을 잃을 것을 생각해 대검으로 나무에 표시를 하며 숲 깊숙한 곳으로 한참 들어갔을 때 , 어디선가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가 낮게 울렸다 . 멈추어 서서 소리가 난 방향으로 총구를 겨누었을 때 , 돼지 한 마리가 앞 쪽 풀숲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 제나의 말대로 가축으로 키우던 놈이었던지 야생성이 부족한 듯 , 헬릭이 앞에 있음에도 신경도 쓰지 않고 코를 벌름거리며 나무 밑을 파고 있었다 .

헬릭이 천천히 소총을 들어 돼지의 머리를 겨냥하고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 돼지가 고개를 들었다 . 그와 동시에 돼지의 등 뒤쪽에서 거대한 것이 튀어나와 돼지의 목을 물고는 몸을 뒤집었다 . 목을 물린 돼지가 시끄러운 울음 소리를 내며 버둥거렸지만 그 거대한 육식 동물의 힘을 이기기에는 부족했다 . 거대한 것의 정체는 다름아닌 흰 호랑이였다 . 제나의 말대로라면 애완용으로 키우던 알비노 호랑이일 테지만 돼지와는 달리 야생성이 되살아나 있는 것 같았다 . 분명 유전자 조작으로 공격적인 성향을 없애고 순하게 개량했을 텐데 , 먹이를 찾지 못하게 되자 생존 본능이 그것을 이겨낸 모양이었다 . 어느새 돼지의 움직임이 둔해졌고 , 배를 가르고 그 안에 주둥이를 들이밀어 입 주변이 벌겋게 된 놈이 움직임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헬릭을 바라보고 있었다 .

돼지를 놓쳤으니 네 놈이라도 잡아야 할까 ?”

헬릭이 중얼거리며 호랑이의 미간을 겨눴다 . 그러자 이내 호랑이가 천천히 헬릭 쪽으로 다가왔다 . 행동이 느린 게 공격하려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에 방아쇠를 당기려는데 뒤에서 제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쏘지마 ! 저 놈도 외로워서 그런 거니까 .”

그 말과 함께 호랑이가 안기듯 덮쳤고 ,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한 헬릭이 뒤로 넘어졌다 . 헬릭이 넘어지자 놈이 헬릭의 뺨과 입 주변을 핥아 주둥이의 돼지 피가 얼굴에 잔뜩 묻었다 . 이윽고 제나가 다가와 거친 혀로 헬릭의 뺨을 핥던 호랑이의 목덜미를 쓰다듬었고 , 그 틈에 헬릭이 빠져 나왔다 .

인사해 . 이 놈도 우리같이 사냥꾼이니까 .”

아까 말한 사나워 보이는 놈이란 게 이 놈인가 ?”

그래 , 맞아 .”

애완용이었던 습성이 남아있는지 제나 앞에서 고양이처럼 얌전한 호랑이를 지켜보던 헬릭이 물었다 .

네가 키우던 건 아닐 테고 , 돼지를 잡아먹는 걸 보면 야생성이 되살아난 것 같던데 .”

여기를 발견하고 처음 돼지를 사냥했을 때 만났는데 , 삐쩍 말라 있길래 돼지 내장을 먹이면서 가르쳤지 . 야생성이 살아난 건 아냐 .”

제나의 말에 헬릭이 어떻게 된 상황인지 이해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

오늘은 따로 사냥할 필요 없겠는데 , 야옹이가 잡은 걸 조금 떼어가면 될 것 같아 .”

호랑이를 야옹이라고 부르는 것에 헬릭이 피식하고 웃는 사이 , 제나가 돼지 쪽으로 다가가 칼로 앞다리와 뒷다리를 떼어내 한 쌍씩 끈으로 묶은 뒤 하나를 헬릭에게 던졌다 .

저 녀석 먹는 양이 많지 않으니 , 이 정도 가져가도 상관없을 거야 .”

그리고는 , 남은 다리 한 쌍을 어깨에 매고 일어나 호랑이를 쓰다듬더니 말했다 .

너도 쓰다듬어줘 . 나중에 만났을 때는 네 말대로 야생성이 되살아나 공격할지도 모르잖아 . 그리고 저 놈도 많이 외로웠을 테니 .”

제나의 말에 헬릭이 호랑이의 이마를 긁어주자 금세 배를 보이며 드러누웠다 .

데려가서 키울 생각은 안 했나 보군 .”

제나가 호랑이에게 꽤 애정을 보이는 것 같아 헬릭이 호랑이의 배를 긁으며 슬쩍 떠보았다 .

생각은 했지만 여기가 더 나아 .”

제나가 이렇게 말하고는 호랑이의 등을 살짝 때려 돌려보내자 , 녀석은 제나를 잠시 물끄러미 지켜보더니 돼지를 물고 숲 속으로 사라졌다 .

그럼 돌아갈까 ?”

호랑이가 사라진 방향을 지켜보던 제나가 이렇게 말하고는 앞장섰다 . 숲의 지리를 다 꿰고 있는지 바이크를 세워둔 곳까지 오는데 한 번도 머뭇거리거나 방향을 확인하거나 하지도 않았다 . 바이크에 올라타려던 헬릭은 포도와 마른 나뭇가지 따위의 땔감이 가방 안에 잔뜩 담겨 있는 것을 발견하고 제나에게 물었다 .

숲에 이런 것도 있나 ?”

아까 가서 따온 건데 , 저 쪽에 가면 꽤 많아 . 어서 타 ! 어두워지기 전에 돌아가야 하니까 .”

이걸 따러 갔던 건가 ? 아니지 , 그런 거라면 굳이 혼자 갈 필요가 없었겠지 ?’

헬릭이 이런 생각을 하며 피가 떨어지는 돼지 다리를 바이크 뒤에 묶고 , 뒷좌석에 앉자마자 제나가 바이크를 거칠게 출발시켰다 . 제나가 서둘렀는지 , 아니면 기분 탓인지 알 수 없었으나 돌아오는 데는 한 시간 반이 채 걸리지 않았다 .

컨테이너에 도착해 짐을 내려놓자 , 레베카가 낡은 정비복을 입고 나타나 말했다 .

또 이것 저것 귀찮게 하겠군 .”

저 돼지 다리들 손질 좀 해 !”

제나가 레베카의 말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 돼지 다리를 가리키며 말하자 레베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 그 모습에 헬릭은 분명 상황에 따라 감정을 시뮬레이션 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지만 , 로봇이었을 때에 알 수 없던 표정 변화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재미있어 미소를 지었다 .

레베카가 돼지 다리를 들고 사라지자 , 이번에는 헬릭에게 땔감이 든 가방을 건네며 말했다 .

전기로 조리가 가능하지만 , 오늘은 직접 구워보기로 했어 . 불 잘 피우라고 !”

제나는 이렇게 말하고는 , 포도를 안고 컨테이너 안으로 사라졌다 . 헬릭은 가방을 뒤집어 땔감을 바닥에 쏟아놓고 ,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찾다가 무기케이스 안에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 그 대신 , 구난 구호 세트에서 꺼냈던 마그네슘 파이어 스타터를 꺼냈다 .

먼저 대검으로 나뭇가지를 깎아 불이 붙기 쉽게 해놓고는 , 말라 부스러진 나뭇잎을 함께 모아 부싯깃을 만든 뒤에 파이어 스타터를 대검으로 긁어 마그네슘 가루를 만들어 모았다 . 그리고 파이어 스타터의 부싯돌을 세게 내리그어 불꽃을 일으키자 마그네슘 가루에 불꽃이 반응하여 바짝 붙여 놓았던 부싯깃에 불이 붙었다 . 불이 어느 정도 피어 올랐을 때 , 레베카가 손질한 고기를 꼬챙이에 끼워 가지고 나타났고 , 헬릭은 그것을 받아 모닥불 주위에 세워 굽기 시작했다 .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나가 병 두 개를 들고 나타났다 .

원래는 위스키만 꺼내올 생각이었는데 , 포도주도 한 번 마셔보자고 .’

벌써 마시고 나왔는지 얼굴이 상기된 제나에게서 헬릭이 위스키 병을 받아 들었다 . 한 모금 들이키자 위스키 향이 입 안에 퍼지며 목이 기분 좋게 타 들어갔다 . 그리곤 자신도 모르게 레베카에게 병을 건네자 , 레베카가 그것을 받아 아무 말 없이 제나에게 건넸다 .

어느새 주위는 어두워져 있었고 , 그렇게 세 명이 모닥불 주위에 둘러 앉았다 . 레베카가 익은 고기들을 접시 위에 올려놓자 제나가 얼른 그것을 입에 집어넣었다 .

이렇게 직접 불에 구우니까 맛이 색다른데 , 어서 먹어봐 .”

제나가 헬릭에게 권했지만 , 그는 대신 위스키만 한 모금 더 들이켰다 .

그리 나쁜 상황은 아니잖아 ? 먹을 것도 쌓여있고 , 수도시설까지 있어서 물도 부족하지 않고 , 게다가 말동무 해줄 여자에 부려 먹을 안드로이드까지 있으니 조난이 아니라 휴양이라고 불러도 손색 없지 않아 ?”

휴양까지는 아니지만 , 극한 상황은 아니라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

그런데 왜 그렇게 인상을 쓰고 앉아서 아까운 술만 축 내는 거야 ? 고기나 먹으라고 !”

제나가 이렇게 말하며 고기 한 점을 헬릭의 입에 밀어 넣었다 . 제나의 손에 묻었던 기름기 때문에 헬릭의 입 주변이 모닥불 빛에 번들거렸다 .

군인 …… 뭐 그런 거였나 보던데 ?”

갑작스런 물음에 고기를 씹고 있던 헬릭이 겨우 삼키고 말했다 .

비슷한 거였지 .”

그럴 것 같았어 . 저런 장비를 들고 다니는데다 , 숲에서는 길도 표시해 놓고 , 게다가 불도 피울 줄 알고 말이지 .”

숲에서 나무에 냈던 표식을 알아차리고 , 불 피우는 모습도 지켜봤던 모양이었다 .

그런데 어쩌다 저런 걸 타고 여기에 오게 된 거야 ?”

우주 여객선이 납치 당해서 탈출했다 깨어보니 여기더군 . 그런데 넌 어떻게 여기 있게 된 거지 ?”

말하지 않았나 ? 우주선이 공격 당해서 여기 오게 됐다고 .”

직업이 뭐였는데 공격 당한 거야 ? 레베카도 원래 안드로이드의 이름이 아닌 것 같던데 .”

헬릭의 물음에 제나가 잠시 멈칫하는 것 같더니 이내 별거 아니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

작은 수송선의 엔지니어였어 . 나도 왜 공격 당했는지는 몰라 . 급작스럽게 당한 일이라 . 레베카는 내가 멋대로 붙인 이름이긴 하지 . 저 안드로이드 원래 주인의 이름이 레베카였던 것 같더라고 . 내가 수리해서 꽤 기억을 찾긴 했지만 , 같이 탈출해서 여기 왔을 때는 완전히 망가져 있어서 자기 이름도 몰랐으니까 .”

별로 의심할 부분이 없는 대답이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 레베카를 처음 불렀을 때 반응이 떠올라 헬릭은 쉽게 납득되지 할 수 없었다 . 그런데 그 때 , 레베카가 입을 열었다 .

오늘 내 원래 하드웨어의 수리를 마치고 나서야 두뇌 모듈이 정상작동을 해서 내 이름이 떠올랐어 . 원래 이름은 이드라고 , 주인이름도 레베카가 아니고 , 하긴 항상 깨어날 때 마다 제멋대로 이름을 붙였으니 , 레베카도 분명 어디선가 주워들은 이름이었겠지 .”

항상 작동 중이지 않았던 건가 ?”

헬릭이 묻자 레베카가 얼굴을 찌푸렸다 .

배터리 전해액이 유실돼서 거의 꺼져 있었다고 , 저 여자가 말동무가 필요하거나 일을 시킬 때를 제외하고 말이지 .”

이드라고 ? 기억해뒀다가 다음에는 이드로 불러줄게 .”

제나가 웃으며 말하자 레베카가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 .

이제 전처럼 마음대로 전원을 끌 수 없을 걸 .”

헬릭은 두 여자 , 아니 한 여자와 안드로이드의 말다툼을 지켜보며 웃다가 말했다 .

그럼 , 그냥 레베카로 부르지 .”

맘대로 해 ! 고기도 다 구워졌으니 난 더 필요 없겠지

레베카가 이렇게 말하고는 컨테이너 안으로 사라졌다 . 레베카가 사라지자 포도주를 들이킨 제나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

나 소원이 한가지 있는데 ……”

소원 ?”

헬릭이 되묻자 , 제나가 다시 포도주를 마시고 말했다 .

한 번 안아볼 수 있을까 ?”

?”

예상치 못했던 말에 헬릭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

혼자 지낸 시간이 길어서 , 체온 , 박동 아니 사람을 느껴보고 싶어서 그런 거야 . 싫다면 할 수 없고 ……”

제나가 이렇게 말하고는 눈을 내리깔았다 . 지금까지는 볼 수 없었던 그녀의 모습에 헬릭이 어떻게 반응해야 할 지 망설였다 . 그리곤 대답 대신 그녀 쪽으로 다가가 품에 안았다 . 생각보다 작은 몸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 제나가 헬릭의 심장에 귀를 가져다 대고 말했다 .

고마워 ! 이 소리가 듣고 싶었어 .”

다른 때라면 그녀를 안거나 하지 않았을 거라고 , 술기운 때문일 거라고 헬릭은 생각했다 . 그러나 헬릭도 그녀의 온기를 느끼며 자신을 휘감고 있던 불안감이 조금은 사라지는 것 같았다 .

원래 이상한 사람은 아니야 . 누군가 나타났다는 사실이 기뻐서 , 사람을 만나본 게 오랜만이라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서 그랬을 거라고 생각해줘 .”

헬릭의 품에 안겨 제나가 중얼거렸다 . 그리곤 이내 헬릭에게서 벗어나 눈가를 소매로 훔치고 벌떡 일어서서 말했다 .

내 소원을 들어줬으니까 나도 당신 소원을 들어줄게 .”

어느새 평소의 목소리로 돌아간 제나는 이렇게 말하고는 컨테이너로 들어갔다 . 헬릭은 모닥불에 앉아 그녀의 마지막 말을 되씹다가 남은 포도주를 벌컥 들이키고는 , 통신장비의 상태를 확인하려다가 포기하고 컨테이너 옆에 있는 개인용 비상 탈출 캡슐 안으로 들어갔다 . 제나를 안았을 때 느꼈던 체온과 술기운 , 그리고 그녀의 마지막 말의 여운 때문에 잠시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갈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 이내 픽 하고 웃고는 캡슐의 해치를 내린 뒤 눈을 감았다 . [u2]  

다음날 , 헬릭은 한낮이 되어서야 눈을 떴다 . 지난 밤 , 그다지 과음을 하진 않았는데 , 어찌된 일인지 머리가 깨질 듯 아파 , 눈 안쪽에서도 통증이 느껴졌다 .

제나가 가져온 포도주 맛이 조금 이상하긴 했는데 ……”

헬릭이 캡슐을 열고 머리에 손을 얹은 채 , 낮은 신음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켰을 때 레베카가 캡슐 옆에 서 있는 게 보였다 . 그녀는 비상 탈출 장치에 부착되어 있던 커다란 낙하산 모듈을 꺼내든 채 헬릭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

숙취로 인한 두통이군 !”

헬릭이 고개를 끄덕이자 레베카가 컨테이너 안을 가리켰다 .

들어가봐 . 안에 숙취로 머리를 쥐어짜는 인간이 또 하나 있으니까 .”

레베카는 이렇게 말하고는 묘한 웃음을 띠었다 . 헬릭이 일어나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가자 레베카의 말대로 제나가 의자에 앉아 고개를 푹 숙인 채 머리를 부여잡고 있었다 .

진통제 같은 거 있어 ?”

헬릭의 물음에 제나가 손을 내저었다 . 짐작은 했지만 이 두통이 가실 때까지 참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생각하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 헬릭은 제나 앞에 비스듬히 놓인 다른 의자에 앉아 말했다 .

아무래도 어제 그 포도주가 이상했던 것 같아 . 따온 포도로 만들었을 거라고 짐작은 하지만 대체 어떻게 만든 거야 ?”

실컷 마셔놓고 딴 소리하는 거야 ! 직접 만든 술인데도 제대로 취하게 해줬잖아 . 그랬으면 됐지 뭘 더 바라는 거야 ! 덕분에 이런 숙취도 느껴보잖아 .”

그래 ! 확실히 취하긴 했지 .”

헬릭이 이렇게 말하며 어이없다는 듯 웃자 , 제나가 따라 웃더니 머리가 온통 헝클어진 채로 고개를 들고 말했다 .

어제 내가 한 말 기억해 ?”

제나의 물음에 헬릭이 어떤 말을 의미하는지 몰라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

네 소원을 들어 주겠다는 말 .”

! 그거 말이군 . 그래 기억하고 있는데 왜 ?”

헬릭의 대답에 제나가 눈을 쳐다보며 말했다 .

왜긴 들어주려고 그러는 거지 . 물론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 .”

제나의 말에 헬릭은 집중하지 못하고 귀찮다는 듯 이렇게 내뱉었다 . 다만 , 어젯밤 자신이 제나의 말을 다른 의미로 오해했었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속으론 잠시 안도했다 .

어젯밤 그녀를 따라 들어갔더라면 큰일 날 뻔 했군 .’

헬릭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제나가 다시 말했다 .

여기서 빠져나가는 게 소원 아냐 ?”

그 말에 헬릭이 눈을 크게 떴다 .

그럼 빠져 나갈 방법을 알고 있다는 거야 ?”

이제 제대로 알아 들었나 보군 . 말했잖아 잘 될지는 모른다고 .”

제나가 이렇게 말하고는 헬릭의 놀란 표정이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 느긋한 표정의 제나와는 반대로 헬릭의 표정은 놀람과 원망이 섞인 묘한 것으로 변해있었다 .

방법이 있었으면서 왜 지금까지 숨기고 있었던 거지 ?”

헬릭의 표정이 바뀐 것을 알아 챈 제나가 웃음을 멈추고 말했다 .

왜 화를 내는 거지 ? 여기서 지낸 지 얼마나 됐다고 내가 숨겼다고 하는 거야 ? 그리고 , 레베카도 거의 수리 됐고 , 네가 타고 온 비상 탈출 캡슐 덕에 가능성이 높아지긴 했지만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말을 안 했던 거지 숨긴 건 아니라고 !”

흥분한 제나의 목소리에 헬릭이 입을 다물었다 . 그녀의 말대로였지만 처음에 그 가능성에 대해 귀띔이라도 해주었다면 연결되지 않는 통신장치를 붙들고 씨름할 필요도 없었다는 사실이 떠올라 화가 치밀었다 . 하지만 더 이상 그녀를 추궁하거나 자극하는 것이 자신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꾹 참았다 .

알겠어 . 내가 오해 했군 . 그런데 그 방법이 대체 뭐지 ?”

헬릭이 마음을 가라 앉히고 묻자 , 제나가 의자를 끌고 문 앞에 가 앉은 뒤 , 구름이 가득 덮인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

하늘을 잘 봐 .”

헬릭은 그녀의 옆으로 다가가 하늘을 바라보았다 . 여전히 번개가 수시로 번쩍이는 하늘은 바닥에 깔린 이끼와 함께 어울려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

왜 지상으로는 번개가 떨어지지 않을까 ?”

그야 고도가 매우 높은 곳에서 발생하기 때문이겠지 .”

헬릭이 대답하자 제나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

번개의 발생 빈도에 비해 들리는 천둥소리가 작긴 하지만 간혹 큰 소리가 들리는데도 바닥에는 떨어지지 않는다고 . 잘 보라고 저 번개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선 한 점을 향하는 것 같지 않아 ?”

제나의 말에 헬릭이 번개가 치는 모양을 확인했지만 , 제나의 말대로 한 점을 향하는 지는 알 수 없었다 . 헬릭이 대답 없이 하늘을 주시하자 제나가 자신의 PDA 를 꺼내 헬릭에게 내밀었다 . 헬릭이 그것을 받아 화면을 확인했을 때 , 거기에는 흡사 성난 가시복어 같은 타원형 물체의 형상이 떠올라 있었다 .

생긴 것처럼 이름도 가시복어 (Porcupine fish) . 지상에 떨어지는 번개를 막기 위해 띄워 올린 비행선 .”

제나의 말에 헬릭이 PDA 를 조작해 다른 내용들을 살펴보았다 . 그녀의 말대로 낙뢰를 흡수해 동력으로 활용하고 구름을 생성하는 기능에 대한 내용이 PDA 에 나와 있었다 .

저 번개 구름은 우리가 갔던 사냥터 너머의 해양에서 생성되는 것 같은데 저렇게 빈틈없이 유지 된다는 건 그 비행선이 여전히 동작하고 있다는 말이겠지 . 완벽하게는 아닌 것 같지만 .”

헬릭은 PDA 를 내리고 다시 하늘을 살폈지만 구름 층이 두터워서 비행선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

PDA 에 나온 것은 소형이고 , 그 소형을 관리하는 대형 가시복어가 있어 .”

헬릭이 하늘을 주시하는 동안 제나가 이야기를 계속했다 .

보이지 않지만 번개의 형태를 보면 대강의 위치는 짐작할 수 있지 . 한 동안 지켜봐야 하겠지만 .”

이 컨테이너에서 자료들을 발견한 건가 ?”

헬릭이 PDA 를 다시 제나에게 건네주며 묻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

이 곳이 저 가시복어와 토양 환경 조성용 차량을 관리하던 곳 같아 . 가시복어는 직접 조종하거나 한 것 같진 않고 수리나 작동 상태를 파악하는 정도 같지만 .”

제나의 말을 듣자 컨테이너와 비상식량의 존재에 대해 가졌던 의문이 조금 풀리는 것 같았다 . 하지만 저 가시복어란 비행선과 탈출이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

비행선에 대한 건 잘 알겠는데 , 대체 어떻게 탈출 한다는 거지 ?”

헬릭의 물음에 제나가 머리를 쓸어 내리며 대답했다 .

내 생각에 가시복어가 정상 작동을 해서 단순히 공중에 떠 있는 피뢰침이 아니라 구름 내 전하의 방전을 적극적으로 유도한다면 , 우리가 가지고 있는 통신 장치로도 위성과 통신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 .”

하지만 어떻게 정상 작동 시킨다는 거지 . 어떤 고장이 났을지도 모르고 , 더구나 위성과 통신도 안 되는데 번개 한가운데 떠 있는 비행선을 무슨 수로 조종한다는 건지 모르겠군 .”

헬릭이 이렇게 대답하고는 의자에 돌아와 앉았다 . 제나와의 대화로 두통이 더 심해지는 것 같았다 .

여기서 찾아 낸 자료에는 위성에서 가시복어로 보내는 통신 프로토콜에 대한 자료와 명령어들도 있어 . 레베카가 분석한다면 그것을 이용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거야 . 문제는 어떻게 가시복어에 명령을 내리는가 하는 건데 . 그 동안 내가 생각했던 건 명령어를 발신하는 비행선을 띄우는 거였어 .

제나의 말에 헬릭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

비행선을 만들 수 있다면 바로 통신위성에 연결해서 구조요청을 보내면 되지 , 어째서 가시복어를 이용하려는 거지 ?”

그것도 좋은 방법이겠지만 그럴 경우 회신을 받지 못해 . 띄워 올린 비행선에 구조 신호나 음성을 저장해 그게 제대로 전달되기를 바랄 뿐이지 . 그리고 네가 방금 전에 말한 대로 우리가 띄울 비행선이 구름 안에서 위성과 통신이 가능하다는 확신도 없고 . 구름 안이긴 하지만 거리가 가까운 가시복어 쪽이 확률이 더 높지 . 그리고 가시복어의 경우에는 최악의 상황에선 우리가 직접 가시복어를 타고 올라가 통신시도를 해볼 수도 있는 차선책이 가능해지지 .”

제나의 대답에 헬릭이 관자놀이에 손을 가져갔다 . 두통 때문에 그녀의 방법을 대신할 만한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

두통 때문에 집중할 수가 없군 ! 그럼 비행선은 어떻게 만들 거지 ?”

일단 너는 좀 쉬고 있어 . 지금 얘기해도 소용 없을 것 같으니까 . 난 레베카를 좀 보고 올 테니 이따 다시 이야기 하자고 .”

제나는 이야기를 하면서 두통이 가시기라도 했는지 들어올 때 머리를 쥐어뜯고 있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

고맙다는 말을 못했군 .”

제나가 나가고 난 뒤 , 헬릭은 낮게 중얼거렸다 . 그녀가 자신에게 방법을 숨기고 있었다는 생각 때문에 줄곧 본심과는 다른 비관적인 물음만 던졌었지만 , 그녀가 제시한 방법으로 한 가닥 희망이 생긴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었다 .

헬릭은 잠을 더 자면 두통이 좀 가실지 모른다는 생각에 등받이에 기댄 채 눈을 감았다 . 어느 새 제나의 낙천적인 성격이 전염이라도 된 것일까 ? 탈출에 대한 가능성으로 흥분되었을 텐데도 술 때문에 숙면을 취하지 못했던 헬릭은 금세 잠에 빠지고 말았다 .

헬릭은 한 시간 정도 자다가 , 밖에서 들리는 소란스러운 소리에 눈을 떴다 . 두통이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지만 자기 전보다는 훨씬 가벼워져 있었다 . 소란스러운 소리의 정체를 파악하기 전에 , 빈 속을 채우면 증상이 더 나아질 것 같아 비상 식량 상자를 뜯으며 밖으로 나갔을 때 , 제나가 낙하산 모듈 안에서 낙하산을 끄집어내 펼쳐놓고는 무엇인가 만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

소란스러운 소리의 정체는 그들이 사용하고 있는 공구 소리와 두 사람의 말다툼 소리가 섞여 만들어진 소음이었다 .

뭘 만들고 있는 거지 ?”

헬릭이 비상 식량 박스를 열며 이렇게 묻자 제나가 낙하산 끝을 펼치다 내려놓고 헬릭 손에 들린 포장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

잘 됐군 . 일손이 필요하던 참이었어 . 컨테이너 뒤 쪽 , 창고 구석에 보면 그 포장지와 상자를 모아 놓은 게 있을 거야 . 그것 좀 가져다 줘 .”

창고 ?”

헬릭은 이내 레베카가 자신의 안드로이드 몸체를 꺼내왔던 장소를 떠올렸다 .

창고에 들어가자 불이 켜지며 창고 안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왔다 . 정체를 알 수 없는 기계와 공구들이 잔뜩 메운 창고 한 쪽 구석에서 제나가 말한 포장지 묶음을 발견한 헬릭이 그것을 들고 나오려다 반대 쪽에 비상 착륙 장치가 세워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 제나와 레베카가 타고 온 것으로 보이는 비상 탈출 장치는 거의 분해되어 몇 개의 외부 부품과 뼈대 정도만 남아있는 상태였다 .

잠시 지켜보던 헬릭이 포장지를 들고 나오려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는지 , 몸을 돌려 비상 탈출 장치 쪽으로 다가갔다 . 옆으로 슬쩍 보이는 그을음 , 그리고 그 뒤편으로 길게 자국이 나 있었다 . 일부러 이 흔적이 보이지 않도록 옆으로 슬쩍 돌려 놓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 이 흔적이 공격 받은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했다 . 제나와 레베카가 탈출할 때 그들을 습격한 자들이 비상 탈출 장치를 공격했다고 생각하기가 쉽지만 , 우주선과의 전투에서 비상 탈출 캡슐을 공격하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 그것이 탈출자에 대한 인도적인 차원의 배려라면 좋겠지만 , 실상은 공격 중에 비무장의 비상 탈출 장치를 공격하는 것이 화력이 낭비이기 때문이었다 . 물론 비상 탈출 장치가 목적이라면 공격도 가능한 일이지만 , 가치와 비용 그리고 자원에 대한 인류의 집착은 묘한 불문율들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

헬릭은 길게 늘어져 있는 피탄 자국에 살짝 손을 가져다 대 보고는 포장지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

제나와 레베카는 펼쳐놓은 낙하산을 기구 형태로 만들고 연결 부분을 이어 붙이고 있었다 . 헬릭이 포장지와 상자를 가져오자 레베카가 그것을 받아 한 쪽으로 옮기고는 기구 형태로 만든 낙하산 외벽에 가져다 대 보고는 말했다 .

이 포장지가 어느 정도는 번개를 막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 네가 원하는 만큼 완벽하지는 않을거야 .”

제나가 그 말에 상자를 가리켰다 .

상자를 포장지와 낙하산 사이에 넣어서 한 겹 더 보호 한다면 어떨까 ?”

무게가 증가하게 되면 기구의 크기가 더 커야 할 텐데 ?”

레베카가 대답하자 제나가 코웃음을 치더니 말했다 .

너도 정확한 계산으로 나온 수치는 아니잖아 .”

그렇게 말한다면 계산해야겠군 .”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레베카가 하던 행동을 멈추고 기구가 감당할 수 있는 무게를 계산하는 사이 , 헬릭이 기구를 보며 말했다 .

포장지와 상자를 모은 이유가 이거였나 ? 그렇다는 건 꽤 오래 기구를 만들 생각을 한 것 같은데 …….”

헬릭의 물음에 제나가 기구를 펼치며 말했다 .

모아 놓으면 언젠가 쓸모가 있을 것 같아서였지 , 이런 용도로 사용하게 될 줄은 몰랐어 .”

제나의 대답에 헬릭이 픽 웃음을 흘리고는 물었다 .

그건 그렇고 , 이 기구를 어떻게 띄울 셈이지 ? 공기를 가열해서 띄우기에는 크기가 너무 작은 것 같은데 .”

헬릭의 물음에 제나가 한 쪽에 있는 비상탈출장치의 위치 조정용 가스 저장 탱크를 가리켰다 .

저 가스 , 헬륨이야 . 저걸 채우려고 생각 중이야 .”

수소가 아니라 헬륨이라고 ?”

수소였다면 기구가 아니라 번개 속으로 폭발물을 날리는 셈이었겠지 .”

헬릭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기구의 한 쪽을 잡자 , 레베카가 계산이 끝났는지 포장지 묶음 하나를 던지며 말했다 .

정확한 수치는 아니지만 , 신뢰할 수 있는 오류 범위 내에서의 계산으로는 현재 제작 중인 기구 크기라면 충분해 . 상자를 이용해도 되겠어 . 빈틈 없이 똑바로 붙여 .”

헬릭은 자기 앞에 떨어진 포장지 묶음을 펼쳐 포장지 하나를 기구에 대 보았다 . 정전기 방지를 위한 반투명 비닐 포장지에 헬릭의 얼굴이 일그러져 비쳤다 . 열 접착을 위한 글루건 (Glue-gun) 을 든 헬릭은 한 장 한 장 포장지를 기구에 붙이기 시작했다 .

 

낙하산의 접착을 맡은 제나가 글루건을 내려 놓고는 바닥에 주저 앉았다 .

! 다 끝났어 .”

제나가 주저 앉자 레베카가 포장지 더미를 던지며 말했다 .

끝나기는 이건 아직도 많이 남았어 .”

하지만 레베카의 다그침에도 제나는 일어나지 않았다 . 헬릭은 아무 말 없이 포장지를 붙여나갔다 . 그 때 , 제나가 벌떡 일어나 말했다 .

가스를 집어넣고 붙이면 금방 끝나지 않을까 ?”

입체적이 되면 더 붙이기 힘들어질 거야 .”

헬릭이 이렇게 이야기 하자 제나가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

아무래도 너무 지겨워서 다른 일을 해야겠어 .”

이렇게 말하고는 컨테이너 안으로 사라지자 레베카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조소 섞인 얼굴로 말했다 .

어쩐지 오래 참는다고 생각하고 있었지 .”

레베카의 말에 헬릭이 씨익 하고 웃음을 지었다 . 인간을 판단하는 안드로이드의 혼잣말이란 , 그녀가 안드로이드라는 것을 의식하는 순간 매우 웃기는 일이 되었다 . 완벽하진 않으나 묘한 동질감 , 그것은 인간으로 착각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

그 뒤로 몇 번인가 제나가 컨테이너에서 나왔다가 다시 들어갔지만 둘은 신경 쓰지 않고 , 일을 계속했다 .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작업은 계속 되었다 . 헬릭이 컨테이너에서 비상식량 상자를 들고나와 레베카의 작업을 지켜보며 말했다 .

오늘 작업은 이만 하는 게 좋은 것 같은데 .”

헬릭의 말에 레베카가 들고 있던 포장지를 내려 놓았다 .

난 작업을 계속해도 별 상관없지만 , 다른 할 일도 있으니 그것을 먼저 끝내고 난 뒤에 해도 별 상관은 없겠군 .”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는 포장지 더미와 작업 공구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 헬릭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비상 식량을 뜯어 배를 채웠다 . 레베카가 작업 중이던 기구를 정리하는 사이 , 제나가 밖으로 나왔다 . 2 층에서 뭘 하고 있었던 건지 , 그녀의 이마에 작은 땀 방울이 맺혀 있었다 .

내일이면 완성 될 것 같군 !.”

뭘 하다 온 거야 ?”

헬릭의 갈색의 비스킷 비슷한 합성 식품을 씹으며 물었다 . 제나는 대답 대신 헬릭의 손에 들린 것을 빼앗아 자신의 입으로 가져가더니 말했다 .

저 비행선에 실을 통신장치를 만들었지 . 밤에 레베카가 손을 보고 프로토콜을 분석해 입력하면 될 거야 .”

그녀의 말에 헬릭이 미소를 띠며 말했다 .

난 놀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 그건 아니었던 모양이군

처음엔 그럴까 했는데 , 통신 장비가 눈에 자꾸 걸려서 말이지 .”

헬릭은 제나의 표정을 보면서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 그 때 , 레베카가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

비행선이 필요한 건 내가 아니라 너희들인데 나만 바쁘게 돌아다니는 것 같군 .”

아니야 . 나도 꽤 바빴다고 , 저기 실을 통신 장비를 만드느라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기나 해 !”

제나가 레베카의 말에 이렇게 대답하자 , 레베카가 그렇겠지 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

마무리 짓지도 않고 내가 뒤처리 해야 할 일만 벌여 놓았겠지 .”

레베카의 말에 제나가 뭔가 변명이라도 하려는 것 같았지만 , 레베카는 이미 컨테이너 안으로 사라진 뒤였다 .

뭔가 굉장히 건방진 것 같지 않아 ?”

제나가 사라진 레베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렇게 물었다 . 헬릭은 짐짓 모르는 척하는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그러자 제나가 흠 하는 소리를 내더니 이를 악물고 말했다 .

안드로이드가 아니었다면 , 한 방 날렸을 거야 .”

그 말에 헬릭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 헬릭의 웃음에 제나가 이유를 알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이내 따라 웃었다 . 한 참을 그렇게 웃어대던 두 사람이 웃음을 멈춘 것은 어느새 어두워진 하늘을 올려다 보고서였다 .

구름 속에서 혈관처럼 번개가 퍼져나갈 때 마다 , 그 부근의 구름이 하얀 피부처럼 빛났다 . 머지 않아 저 안으로 비행선을 날려보내야 한다 . 두 사람 모두 하늘을 바라보며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그것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 그런 두 사람의 마음과 상관 없다는 듯 하늘의 번개는 무심히 계속 됐다 .

제나가 아무 말 없이 2 층으로 올라가고 나자 , 헬릭은 컨테이너 안을 들여다 보았다 . 레베카가 통신 장치를 조작하는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그는 말 없이 자신의 비상 탈출 장치에 누웠다 . 내일이면 성패가 분명해질 터였다 .

다음 날 , 헬릭이 일어났을 때는 레베카가 통신 장치를 꺼내놓고 기구에 포장지로 마무리를 끝마친 상태였다 . 제나는 아직 일어나지 않았는지 보이지 않았다 .

다 끝 마친 건가 ?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하군 .”

헬릭이 눈을 비비며 이렇게 말하자 레베카가 통신 장치를 가리켰다 .

기구는 마무리가 된 것 같은데 , 통신 장치는 어떻게 보호 할 거지 ? 저기에 번개가 맞는다면 이게 모두 헛수고가 될 텐데 .”

그렇군 .”

레베카의 말에 헬릭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별 다른 방안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

제나가 뭔가 생각해 놓지 않았을까 ?”

헬릭은 이렇게 이야기 하고는 금세 자신이 가능성 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제나에게 기대를 하다니 안쓰럽군 .”

레베카는 그런 헬릭이 웃기기라도 한 지 , 웃음을 흘리며 통신 장치 옆으로 다가갔다 .

머리를 쥐어 짜내 봐 . 내가 가진 데이터 베이스에 이런 상황에 대한 내용은 없으니까 .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는 건 너희들 몫이야 .”

레베카가 이렇게 말하고 통신 장치를 두드리자 헬릭이 짧은 신음 소리를 냈다 . 절연 포장지를 감싸는 것으론 부족 할 것 같았다 . 망으로 둘러싸서 번개를 피하는 것이 제일 적합한 방법 같았지만 그런 재료가 있는지 , 그게 충분할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지 , 어느 것 하나 확실하지 않았다 .

전선으로 새장 모양의 망을 만들어 보호하는 것은 어떨까 ?”

헬릭이 겨우 입을 떼자 , 레베카가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입을 열었다 .

좋은 방법인지도 모르겠군 , 그런데 어디로 흘려 보낼 생각이지 ?”

흘려 보내다니 뭘 말이지 ?”

레베카의 물음에 헬릭이 반문하자 그녀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

뭐긴 번개 말이지 . 어디론가 흘려 보내야 그 방법이 효과가 있을 거야 .”

그 말에 헬릭이 다시 생각에 빠졌다 . 별다른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고민하고 있는 사이 제나가 나타났다 .

뭘 그렇게 골똘히 생각하고 있지 ?”

저 통신 장치를 번개로부터 어떻게 보호할지 고민하고 있었지 .”

그 말에 제나가 웃더니 , 이내 입을 열었다 .

나도 어제 저녁에 그 문제에 대해 고민했었지 .”

고민 했었다는 말에 헬릭이 고개를 들어 제나를 바라보았다 . 그녀는 짐짓 거만한 표정을 짓고 서서 , 누군가 어서 제나가 떠올린 방법에 대해 물어봐 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

어서 말해봐 .”

헬릭 대신 레베카가 감정 없는 목소리로 묻자 , 제나는 김이 빠진다는 듯 휴 하는 한숨을 내 뱉더니 이야기를 계속했다 .

기구 안 한 가운데에 고정시키는 거야 . 그리고 한가지 더 , 이 기구에 프로펠러를 달아서 우리 마음대로 이동 시킬 수 있게 하는 거지 .”

제나의 대답에 헬릭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

기구 한 가운데에 고정시켜서 번개를 피하겠다는 건 이해가 되는데 , 프로펠러를 달아 조종하겠다는 건 무슨 이유 때문이지 ?”

생각해 봐 . 이 비행선이 가시복어에 가까이 다가가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어 ? 바람을 타고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가거나 너무 멀어서 가시복어에 신호를 보낼 수 없다거나 하면 말이지 .”

제나의 말에 일리가 있었지만 , 프로펠러로 기구를 조종하기 위해 사용할 전파가 번개 속에서 방해를 받지 않을지 알 수 없었다 .

무선 조종이 가능하다면 나쁜 생각은 아니군 .”

무선 조종이란 말에 제나가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헬릭을 바라보았다 .

무선 조종이라니 ? 유선 연결 할거야 .”

!”

제나의 말에 헬릭이 놀라 눈을 크게 떴다 . 전선으로 연결한 기구를 번개 구름 안으로 날려보내겠다는 생각은 너무 무모하고 위험한 생각이었다 .

? 그랬다가 번개에 맞기라도 하면 말 그대로 끝장일 텐데 .”

조종용 유선 라인 말고 낙뢰 유도용 라인을 하나 더 연결해 지상에 접지할 거야 . 말하자면 다른 형태의 피뢰침을 연결하겠다는 거지 .”

제나의 말에 레베카가 말했다 .

그런데 그 정도 길이의 전선이 있나 ? 그리고 그 전선의 무게를 기구가 견뎌 낼 수 있을까 하는 것도 의문이로군 .”

그 부분이 나도 걸리긴 하는데 그 외에는 별 다른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서 말이지 .”

제나가 잠시 쉬었다가 다시 이야기를 계속했다 .

전선은 창고에 있는 것을 사용하면 될 것 같은데 , 무게가 어떨지 모르겠군 . 레베카 어때 ? 계산해 볼 수 있을까 ?”

기구가 견디어 낼 수 있는 무게를 계산해 보라는 제나의 말에 레베카가 고개를 흔들었다 .

계산하고 말 것도 없어 . 어느 높이까지 가야 하는지에 따라 바뀔 텐데 그걸 모르니 , 일단 예전에 했던 계산대로 라면 뜨기는 할 테지만 그 높이에서 너희들이 바라는 대로 통신이 가능할 지 모르겠군 .”

레베카가 이렇게 말하자 제나가 픽 웃더니 말했다 .

그 정도면 충분해 . 일단 뜬 단 말이지 .”

제나가 이렇게 말하고 창고 안으로 사라지자 레베카가 헬릭을 바라보며 말했다 .

네가 제시한 방법이 마음에 들지만 성공 가능성은 제나의 방법이 높을 것 같은데 .”

그런 것 같군 , 무모해 보이긴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 무모해지지 않을 수 없겠지 .”

헬릭의 말에 레베카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 그 사이 제나가 창고에서 주 종류의 전선 조각을 들고 나왔다 .

이건 조종용으로 쓰고 , 이걸 피뢰용으로 써야겠군 .”

제나의 손에 들린 전선을 보고 레베카가 말하자 , 제나가 헬릭을 바라보며 말했다 .

, 이제 거의 준비가 끝난 것 같은데 . 기구만 만들면 끝이야 . 그러니 어서 서두르자고 !”

제나의 말에 세 사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 기구를 마무리하고 , 그 안에 통신장치를 넣어 기구 중심에 고정하는 따위의 일 들이 남아있었다 . 대부분의 작업은 정오에 끝났고 마지막으로 제나가 말한 프로펠러를 기구에 부착하는 일이 남았을 때 , 레베카가 창고에 들어가 부품들을 조립해 유선으로 제어할 수 있는 프로펠러 추진장치를 만들어 가지고 나왔다 .

이제 남은 것은 피뢰를 위한 전선을 부착하여 날려보내는 일만 남아있었다 . 날려보내기 전 기구를 지상에 고정시키고 가스를 주입해야 했기 때문에 , 해지기 전까지 준비를 마치고 , 다음 날 기구를 띄우기로 세 사람은 결정했다 .

기구를 지상에 고정시키고 상단과 좌우에 피뢰침을 전선으로 만들어 달자 기구는 그들이 조종하려고 하는 가시복어와 비슷한 형태가 되었다 .

가시가 더 달렸다면 이 놈도 가시복어라 부를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야 .”

작업을 마친 뒤 , 제나가 말했다 .

가시복어를 낚기 위한 미끼겠지 .”

헬릭이 이렇게 말하고 피곤한 듯 , 그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았다 . 그러자 제나도 그 옆에 주저 앉았고 , 레베카가 그 옆에 서서 완성 직전의 비행선과 하늘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

어디 있는지 알 것 같아 ?”

제나가 레베카가 하늘을 바라보는 것을 보고 묻자 , 그녀가 손가락으로 구름 너머를 가리켰다 .

저쪽인 것 같아 . 아니 저쪽이야 .”

저쪽인 것 같다라는 불확실한 대답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 손가락은 그대로인 채로 대답이 바뀌었다 .

내일까지는 저 위치에서 크게 이동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

레베카가 가리킨 방향을 바라보며 제나가 말했다 . 저 위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기를 , 또 다른 상황이 발생하여 문제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수 밖에 없었다 . [u3]  

불안과 기대가 교차하는 밤이 깊어갔다 . 자신의 비상탈출장치에 누워 있던 헬릭이 해치를 열고 일어나 앉았다 . 불안감보다는 기대감 때문이라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 내일이면 저 비행선을 띄워 올릴 수 있게 되고 그러면 탈출에 대한 조그만 희망이라도 열리게 된다 . 그 사실이 그답지 않은 조급하고 초조한 행동들을 야기시켰다 . 가장 두려워하는 것에 마주쳤을 대 누구나 자신과 비슷할 것이라고 애써 위로했지만 그래도 역시 평상시와 달랐던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

내일 저 비행선이 무사히 가시복어에 접근하여 구름층 내의 전하를 방전시켜 주기를 , 헬릭은 간절히 원했다 . 그것이 실패할 경우엔 어떻게 할 것인가 따위는 고민하고 싶지 않았다 . 지금으로서는 거의 유일한 희망 , 그것에 모든 것을 걸어볼 뿐이었다 .

그 때 , 레베카가 컨테이너에서 나왔다 하늘을 올려다 보던 그녀가 헬릭이 깨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물었다 .

“왜 안자고 있지 ? 잠이 오지 않나 ?

“음 , 그렇군 . 피곤하긴 한데 잠이 오지 않는군 .

“억지로라도 자두는 게 좋을 것 같은데 ?

그녀는 밖으로 나와 번개 치는 구름을 계속 지켜 보았다 .

“미리 가시복어 위치라도 확인하는 건가 ?

“헬릭이 이렇게 묻자 레베카가 손가락으로 하늘 위의 한 점을 가리켰다 .

“가시복어라는 것의 위치는 대략 파악하고 있어 . 고도가 어느 정도일지 가늠해 보는 거야 .

레베카의 말에 헬릭이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

“제나에 대해 혹시 알고 있는 게 있나 ?

헬릭의 물음에 레베카가 고개를 돌려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

“내 저장장치에는 그러한 정보는 저장되어 있지 않아 . 하지만 짐작으로는……”

안드로이드 같지않은 말투다 . 거기다 짐작이라니 뭔가 잘못 , 아니 이상하다고 헬릭은 생각했다 .

“같이 탈출한 이 후부터의 기억만 조금 남아 있을 뿐이야 . 제나에 대한 건 모두 그 이후의 것들뿐이지 .

레베카가 이렇게 말하고는 다시 하늘로 고개를 돌렸다 . 두 여자 , 아니 한 여자와 안드로이드의 관계가 묘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 레베카가 다른 안드로이드와 조금 달라 그렇게 느꼈을지도 모르지만 뭔가 숨기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 헬릭이 잠을 청하기 위해 잠자리에 든 이후에도 레베카는 한참을 그렇게 서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

아침에 해가 뜨자 헬릭은 전선 다발을 기구에 연결하고 가스 주입구를 확인했다 . 가스를 주입하는 사이 레베카가 나와 그를 도왔고 , 얼마 지나지 않아 제나도 일어나 두 사람의 행동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 그리곤 조종용 컨트롤러를 가져와 기구의 프로펠러 장치에 연결했다 . 기구에 가스 주입이 끝나가고 조금씩 떠오르기 시작하자 레베카가 방향을 살피며 기구를 살짝 돌렸고 , 가스 주입이 끝나자 바닥에 고정했던 끈들이 팽팽해졌다 .

“자 이제 띄워 올리면 돼 !

헬릭이 이렇게 말하고는 끈을 풀려고 하자 제나가 조종기를 쥐고 말했다 .

“좋아 ! 행운을 빌어보자고 .

그 말이 신호가 되어 끈들이 풀리고 그들이 만든 비행선이 떠올랐다 . 프로펠러가 회전하며 생긴 추진력으로 방향을 잡아 날아가자 헬릭이 피뢰용 전선을 지상에 박아 놓았던 금속 막대에 연결했다 . 방향이 제대로 맞아 비행선이 가시복어의 위치로 예상되는 지점에 도착하자 헬릭이 소리쳤다 .

“조종기 연결선을 끊어 , 더 올라가서 번개에 맞으면 조종선으로도 전류가 흐를지 몰라 !

하지만 , 제나는 조종기를 버리지 않았다 . 잠시 후 기구에 연결된 피뢰선이 풀리는 속도가 약해지자 제나가 조종용 전선을 두 손으로 잡고 당겼다 . 연결부를 약하게 해 놓았는지 전선이 비행선에서 떨어지면 상승 속도가 조금 빨라졌다 .

세 명은 피뢰용 전선에서 멀리 떨어져 비행선이 구름 속에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구름 속에서 번개가 쳤다 . 비행선에 맞았는지 피뢰용 전선이 번쩍이더니 중간에서 끊어져 버리고 말았다 .

“피뢰용으로 쓰기에는 너무 얇았나 보군 .

제나가 이렇게 중얼거리며 레베카 쪽에 다가가 물었다 .

“프로토콜을 분석해서 어떤 신호를 만들었지 ?

“지상으로 착륙을 유도하는 신호 , 방전 유도 신호 , 재 기동 신호 , 통신 여부 확인 신호 기본은 이렇게 네 가지 신호고 , 통신여부가 확인되면 방전 유도 후 지상 착륙하도록 프로그래밍 했지 . 통신여부가 확인 되지 않을 때는 재 기동 신호와 다른 신호들을 주기적으로 발신하고……”

레베카의 대답에 제나가 한숨을 내쉬었다 .

“그렇다면 가시복어가 지상에 착륙하거나 외부로 통신이 가능하길 바라는 수 밖에 없겠군 .

그녀의 말을 듣고 있던 헬릭이 하늘을 올려다 보며 말했다 .

“설정된 착륙 위치는 어디지 ?

“컨테이너 앞 쪽이야 .

레베카가 대답했다 . 그 때 헬릭이 낮은 울림 같은 것을 느꼈다 . 귀를 울리는 이명 같은 거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게 높은 고주파 음으로 바뀌더니 구름 안에서 엄청난 범위의 섬광이 일어났다 . 거대한 번개 그물이 검은 구름 안에서 번쩍이며 춤을 췄다 . 그리고 잠시 후 폭음이 대지를 울렸다 . 지금껏 들어보지 못한 엄청난 폭음에 헬릭과 제나가 귀를 막았다 . 그리곤 서로를 마주보며 미소를 지었다 .

“작동했군 !

헬릭이 소리치자 제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 레베카는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하늘을 주시했다 .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구름 속에서 거대한 형체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 주변의 번개를 흡수하듯 구름의 바다를 헤치고 거대한 하늘의 가시 복어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

“저게 가시 복어인가 ?

제나가 이렇게 말하고는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 구름 속에서 나와 모습을 내보인 다시 복어는 실로 거대했다 . 다른 가시 복어를 통제하는 대형 가시 복어가 낚인 모양이었다 .

“제대로 낚았군 .

헬릭이 이렇게 소리치자 제나가 컨테이너를 가리켰다 .

“그럼 우리가 낚은 고기를 확인하러 가볼까 ?

제나가 컨테이너 쪽으로 뛰어가자 헬릭과 레베카도 그 뒤를 따라 뛰었다 . 컨테이너에 도착한 제나가 의자를 가지고 나와 컨테이너 앞에 앉았고 , 헬릭은 통신 장치를 가지고 나와 주파수 검색을 시작했다 . 그러는 사이 가시 복어가 컨테이너 쪽으로 점차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

“주파수는 찾았어 ?

통신 장치를 조작하는 헬릭에게 제나가 물었다 . 헬릭이 고개를 흔들다가 삑 하는 주파수 탐색 음을 듣고는 통신 장치로 눈을 돌렸다 .

“찾은 것 같은데 ?

헬릭이 이렇게 말하고 음성 채널을 개방했다 . 그러자 통신 장치로부터 여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

“이 행성은 현재 개발 중인 상태로 외부인의 접근을 허가하지 않습니다 .

“…… .

위성에서 주변을 운행하는 우주선들에게 알리는 자동 반복 메시지였다 .

“다른 주파수는 ?

제나의 물음에 헬릭이 다시 다른 주파수를 찾기 위해 검색을 시작했다 . 그 즈음 가시 복어가 거의 지상에 도달했다 .   거대한 비행선이 지상에 착륙하기 위해 6 개의 착륙용 다리를 동체 아래쪽에서 내보냈다 . 비행선이 지상에 착륙하면서 육중한 소리가 퍼졌다 . 제나와 레베카가 가시 복어로 다가간 사이에도 헬릭은 계속해서 주파수 찾는데 열중했다 . [u4]  

지상에 착륙한 가시복어는 동체에 무수히 돋아있는 피뢰침들을 눕히고 조종석으로 보이는 곳의 입구를 열었다 . 조종석으로 들어가려던 제나가 헬릭을 향해 소리쳤다 .

자동으로 찾게 놔두고 일단 안을 확인해 보는 게 어때 ?”

제나의 말에 헬릭이 통신장치를 자동 검색으로 전환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조종석으로 향했다 . 계단을 올라 가시복어의 조종석 안에 들어서자 먼지와 전선이 타는 냄새가 섞여 불쾌한 냄새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

조종석의 크기는 헬릭이 짐작하던 것보다 훨씬 커서 , 다섯 명 정도의 인원이 장비를 운용할 수 있게 되어 있었고 전면과 측면은 투명 재질로 되어있어 외부 상황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

레베카 ! 모두 정상 작동하는지 한번 확인해 봐

제나의 명령에 레베카가 조종석에 앉아 장비 상태를 확인했고 , 헬릭은 그 옆을 두리번거리며 통신 장치를 찾았다 .

모두 정상 작동 하는 군 .”

레베카가 조종석에서 이렇게 소리치자 통신 장치를 찾던 헬릭이 물었다 .

통신장치는 ? 통신도 정상 작동 하나 ?”

헬릭의 물음에 레베카가 통신 장치를 확인 하더니 말했다 .

지금 위성과 연결 중이야 . 저 쪽이 통신 장비니까 앉아서 확인해봐 .”

레베카의 말에 헬릭이 기다렸다는 듯 레베카가 가리킨 의자에 앉았다 . 잠시 후 연결음과 함께 위성으로 연결되자 헬릭이 구조 요청 신호를 내보냈다 .

이제야 안심할 수 있겠군 .”

! 그럼 이제 자리 좀 바꿔 주겠어 . 그 동안 못 들었던 소식들 좀 들어봐야겠으니까 .”

제나가 이렇게 말하고는 헬릭을 일으켜 세웠다 . 그리곤 자리에 앉아 뉴스 채널을 위성에서 검색해 연결하고는 다운로드 되는 뉴스 제목들을 살펴나갔다 . 구조 신호를 발신한 뒤에도 안심할 수 있겠다던 헬릭의 표정은 더욱 더 초조한 표정으로 변해갔다 . 그것을 눈치 챈 레베카가 헬릭을 끌어다 가까운 의자에 앉히고 말했다 .

방금 구조신호를 보내놓고 그렇게 안절부절못하는 꼴이 정말 봐주기 힘들군 .”

레베카의 말에 헬릭이 멋쩍은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거렸지만 자리에 앉아 있는 것도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 그 때 , 뉴스를 살펴보던 제나가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쳤다 .

정신 사나워서 뉴스를 볼 수가 없군 .”

제나의 목소리에 헬릭이 겨우 다시 자리에 앉았다 .

미안하군 . 이상하게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어 .”

몇 년째 이러고 있는 우리도 가만히 있는데 …… 조금만 더 마음을 가라앉히고 기다려 봐 .”

“……”

헬릭도 알고 있었다 . 하지만 그게 마음처럼 쉽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 뉴스 목록을 살펴보던 제나가 헬릭의 주의를 돌리기 위해 큰 목소리로 제목을 읽어 내렸다 .

“OCP 의 식민행성 계획에 대하여 .”

크게 읽지 않아도 돼 ! 이제 진정된 것 같으니까 .”

아이돌 스타의 사생활 . 꽤 매력적인 기사지만 너무 오래돼서 재미는 없겠는데 ……”

헬릭이 말렸지만 제나는 기사 읽기를 계속했다 . 제나 덕분에 헬릭이 안정을 찾았는지 침착하게 가라앉은 얼굴로 의자에 앉아 중얼거렸다 .

그래 . 이제는 이 비행선을 타고 올라가 통신하는 방법도 있으니까 .”

헬릭의 혼잣말을 들었는지 제나가 뉴스를 읽어 내려가던 것을 그만두고 , 레베카를 보며 말했다 .

모든 게 정상이니까 낚은 기념으로 날아볼까 ?”

제나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한 헬릭이 되묻는 사이 , 제나는 이미 출입구의 해치를 닫고 있었다 .

레베카 이륙한다 .”

헬릭은 좌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매며 , 레베카에게 명령을 내리는 제나의 목소리가 다른 때와는 사뭇 다르다고 생각했다 . 익숙해 몸에 배인 어투라고 생각했다 .

제나의 명령에 레베카가 조종장치를 만지자 , 작은 엔진음과 함께 동체가 지상으로부터 떠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 헬릭의 시선이 자연스레 창 밖을 향했다 . 지상에서 서서히 멀어지던 비행선이 구름 속에 들어가자 , 주위가 어두워지며 조종실 내의 조명이 밝아졌다 . 천둥소리가 크게 들려야 할 텐데 , 방음이 잘 되어 있는지 지상에서 보다 더 작게 들렸다 . 헬릭이 비행선에 내리 꽂히는 번개에 시선을 옮긴 사이 , 레베카가 조종석의 패널을 바라보며 말했다 .

방전시켜 볼까 ? 수치가 꽤 올라간 것으로 나오는데 .”

좋아 . 방전시켜 !”

제나의 목소리와 함께 거대한 번개 그물이 비행선을 덮쳤다 . 헬릭은 마치 자신의 몸이 번개 한 가운데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

우와 ! 대단한데 . 엄청나 .”

제나가 방전이 끝나자 흥분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 거대한 번개 그물에서 채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던 헬릭이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정신을 차렸다 .

정말 대단하군 .”

헬릭이 제나의 말에 대답하자 , 제나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조종석 쪽으로 다가와 말했다 .

이제 이걸로 이동도 가능하니까 . 만약에 실패하더라도 다른 방법을 찾아볼 수 있을 거야 .”

그렇군 .”

헬릭이 생각하지도 못하고 있던 부분을 제나가 알려주자 , 그의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

레베카 이제 내려갈까 ?”

제나가 헬릭의 어깨를 두드리고 이렇게 말하자 레베카가 대답 없이 조종패널의 레버를 조작했다 . 그렇게 짧은 비행을 마치고 지상에 착륙하자 헬릭이 맨 처음 비행선에서 내려 컨테이너에서 비상식량박스를 꺼내 가지고 나왔다 . 금세 다 먹어 치우고 컨테이너의 의자에 걸터앉아 통신장치의 주파수 검색을 멀리서 지켜보던 그는 한참 뒤 , 제나와 레베카가 컨테이너로 들어오자 말했다 .

이제 기다리는 일만 남았지 ?”

, 좀 안정이 된 것 같네 .”

레베카의 말에 헬릭이 자신의 비상탈출 장치에서 저격용 라이플을 들고 나와 컨테이너의 테이블 앞에 앉았다 .

뭐 하려는 거지 ?”

제나의 헬릭의 행동을 보며 묻자 , 헬릭이 라이플을 분해하며 말했다 .

기다려 보려는 거야 .”

헬릭이 라이플의 소제를 시작하자 제나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2 층으로 올라갔다 . 레베카 만이 잠시 서서 헬릭의 움직임을 바라보며 서 있다가 , 그녀도 밖으로 나가버렸다 . 모든 것이 성공했지만 , 결과가 나오지 않은 불안한 시간을 헬릭은 자신의 소총을 청소하며 보내려 하고 있었다 . 지금 그가 할 수 있으면서 , 가장 잘 알고 있는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었다 . 그 사이에도 통신 장치는 여전히 주파수를 검색하고 있었다 [u5]   .

 

일주일이 지났다 . 헬릭은 자신의 무기 케이스에 있는 모든 무기들을 꺼내 두 번씩 소제를 마쳤고 , 제나와 레베카는 매일 아침 가시복어를 타고 나갔다가 저녁이 다 되어서야 돌아왔다 . 주변에 다른 구조물이 있는 지 찾기 위해서였지만 별 다른 성과는 없는 것 같았다 . 주파수 검색은 3 일 만에 그만 두었고 , 대신 가시복어에서 위성을 통해 구조신호를 보내기로 했다 .

헬릭이 테이블 위에 라이플을 올려놓고 컨테이너 밖으로 나와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 가시복어의 작동 때문인지 번개는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어두웠다 . 제나에게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밖에 세워 놓았던 통신 장치에 다가갔다 .

뭐 새로운 거라도 찾았나 ?”

헬릭의 물음에 화면에 나타난 제나가 고개를 가로 저었다 . 그런 반응은 이제껏 제나에게선 보기 힘든 보기 힘든 반응 이었다 .

기운 없어 보이는 군 .”

뭔가 나타날 줄 알았는데 ……”

일 주일간 헬릭이 침착해진 데 비해 제나는 처음과 달리 점점 기운이 빠져가고 있었다 .

왜 이렇게 기운이 빠져 버렸는지 모르겠군 ?”

온통 회색 구름뿐이라 우울해지는 모양이야 !”

그럴지도 모르겠군 .”

제나의 말에 헬릭이 고개를 끄덕였다 .

위성에서도 별 반응이 없었나 보군 .”

음 그래 .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지 모르겠지만 . 주기적으로 구조신호는 보내고 있어 ! 그렇지 레베카 !”

제나가 레베카를 보며 묻자 화면에 레베카의 얼굴이 떠올랐다 .

주변을 지나는 우주선이 관심을 가져 준다면 머지 않아 반응이 있을 거야 . 신호는 자동 발신 되고 있으니 신경 쓰지 않아도 돼 .”

레베카가 이렇게 말하고 통신 화면에서 사라지자 곧이어 제나가 손을 흔들며 연결을 끊었다 . 헬릭이 연결 회선을 끊고 컨테이너로 돌아가려고 할 때 통신 장치에서 작게 삑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 지금껏 들어본 적이 없는 새로운 소리에 헬릭이 통신 장치로 다가가 수신된 메시지를 확인하자 젊은 남자의 얼굴이 화면에 떠올랐다 .

구조 신호를 확인하여 구조임무를 시작 하였습니다 . 메시지 도착 삼일 후에는 도착하리라고 예상됩니다 .

앞 부분의 메시지는 유실되어 있었지만 남자의 옷차림으로 보아 주변을 지나던 순찰대 같았다 . 헬릭이 기쁜 소식을 제나에게 알리려는 순간 , 제나로부터 통신이 연결됐다 .

방금 구조 신호에 대한 회신을 받았어 !”

제나의 흥분한 표정에 헬릭이 웃으며 대답했다 .

이 쪽에서도 방금 확인했어 .”

이제 지겨운 구름을 계속 보지 않아도 되겠군 . 야옹이도 컨테이너에 데려다 놓아야겠어 .”

녀석을 데려가려고 ?”

제나가 애완용 호랑이 이야기를 하자 헬릭이 되물었다 .

그 놈은 애완용이라 사람이랑 같이 지내는 편이 행복할거야 .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 데려와야겠어 .”

제나가 이렇게 말하고 통신을 끊자 헬릭이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가 소총을 정리해서 세워 놓고 의자에 털썩 주저 앉았다 . 그리곤 큰 소리로 한참을 웃어댔다 . 지금까지의 불안이 일시에 사라지고 평온이 찾아와 가슴까지 시원해지는 것 같았다 . 이제 사나흘만 더 기다리면 이 버려진 행성에서 탈출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지금까지의 고민들이 한 순간에 하찮은 것이 되어 버렸다 . 잠시 후 , 제나와 레베카가 돌아오자 헬릭이 웃으며 그들을 반겼다 .

이제 우리 모두 안심할 수 있겠군 .”

주변에 아무 것도 없어서 불안했는데 정말 다행이야 . 완전히 포기하기 직전이었어 .”

제나가 이렇게 말하며 웃자 , 레베카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

인간들은 왜 그렇게 성급하게 판단해서 제멋대로 고민하는 거지 ?”

레베카의 말에 제나와 헬릭이 서로를 바라보며 또 한번 크게 웃었다 .

그럼 우리도 이제 떠날 준비를 해야겠지 ?”

제나가 이렇게 말하고 컨테이너 안을 둘러보았다 . 제나의 표정에 마치 정든 고향집을 떠나는 듯 아쉬움이 가득한 것을 보고 헬릭이 물었다 .

뭔가 많이 아쉬워하는 표정이군 .”

그렇게 보였나 ? 오래 지낸 곳이라 그런 표정이 나왔는지도 모르겠는데 . 하지만 여기서 떠나는 걸 나도 너만큼이나 바라고 있는 걸 .”

제나가 이렇게 말하고는 이층으로 올라갔다 .

제나가 올라가고 나자 , 헬릭도 자신의 무기 케이스를 꺼내 정리했다 .

 

구조대로부터의 두 번째 연락은 5 시간 후에 도착했다 . 인원과 조난 일시 등을 묻는 몇 개의 질문이 포함되어 있었다 . 헬릭은 답변을 확인하고는 곧바로 송신했다 . 하지만 구조대와의 통신에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지 알 수 없었다 .

 

다음 날 제나는 야옹이를 컨테이너에 데려다 놓았다 . 헬릭이 같이 가려고 했지만 , 구조대에서의 메시지가 점점 잦아지고 있었기 대문에 누군가 컨테이너에 남아 응답을 해 주어야 했다 .

하늘을 올려다 보며 구조대와 연락을 취한 지 이틀이 더 지났다 . 기다리는 시간은 아무런 희망 없던 때보다 더욱 더디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 헬릭이 구조대로부터의 연락을 기다리며 컨테이너 앞을 어슬렁거리다 , 마침 그 앞에서 앞발을 길게 뻗어 기지개를 펴는 거대한 고양이를 발견하고는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 사람과 가까이 있게 되어선지 녀석의 행동에서 예전 돼지를 물어뜯던 맹수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 헬릭은 방사되기 전의 모습으로 돌아간 녀석의 모습에 왠지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 돼지를 물어뜯을 때의 오싹한 이빨과 대조되는 한가롭게 비상식량 박스를 핥고 있는 녀석의 혓바닥이 괜스레 처량해 보였다 . [u6]  

제나와 레베카는 가시복어를 무인작동 가능한 상태로 만들어 놓기 위해 시험비행을 계속하고 있었다 . 다음에 이 곳에 불시착할 지 모를 재수없는 인간을 위한 작은 선물이라고 거창하게 말했지만 , 구조대의 도착까지 지루함을 달래기 위한 핑계라는 것을 헬릭은 잘 알고 있었다 . 헬릭이 야옹이가 어슬렁거리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때 , 머리 바로 위에서 가시복어가 섬광을 일으키며 구름층에서 빠져 나왔다 . 지상에서 그리 높지 않은 곳에서의 방전으로 인한 폭음 때문에 헬릭이 순간 두 손으로 귀를 막으며 고개를 숙였다 . 제나가 일부러 헬릭을 놀래주기 위해 장난을 친 것이 분명했다 . 가시복어가 착륙하는 사이 헬릭은 눈을 찌푸린 채 그 모습을 보고 있다가 상기된 얼굴로 저격 라이플을 어깨에 매고는 가시복어 쪽으로 다가갔다 .

깜짝 놀랬지 !”

제나가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지으며 가시복어에서 내렸다 . 헬릭은 대답 대신 그녀의 어깨를 툭 치며 지나쳐 가시복어에 올라탔다 .

바통터치야 . 괜한 장난으로 내 신경을 거슬린 벌이라고 생각해 !”

헬릭이 이렇게 말하고 가시복어의 탑승구에 다다르자 조종석에서 패널을 조작하고 있던 레베카가 고개를 돌렸다 .

오늘 비행은 이걸로 끝이야 .”

괜찮아 . 넌 내려도 돼 . 혼자 좀 떠다녀보고 싶은 거니까 .”

헬릭의 말에 레베카가 아무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

조종이 어렵진 않지만 무인조종을 테스트 중이니까 자리에 앉아서 비행 시스템의 동작만 확인하면 돼 . 착륙은 시퀀스 업데이트만 하면 될 거야 .”

레베카의 말에 헬릭이 고개를 끄덕였다 . 그녀가 나가자 헬릭은 탑승구를 닫고 자동비행 시퀀스를 작동했다 . 이내 가시복어가 이륙하자 헬릭은 다리를 쭉 펴고 조종석에 앉아 창 밖을 주시했다 . 꽤 편안한 기분이 되어 날카로웠던 신경을 누그러뜨리고 통신장치 쪽에 손을 가져갔다 . 지상에서 제나나 레베카가 대기하고 있을 테지만 , 혹시 놓치지 않을까 하는 불안에 잠시라도 통신장치를 꺼놓고 있을 수 없었다 . 화도 가라앉히고 좀 느긋하게 쉴 생각으로 가시복어에 올라탔지만 마음이 놓이지 않는 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 헬릭이 통신장치를 켜자 제나가 비행 중에 듣고 있었던 음악이 흘러나왔다 . 언제 유행하던 것인지 알 수 없는 음악을 끄고 , 구조대와의 통신 채널로 통신장치를 맞추고 조종석에 앉았다 . 위치만 바뀌었을 지상에서와 다를 것이 없었다 . 그나마 기체가 흔들린다는 이유로 소총 소제를 없다는 정도가 차이점이라면 차이점이라고 있었다 .

통신채널에서 흘러나오는 잡음을 줄이기 위해 볼륨 버튼에 손을 가져간 순간 가시복어가 번개를 방전시키면서 스피커에서 폭음이 울렸다 . 제나와 레베카가 자동 방전 시키도록 설정한 모양이었다 . 잠시 놀라 멈춰있던 헬릭이 잡음이 섞인 통신장치의 볼륨을 재설정 하려는데 , 방금 전의 방전이 영향을 주었는지 통신 회선의 잡음이 증가하더니 순간 사람목소리와 비명 비슷한 것으로 변하다 조용해졌다 .

방금 전에 자신이 들은 소리가 진짜 사람의 비명인가 하는 생각에 헬릭이 다시 볼륨을 높여보았으나 통신 장치는 조용하기만 했다 . 설마 구조대에 무슨 일이 생긴 건가 하는 불안이 엄습했다 . 불안을 눈치 채기라도 , 제나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원래 이렇게 통신장치에 잡음이 많이 났어 ? 방금 전에는 너무 커서 사람 비명소리인 줄 알았다고 .”

그 말에 정말 비명이었나 하는 생각에 순간 헬릭이 미간을 찌푸렸다 . 하지만 한편으론 자신이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구조대에서 저런 비명이 발생할 사건이란 것들은 어느 것을 떠올려 보아도 모두 발생확률이 낮은 것들뿐이었다 . 정말 운이 없어서 구조대가 어떠한 것으로부터 공격 당했다고 하더라도 , 그런 상황에 우리에게 미리 연락을 하지 않을 리 없었다 .

헬릭이 아무 말도 없자 제나가 다시 입을 열었다 .

왜 이렇게 조용한거야 ?”

아냐 ! 아무것도 .”

헬릭이 불안감을 감추며 이렇게 이야기 했을 때 마침 구조대로부터의 통신이 들어왔다 .

곧 도착 예정이다 .”

짧은 한마디에 헬릭이 안도하듯 한숨을 내쉬었다 . 바로 답하려는 순간 제나가 지상에서 먼저 답하는 바람에 헬릭은 대답할 기회를 놓쳐버리고 말았다 . 제나가 한 참을 떠들고 나서야 통신회선이 다시 조용해졌다 . 의자에 앉아 제나의 목소리를 들으며 헬릭은 아주 잠시 목소리가 달랐다는 생각을 했지만 이내 자신이 너무 민감한 탓으로 돌리며 잊어버렸다 .

헬릭이 조종석에 앉아 창 밖을 주시하는 사이 몇 번인가 제나가 심심함을 달래려는 듯 말을 걸었지만 헬릭은 대꾸하지 않았다 . 그렇게 조용히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즐기고 싶었다 .

마지막 수신 이후 구조대로부터의 연락이 오지 않았다 . 그러나 이러한 일에 대해 헬릭은 의식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 자신의 불안함이 괜한 걱정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했다 . 그 때문인지 제나와 레베카 대신 헬릭이 가시복어를 타는 시간이 늘어났다 . 마지막 연락이 있고 3 일이 지나서야 무신경하던 제나가 입을 열었다 .

뭐야 . 이 자식들 연락도 없고 , 우리에 대해서 잊어버린 거 아냐 ?”

레베카는 그녀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 제나가 답답한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앉았다를 반복하더니 결국 의자를 쓰러뜨리며 일어나 구름에 선체 반이 가리워져 있는 가시복어를 바라보았다 .

나보다 더 호들갑 떨 줄 알았더니 조용한데 .”

레베카의 반응이 없자 제나는 컨테이너 밖으로 나가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야옹이를 불러 세웠다 . 하지만 녀석도 제나를 흘깃 쳐다 보기만 할 뿐 , 가까이 다가오지 않고 느릿한 걸음으로 컨테이너 뒤쪽으로 사라져 버렸다 .

이제 저 고양이까지 날 무시하는 군 .”

제나가 바닥에 침을 뱉고는 통신장치를 들어 헬릭을 불렀다 .

뭐하고 있는 거야 . 내려와 ! 여기는 너무 따분해 ! 나랑 자리 바꾸자고 .”

내가 편하게 있는 꼴을 못 보는 군 . 기다려 , 안 그래도 내려가려던 참이었으니까 .”

헬릭이 대답하고 나서 , 얼마 지나지 않아 가시복어가 서서히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 그 모습을 확인하고 제나가 묘한 승리감에 젖은 표정을 짓는 순간 , 가시복어의 뒤 편 구름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나타났다 .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림자의 정체를 알아차린 제나의 표정에 활기가 차 올랐다 .

! 구조대다 .”

제나가 레베카를 향해 소리치자 레베카가 평소와 다름없는 움직임으로 걸어 나와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 이제 지상에 가까워진 가시복어 위로 거대한 우주선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

타원형에 검고 투박한 형태의 선체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제나가 뭔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

제나 ! 도망쳐 ! 구조대가 아 ……”

잡음이 잔뜩 섞인 헬릭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고 , 제나의 눈에 우주선 하부에 장착된 무기가 보인것도 그 때였다 . 우주선을 향해 번개가 집중되는가 싶더니 작은 섬광과 함께 바닥에 닿으려는 가시복어가 불길에 휩싸이는 게 보였다 . 그 모습에 제나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돌렸다 . 불타오르는 가시복어를 바라보던 레베카가 제나의 손목을 잡아 끌었다 .

도망쳐야 해 .”

그 말에 제나가 정신을 차리고 바이크 쪽으로 달려갔다 . 일단 숲으로 제나의 머릿속에는 그 생각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 제나가 레베카를 바이크에 태우고 달리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우주선으로부터 가시복어 크기의 상륙선이 떨어져 나와 제나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 [u7]  

제나의 바이크가 속도를 높이자 상륙선도 고도를 낮추고 바짝 붙었다 . 제나가 그걸 따돌리기 위해 바이크로 크게 선회하자 뒤 쪽에 앉아있던 레베카의 몸이 중심을 잃고 바닥에 떨어졌다 . 그리고 뒤이어 상륙선에서 발사된 무기에 의해 제나 앞에서 큰 폭발이 일어나면서 그 충격으로 제나의 몸이 크게 떠올랐다가 앞 쪽에 떨어졌다 . 먼저 일어난 레베카가 제나 쪽으로 달려가 상태를 살피는 사이 상륙선이 그들 앞에 착륙했다 . 바닥에 떨어진 충격으로 기절한 제나를 레베카가 안아 올리자 상륙선의 해치가 열리며 안에서 무기를 든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 남자 둘에 여자 여섯이 총을 겨누며 둘을 에워쌌다 .

왜 도망치는 거야 ? 조난자를 구해주려고 일부러 여기까지 찾아왔는데 ……””

마지막에 상륙선에서 내린 남자가 기분 나쁜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하자 레베카가 대답했다 .

구조대는 식별코드가 확인되지 않는 우주선을 운용하지 않아 .”

레베카의 대답에 남자의 표정이 바뀌었다 . 그는 수염이 지저분하게 나 있는 턱에 손을 가져가더니 레베카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

인간이 아닌가 ?”

남자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자 옆의 여자가 감정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

인간형 안드로이드 . 제품번호 식별되지 않음 .”

~ 역시 . 그럼 저기 기절해 있는 쪽만 인간이로군 .”

남자가 이렇게 말하고는 제나 쪽을 바라보았다 .

신원 확인해 봐 . 혹시라도 대단한 부잣집에서 잊어버린 딸일지도 모르니까 . 행색을 보아서는 그럴 가능성은 적어 보이긴 하지만 .”

남자의 말에 방금 전 레베카를 식별한 여성형 안드로이드가 제나 쪽으로 다가갔다 . 그리고 그녀의 얼굴과 신체 특징들을 파악하더니 이내 대답했다 .

신원 불명 . 현재의 데이터 베이스에선 일치하는 데이터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

안드로이드의 말에 남자가 다시 턱에 손을 가져갔다 .

뭐 그냥 노예시간에 넘기거나 암시장 쪽에 해체해서 팔아버려도 되는 건가 ? 그 정도 돈 때문이라면 괜히 이런 구석진 곳까지 올 필요 없었잖아 . 안 그래 ? 제드 !”

그 말에 뒤 쪽에 서있던 다른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 큰 키에 묘하게 굳어 있는 표정의 남자는 주위를 둘러볼 뿐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는 큰 관심이 없어 보였다 .

그 때 , 제나가 작은 신음소리와 함께 눈을 떴다 . 머리에 손을 가져가며 레베카의 품을 벗어나 바닥에 내려서자 남자가 말했다 .

괜히 우리 선장이 구조대를 공격하는 바람에 너도 그렇고 , 우리도 피곤해졌어 . 그러니 더 이상 피곤한 일 벌이지 말고 순순히 따라와줬으면 좋겠어 .”

남자의 말에 자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 그 모습에 남자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 옆에 서 있던 안드로이드에게 손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 남자의 지시에 제나에게 다가가던 여성 안드로이드가 순간 멈칫했다 . 제나의 손이 뒤로 움직이는 것을 본 순간이었다 . 그 짧은 순간에 제나가 허리에 있던 총을 뽑아 남자를 향해 쏘았다 . 가슴에 총상을 입은 남자가 컥 하고 목 막힌 소리와 함께 바닥에 쓰러지자 이번에는 제드를 향해 총을 겨누었다 .

너도 죽고 싶지 않으면 모두에게 총을 버리라고 명령해 .”

제드라 불린 남자는 천천히 양 손을 들며 말했다 .

저 안드로이드 들은 내 말은 듣지 않아 .”

그 말에 제나가 안드로이드 들을 향해 소리쳤다 .

모두 총을 버려 . 그렇지 않으면 이 자도 죽일거야 !”

그러나 제나의 말에 안드로이드 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 그 때 바닥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 쓰러진 남자의 허리춤에 있던 통신장치로부터 나오는 소리 같았다 .

-        오래간만이군 . 미스 피셔 . 내 언젠간 이렇게 다시 만날 줄 알았지 .”

그 목소리를 듣고 제나의 표정이 굳었다 .

-        아무 말도 없지 ? 이런 곳에 너무 오래 있어서 내 목소리도 잊어버렸나 ? 나야 제나 . 롭이라고 .

잊을 리가 있겠어 ? 잘 있었어 ? !”

어찌된 일인지 제나가 오래 전에 알고 지내던 사람을 부르듯 대답했다 .

-        잘 지냈을 리 없지 . 네가 훔쳐간 것 덕분에 우리들은 꽤 곤란했다고 .

훔쳐갔다고 ? 난 내 것을 가지고 나온 기억밖에 없는데 .”

제나가 흥분한 목소리로 이렇게 이야기 하자 롭이라 불린 사내가 웃기 시작했다 .

-        제나 그렇게 흥분하지마 . 그래도 이렇게 다시 만나게 돼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

롭의 말에 제나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을 다시 떠올리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

설마 지금까지 날 찾아 다닌 것은 아니겠지 ?”

제나의 물음에 롭이란 남자가 큰 소리로 웃었다 .

-        긴 이야기는 만나서 하자고 ……

롭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안드로이드들이 제나와 레베카를 향해 총을 겨누며 다가왔다 .

그 순간 . 멀찍이 서 있던 제드란 남자가 쓰러졌다 . 머리 뒤가 완전히 사라진 채였다 . 그리고 잠시 후 안드로이드 하나가 이마에 구멍이 뚫린 채 쓰러지자 다른 안드로이드 들이 한 곳을 향해 발포했다 . 가시복어가 추락한 방향이었다 . 제나가 수상함을 느끼고 바닥에 엎드리자 동시에 안드로이드들이 짧은 간격을 두고 차례차례 바닥에 쓰러졌다 .

그 남자로군 !”

레베카가 이렇게 말하자 제나가 눈을 크게 떴다 .

살아있는 거야 ?”

마지막 안드로이드가 쓰러지자 제나가 통신장치를 집어들고 일어서서 상륙선에 올라타며 레베카를 향해 소리쳤다 .

레베카 . 헬릭을 태워서 숲으로 가자 . 아직 저 놈들은 어떤 상황인지 모를거야 .”

제나의 말에 레베카가 아무 말 없이 상륙선에 올라탔다 .

레베카 , 헬릭을 태워서 숲으로 가자 . 아직 저 놈들이 눈치채지 못했을거야 !”

제나의 말에 레베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

 

둘을 태운 상륙선이 이륙하여 가시복어가 추락한 곳을 향해 날아올랐다 . 불길이 잦아들고 있는 가시복어의 잔해를 발견한 제나가 착륙하여 헬릭을 찾으려 두리번거렸다 . 잠시 후 , 추락지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핏자국을 발견하고 자국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 출혈이 심해 보이는 핏자국이 멀리 떨어진 바위 근처까지 이어져 있었다 . 제나가 달려가 바위 뒷편을 살펴보았다 . 거친 숨소리와 함께 입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헬릭이 거기 바위를 기대고 앉아있었다 .

양 다리는 모두 부러져 있었고 복부에도 큰 상처를 입었는지 막고 있는 손가락 사이로 피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 왼팔로 상처를 막고 있느라 한 손으로 새 탄창을 갈아 끼우려 하고 있었다 . 그러나 , 눈이 보이지 않는지 , 힘이 없는 건지 마음대로 하질 못하고 손을 떨구고 있었다 .

, 왔군 …… 마지막에는 눈이 흐려져서 너희들을 쏜 건 아닌가 했어 …”

고통을 참으면서 헬릭이 이렇게 겨우 말하고는 피를 토했다 .

말하지마 .”

제나가 이렇게 말하고는 탄창을 라이플에 끼워주었다 .

걱정하지마 . 좀 자고 나면 괜찮을 테니까 . 내 윗 주머니 안에 진통제가 있으니 그거나 놓아줘 .”

헬릭의 말에 제나가 진통제를 꺼내 목 옆에 주사하자 헬릭이 바로 고개를 떨구고 기절했다 . 뒤이어 나타난 레베카가 헬릭의 상태를 살펴보고 말했다 .

죽었나 ?”

아직 . 하지만 곧 ……”

이제 어떻게 할 거지 ?”

레베카의 물음에 제나가 헬릭의 라이플을 등에 매고 헬릭의 팔을 잡아 일으키며 말했다 .

일단 숲으로 피할 거야 . 좀 도와줘 상륙선에 태워야겠어 .”

곧 죽을 텐데 . 여기 놔두고 가는 게 낫지 않아 ?”

데리고 갈 거야 .”

제나가 단호한 어조로 말하자 레베카가 헬릭을 한번 쳐다보더니 이내 그를 같이 부축하여 상륙선으로 움직였다 . [u8]  

제나가 상륙선 바닥에 헬릭을 눕히고 조종석에 앉은 순간 , 통신 장치에서 롭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그새 일을 저지른 것 같군 . , 일을 더 복잡하게 만들지 말자고 .”

롭의 말에 제나가 흥분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

웃기는 소리 하지마 !”

레베카가 상륙선을 이륙시켜 숲으로 향하는 동안 , 롭이 이야기를 계속했다 .

대체 어디로 도망칠 거야 ? 상륙선 하나 해치우는 건 일도 아니라고 .”

네가 그럴 수 있을까 ?”

제나가 빈정거리는 말투로 답하자 롭으로부터의 통신이 이내 끊겼다 . 힘 빠진 표정으로 조종석에 앉은 제나가 조종석 밖을 바라보았다 . 마침 컨테이너를 지나던 참이었다 .

야옹이 녀석을 깜박했어 .”

낮게 깔린 제나의 목소리에 레베카도 지상을 바라보다 뭔가를 발견하고는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

저기 어디론가 뛰어가고 있는데 .”

제나가 그 쪽을 바라보는 순간 , 기체가 흔들렸다 . 레베카가 후미에서 모선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상륙선의 기수를 틀었지 때문이었다 . 모선에서 상륙선을 발견하고 공격을 시작했다 .

공격 범위에서 빠져나가 !”

제나의 다급한 목소리에 상륙선의 속도도 올라갔다 . 거칠게 요동치는 상륙선 바닥에서 헬릭이 이리저리 흔들렸으나 깨어나지는 않았다 .

구름 속으로 !”

제나가 소리치자 , 레베카가 바로 기수를 들었다 . 번개 불빛이 번쩍이는 구름 속에 숨어들자 모선의 공격이 조금 느슨해졌지만 상륙선의 계기들이 영향을 받아 정보를 제대로 표시하지 못했다 . 조종하고 있던 레베카가 급히 기수를 내려 구름을 빠져나가려고 했으나 ,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 그 때 , 번개가 상륙선 동체에 맞았는지 큰 폭음이 일더니 기체가 급 하강하며 구름을 벗어나 지상이 나타났다 . 숲 가장자리에 거의 도착한 상태였으나 하강하는 상륙선의 상태가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 기수는 올렸으나 엔진출력이 줄어들고 고도가 낮아지면서 기체가 심하게 흔들렸다 .

비상착륙 할 테니 , 뭐든 꼭 붙잡아 !”

레베카의 말에 제나가 헬릭 위에 엎드렸다 . 빠른 속도로 하강하던 상륙선은 숲 한가운데 호수 위에 물 수제비 하듯 수면에서 두어 번 튀어 오르더니 속력을 잃고 미끄러지다 호숫가에 다다라 큰 소리를 내며 멈추어 섰다 . 잠시 후 , 문이 열리고 제나가 헬릭을 끌고 밖으로 나왔고 , 레베카가 짐과 헬릭의 라이플 따위를 챙겨들고 내렸다 . 죽은 듯 축 늘어진 헬릭을 끌어 호숫가에 눕힌 제나가 손가락을 헬릭의 코 밑에 대보더니 다행이라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

살아있나 ?”

레베카의 물음에 제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

레베카 좀 도와줘 . 상륙선에서 되도록 멀리 떨어져야 해 .”

제나가 이렇게 말하며 헬릭의 옷깃을 당기는 순간 , 거친 손이 제나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

나무 위로 올라가 .”

헬릭이 눈을 뜨고는 제나를 올려다 보며 이야기했다 .

정신 차렸어 ? 나무 위로 올라가라니 ? 당신 올라갈 수 있겠어 ?”

제나의 물음에 헬릭이 숨을 거칠게 내쉬며 말했다 .

난 여기 두고 너하고 레베카만 올라가 . 가기 전에 진통제나 더 놔주고 .”

안돼 . 놔두고 갈 수 없어 .”

고집 부리지 말고 어서 가 . 아마 죽었다고 생각하고 건드리지 않을 테니까 . 어서 !”

헬릭의 말에 제나가 머뭇거리자 헬릭이 레베카를 보며 말했다 .

내 주머니에 진통제가 있을 테니 그것 좀 놔줘 . 힘이 하나도 없군 . 피를 너무 흘렸나 봐 . 그리고 제나 데리고 나무 위로 올라가서 숨어 .”

헬릭의 말에 레베카가 다가서자 제나가 먼저 헬릭의 주머니에서 진통제를 찾아 목에 주사하고는 빈 주사기를 호수에 던져 버리고는 일어났다 . 헬릭이 다시 눈을 감자 레베카가 제나의 손을 이끌고 숲으로 향했다 . 가지가 굵은 나무를 찾아 둘이 올라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모선이 호수 위에 내려 앉았다 .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선에서 상륙선 하나가 떨어져 나와 호숫가에 착륙했다 . 거기서 무기를 든 사내 , 여섯이 내려서 제나와 레베카가 타고 온 상륙선을 살피다 헬릭을 발견하고는 접근했다 . 그러나 헬릭이 제나에게 말한 것처럼 망가진 헬릭의 몸을 보고는 죽었다고 생각했는지 발로 툭 건드려서 반응이 없자 이내 놔두고는 숲을 향해 움직였다 . 숲 안으로 들어서는가 싶더니 , 그 중 한 명이 앞으로 나서며 소리쳤다 .

제나 ! 어서 나오라고 , 어디 도망칠 데도 없잖아 .”

남자는 얼굴에 잔인함 섞인 미소를 띠고 있었다 . 짙은 갈색 머리에 이마에는 가로로 길게 흉터가 나 있어 쳐진 눈썹과 대조되는 묘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 남자는 숲을 둘러 보는 것 같더니 가시 소리쳤다 .

네가 훔쳐간 것만 돌려주면 그냥 떠날게 . 어때 ? 덤으로 구조 신호도 보내주지 . 이 정도면 괜찮은 거래 아냐 ?”

하지만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자 남자가 잠시 생각하더니 소리쳤다 .

여기 불이라도 질러야 나올 건가 ?”

여전히 대답이 들려오지 않자 남자가 손짓으로 일행에게 주변을 살펴보게 하고는 자신도 소총을 들고 숲으로 들어갔다 . 남자가 서 있던 자리에서 멀지 않은 나무 위에 숨어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제나와 레베카는 자신들을 찾으려는 자들의 모습이 숲 속으로 사라지자 잠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하지만 그 남자들이 떠나기 전까지는 나무 위에서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마냥 안심하고 있을 수 만은 없었다 .

제나가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나 궁리하는 사이 , 레베카가 가지에 바짝 엎드렸다 . 수색 중이던 남자 중 하나가 둘이 올라와 있는 나무에 다가오고 있었다 . 둘이 숨 죽이고 있는 사이 , 그 자는 주변을 살피더니 상륙선 쪽으로 향했다 .

상륙선 주변에는 이미 수색을 마치고 돌아온 자들이 모여 있었다 . 그 중 하나가 아까 숲을 향해 소리쳤던 갈색머리 사내를 바라보며 물었다 .

! 이제 어떻게 하지 ? 우리도 어서 여기서 떠나야 할 텐데 .”

남자의 말에 롭이라 불린 사내가 날카로운 눈으로 쏘아보며 말했다 .

나도 알아 ! 이게 다 멍청한 네 녀석이 그 때 , 이드를 놓쳤기 때문이잖아 .”

롭의 고함에 남자가 입 맛을 다시며 고개를 돌렸다 .

아직 좀 더 시간은 있어 . 상륙선으로 좀 더 찾아보고 , 그 때도 찾지 못하면 이 숲에 불이라도 질러야지 .”

롭은 이렇게 말하고는 상륙선에 올라탔다 . 잠시 후 , 상륙선이 이륙하고 나서야 제나와 레베카는 비로소 안도할 수 있었다 [u9]   .

 

상륙선이 멀리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 제나가 모선 쪽의 움직임을 살피며 나무에서 내려왔다 . 모선에서 별다른 움직임이 보이지 않자 헬릭이 누워있는 쪽으로 조심스레 움직였다 . 하지만 헬릭이 누워 있는 곳이 사방이 노출되어 있는 곳이어서 가까이 접근할 수는 없었다 . 제나는 할 수 없이 나무 뒤에 몸을 숨기고 작은 목소리로 헬릭을 불러보았다 .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것 같더니 , 서너 번 정도 불렀을 때 헬릭이 고개를 돌려 제나가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 그리고는 천천히 어깨를 움직여 배면 포복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 다행이 헬릭이 제나가 숨어 있는 곳까지 다가갈 때까지 모선이나 상륙선의 움직임은 없었다 . 제나의 발치까지 가까워진 헬릭을 레베카가 끌어당기자 헬릭이 고통을 참으려는 듯 숨을 참더니 , 내려 놓을 때 즈음 나지막한 신음과 함께 숨을 내쉬었다 .

진통제가 말을 듣기 시작하나 봐 . 기절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

이제 어떻게 하지 . 숲에 숨으려고 했는데 그것도 안될 것 같아 .”

제나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말하자 헬릭이 상체를 일으켜 나무에 기대고서는 말했다 .

당신과 아는 사이인 것 같던데 , 대체 뭐 하는 놈들이지 ?”

헬릭의 물음에 제나의 얼굴에 잠시 당혹스런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 그녀는 잠시 생각하는 것 같더니 ,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할게 . 일단 여기서 벗어나야 해 !”

라고 말하고는 입을 닫았다 . 헬릭은 그녀의 표정을 살피다 , 레베카가 들고 있는 구급상자를 발견하고는 말했다 .

그 안에 신체 손상 정도를 알 수 있는 기계가 들어있을 거야 . PDA 와 연결해 줘 .”

레베카가 PDA 의 통신단자를 구급상자에 연결하자 구급상자의 뚜껑이 열리며 홀로그램 주사장치가 나타나 헬릭의 신체 손상 정도를 3 차원 입체영상으로 표시했다 . 양 다리의 복합 골절과 장기 손상 , 견갑골 골절 등으로 60% 이상의 손상을 표시하고 있었다 .

치료할까 ?”

레베카가 묻자 , 헬릭이 억지 웃음을 지으며 그래 라고 대답했다 . 레베카가 화면의 치료 버튼을 건드리자 , 바닥에 놓여있던 구급상자 밑에서 바퀴가 나와 헬릭 옆으로 움직이더니 상단에서 길게 은색의 자유굴절 형 케이블이 솟아나와 뭔가를 헬릭의 목에 주사했다 . 화면에 마취 중이라는 글과 함께 이번에는 가느다란 케이블 십여 개가 솟아나와 헬릭의 복부와 다리에 파고 들었다 . 케이블 끝에 달린 집게와 칼날들이 신체 속으로 파고들어 뼈를 맞추고 손상된 장기와 혈관들을 치료했다 . 이전의 전장에서 주사했던 치료용 나노머신들이 아직까지 동작하고 있다면 구급상자의 직접 치료를 보조해서 효과를 높여줄 테지만 , 너무 오래돼서 동작하고 있을지 알 수 없었다 . 헬릭은 큰 통증은 느끼지 못하는 지 가끔 얼굴을 찌푸릴 뿐이었다 .

살아 있는 게 신기할 정도야 .”

제나가 치료 진행률이 95% 에 다다랐을 때 이렇게 이야기했다 . 헬릭은 케이블이 복부 밖으로 밀어낸 파편을 바라보며 말했다 .

더 심한 경우도 수 없이 겪었지 .”

마침내 치료가 끝나자 헬릭이 배를 움켜 잡으며 일어섰다 .

일어서지마 . 이제 막 치료가 끝난거야 . 제대로 뼈가 붙으려면 몇 주는 걸린다고 !”

제나가 이렇게 말했지만 헬릭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

뛰거나 무리하지만 않으면 괜찮아 .”

그리고는 레베카가 메고 있던 라이플을 들고 잔탄량을 살펴보며 말했다 .

좋은 생각 있어 ?”

헬릭의 물음에 제나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 그러자 헬릭이 라이플을 들어 모선을 살펴보더니 말했다 .

저걸 탈취할 수 있다면 최고일 텐데 . 가능할까 ?”

헬릭이 이렇게 말하고는 제나를 바라보자 제나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

우리 셋이서 ? 불가능해 !”

탈취가 불가능하다면 숨어드는 건 어때 ?”

놈들 아가리 속으로 기어들어가자는 소리야 ?”

헬릭이 고개를 끄덕이자 제나가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

숨어서 놈들이 사라지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안전할거야 .”

하지만 !”

제나가 뭔가 이야기 하려는 것 같더니 이내 입을 닫아버렸다 . 제나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자 헬릭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 라이플의 스코프로 주변을 살피며 자세를 낮춰 불시작한 상륙선에 다가간 그는 상륙선을 은폐물 삼고 , 제나와 레베카를 향해 손짓했다 . 다행히 어스름이 깔리기 시작한 숲과 호수는 몸을 숨기기에 좋았다 . 제나와 레베카가 추락한 상륙선에 다가왔을 때 , 놈들의 상륙선이 모선 주위를 선회하더니 이내 다시 사라졌다 . 상륙선이 시야에서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헬릭이 수면에 몸을 담그고 모선 쪽으로 움직였고 , 제나와 레베카도 그 뒤를 따랐다 . 모선에 다다라 헬릭이 해치를 찾아 동체 주변을 돌았다 . 그러자 제나가 손가락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

정비용 해치가 저 쪽에 있을 거야 .”

헬릭이 제나가 가리킨 곳에서 해치 손잡이를 찾아 돌리자 공기 빠져나가는 소리와 함께 한 사람이 겨우 통과할 수 있을 것 같은 타원형의 입구가 나타났다 . 헬릭은 제나와 레베카를 먼저 들여보내고 마지막으로 들어가며 해치를 닫았다 .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헬릭이 라이플의 스코프를 떼어내서는 말했다 .

내가 앞장 설 테니 따라와 .”

헬릭이 스코프를 야간 모드로 맞추고 앞으로 걸어나갔다 . 벽 면에 가득한 파이프를 길잡이 삼아 10 여 분 낮은 자세로 걸어가다가 벽에서 입구로 보이는 것을 발견하고 헬릭이 멈추어 섰다 .

왜 멈추었지 ?”

선체 안 쪽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입구 인 것 같아 . 내가 먼저 나가 살펴볼 테니 여기서 기다려 .”

그리고는 개폐레버를 찾아 천천히 돌리고는 조심스럽게 해치를 살짝 밀어 올렸다 . 열린 틈 사이로 희미한 빛이 스며들었다 . 겨우 형체만 확인할 수 있는 정도의 빛이 있을 뿐이었지만 그게 오히려 몸을 숨기는 데 도움을 줄 것 같았다 . 헬릭은 틈새로 스코프를 내밀어 주변의 인적을 먼저 확인하고는 , 해치를 완전히 열어 밖으로 나왔다 . 그리곤 스코프를 라이플에 다시 장착하고는 주변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 기계음 , 금속의 마찰음 , 회로에서 흘러나오는 듯한 저주파와 고주파 음들이 섞여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 이 행성에 있는 동안 어느새 잊고 있던 소음들이 어느새 낯설게 느껴졌다 . 헬릭은 자신이 있는 곳을 화물실이라고 생각했다 . 벽 주변으로 컨테이너와 작은 상자들이 고정되어 있는 게 보였다 . 헬릭이 주위를 둘러보는 사이 , 벽 건너편에서 뭔가 움직이는 소리가 울렸다 . 소리에 귀 기울이며 상자 뒤에 몸을 숨기는 사이 , 이번에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바닥에서 작은 진동이 느껴졌다 . 진동을 느낌과 동시에 헬릭이 컨테이너 뒤에 몸을 숨겼다 . 잠시 후 , 강렬한 빛 줄기가 반대편에서 쏟아져 들어왔다 . 격납고와 연결 되어 있던 통로의 문이 열리며 그 쪽에서 흘러 들어오는 빛이었다 . 문이 완전히 열리고 , 남자 하나가 작은 트레일러로 추락한 상륙선을 견인해 안으로 들어왔다 . 헬릭은 남자의 움직임을 주시하다 상륙선을 고정시키는 틈을 타 열린 문으로 빠져나와 격납고 쪽으로 향했다 . 세 대의 상륙선이 나란히 서 있는 격납고는 화물실과는 달리 조명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 [u10]  

격납고 벽에 붙어 움직이던 헬릭이 컥 하는 소리와 함께 무릎을 꿇었다 . 진통효과가 떨어지면서 격한 통증이 엄습했다 . 치료 후 무리하게 몸을 움직인 것이 진통효과가 금세 사라진 원인이었다 . 숨도 내쉬기 어려운 통증에 , 벽에 기대 주저앉은 채 , 헬릭이 진통제를 꺼내 목에 주사했다 . 통증은 금방 가라앉았으나 진통제의 부작용 때문인지 시야가 흔들이고 어지러워 일어설 수가 없었다 . 잠시라도 몸을 숨길만한 곳을 찾던 헬릭은 바닥에서 배선로 입구를 발견하고는 엎드려 기어들어갔다 . 배선로 위를 덮고 있는 그물 구조의 금속 덮개 덕분에 밖의 상황을 파악하기 용이했고 , 어두워 몸을 숨기기에도 좋았다 . 헬릭이 물기와 기름기 가득한 바닥에 누워 부작용이 사라지길 기다리며 숨을 고르는 사이 , 큰 소음과 함께 바닥이 흔들렸다 . 이윽고 격납고 한 쪽이 열리며 헬릭일행을 수색하던 상륙선이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

상륙선이 착륙하고 나서 숲에서 롭에게 추궁당하던 남자가 목끈을 채운 야옹이를 앞장세우며 처음으로 내렸고 , 이윽고 롭이 따라내렸다 . 그는 잔뜩 짜증이 난 얼굴로 먼저 내린 남자를 향해 소리쳤다 .

페딤 ! 얼른 그 짐승 묶어놓고 , 생체 인식 센서나 고쳐 !”

롭의 외침에 페딤은 잔뜩 주눅든 얼굴로 야옹이를 한 쪽에 묶어 두고 상륙선에 다가갔다 . 롭이 그 뒤에 대고 다시 소리쳤다 .

제나와 이드를 찾으랬더니 , 저런 쓸데없는 짐승이나 주워오고 …… 비싸게 팔릴거라고 장담했으니 나중에 두고 보자고 , 저 짐승이 싸게 팔리는 날에는 네 머리통도 같이 잘라서 팔아버릴 테니까 .”

이윽고 , 롭과 다른 자들이 격납고에서 나가자 상륙선의 동체 장갑을 벗겨내던 페딤이 야옹이에게 다가가 목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

롭 저 자식은 항상 지시하기만 하지 . 제 스스로 하는 건 아무것도 없는 놈이야 .”

그리고는 야옹이가 기분 좋은 듯 드러누워 배를 내보이자 배를 긁어주며 미소지었다 .

헬릭을 그 모습을 지켜보며 배선로에서 기어 나와 페딤의 뒤통수에 총을 겨누고 낮고 위협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

움직이지마 . 섣불리 움직이면 머리를 날려버릴 거야 .”

페딤이 놀라 고개를 돌리려 하자 뒤통수를 총구로 밀며 말했다 .

바닥에 엎드려서 손을 허리 뒤로 해 !”

페딤이 고개를 끄덕이며 엎드리자 헬릭이 야옹이의 목줄을 풀어 양손과 다리를 묶었다 . 헬릭은 야옹이가 바닥에 엎드린 페딤의 얼굴을 핥는 것을 손으로 밀어내고는 물었다 .

대체 네 놈들은 뭐하는 놈들이지 ?”

자신의 물음에 페딤이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 헬릭이 단검을 꺼내 목에 들이대며 말했다 .

이번에도 대답하지 않으면 죽을거야 .”

그리고는 단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 목에 실처럼 가늘게 피가 배어 나오자 그제서야 페딤이 겁먹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

그냥 떠돌이들이야 . 우리들은 .”

떠돌이 ? 해적이 아니고 ?”

가끔 지나가는 화물선을 털긴 하지만 , 해적은 아니야 .”

페딤의 말에 헬릭이 헛웃음을 지었다 . 바닥에 엎드려있는 이 남자가 멍청한 건지 , 정신이 나간 건지 알 수가 없었다 .

내가 알고 있는 해적이란 단어가 언제부터 다른 의미로 사용되었는지 모르겠군 . 구조선까지 습격한 주제에 해적은 아니고 떠돌이일 뿐이라고 ?”

헬릭이 추궁하자 페딤이 고개를 작게 흔들며 말했다 .

너희들이 보낸 구조신호를 듣고 롭이 제나라는 걸 알아챘어 . 그래서 구조대가 너희를 구조하기 전에 접근해서 해치워 버린 거고 .”

제나와는 무슨 관계지 ? 왜 제나를 잡으려 하는 건지 말해 !”

헬릭의 물음에 페딤이 잠시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

제나는 우리 항해사였어 . 이드가 롭이 화물을 훔치는 걸 보게 되는 바람에 일이 꼬인거야 .”

이드 ?”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는 이름이었다 . ‘ 어디서였지 ? 그래 레베카의 원래 이름이 이드라고 했었지 .’ 헬릭은 이드라는 이름을 기억해내고는 다그쳐 물었다 .

일이 꼬이다니 ? 자세히 이야기해 봐 .”

그 때 , 화물실 입구가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 헬릭은 얼른 바닥의 페딤을 끌어당겨 상륙선 뒤 쪽에 몸을 숨기고 , 화물실에서 누가 나오는지를 지켜보았다 . 아까 , 화물실에 들어갔던 남자가 다시 나오는 것을 발견하고 페딤의 입을 손으로 막는 순간 , 야옹이가 남자 쪽으로 달려갔다 . 남자를 따라 손이 묶인 제나와 레베카가 걸어 나오는 것을 발견한 것은 바로 다음이었다 .

어쩌다 들킨거지 ?’

헬릭은 페딤의 입을 막은 채 경동맥을 무릎으로 눌러 기절시키고는 라이플을 들어 남자를 겨누었다 .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야옹이를 쫓아내는 남자의 이마가 스코프의 십자선 안에 들어왔을 때 , 남자가 고개를 돌려 자신의 뒤 쪽을 바라보았다 . 언제 연락했는지 롭이 다른 두 명의 남자와 함께 나타났다 . 헬릭이 어찌할 지 궁리하는 사이 , 롭의 목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

해치가 열려있는 것을 확인시키지 않았더라면 월척을 놓칠 뻔 했군 .”

롭은 이렇게 말하고는 제나의 턱을 들어 눈을 마주보며 말했다 .

오래 걸리긴 했지만 , 원하던 것을 찾았으니 나도 이제 돌아갈 수 있겠군 .”

이드는 건드리지마 !”

제나가 날카롭게 쏘아보며 소리치자 롭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

제나 , 지금 안드로이드를 걱정할 때가 아닐텐데 , 널 잡으면 어떻게 할지 굉장히 많은 고민들을 했거든 . 그 동안 여자구경 못한 녀석들에게 보너스로 널 던져주려던 게 최근까지의 생각이었는데 말야 . 네가 워낙에 위험한 여자라서 말이지 그런 생각은 접어버렸어 . 하지만 그 동안 날 고생시킨 대가는 톡톡히 치르게 할 테니까 기대하라고 . 죽여달라는 소리가 나오게 해줄 테니까 .”

롭이 이렇게 말하며 제나의 뺨을 조롱하듯 두드렸다 . 그리고는 이내 레베카 쪽으로 몸을 돌렸다 .

내가 필요한 것은 너한테 있을 테지 . , 그럼 기다릴 것 없이 분해해볼까 ?”

헬릭은 롭의 손이 레베카에게 향하는 것을 바라보며 롭의 머리를 겨냥하고 방아쇠에 손을 올렸다 .

도와줘 !”

바닥에 기절해 있던 페딤이 언제 정신을 차렸는지 몸을 굴려 자신의 몸을 드러내며 소리쳤다 .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헬릭의 초탄이 빗나가 롭 뒤쪽에 있던 화물실 남자의 가슴에 맞았고 , 롭과 다른 두 명의 남자는 제나와 레베카를 끌고 주위에 놓여있던 금속 컨테이너 뒤로 급히 몸을 숨겼다 [u11]   .

누구냐 ?”

롭이 소리쳤다 . 헬릭은 멀리 도망치지 못하고 , 자신이 기어 나왔던 배선로를 향해 기어가고 있는 페딤의 머리 앞 쪽에 총을 쏘고는 손가락을 까닥여 돌아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 페딤이 잔뜩 겁먹은 얼굴로 몸을 돌려 헬릭 쪽으로 움직이자 롭이 다시 소리쳤다 .

어쩌다 이런 곳에 처박히게 됐는진 모르겠지만 , 우리가 이럴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 , 대화로 풀어보자고 .”

안돼 !”

롭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제나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

여자들을 풀어주면 생각해보지 .”

헬릭이 이렇게 말하고는 페딤의 목을 무릎으로 눌렀다 . 켁켁거리며 발버둥 치는 것 같더니 이내 정신을 잃고 늘어지고 난 뒤에야 , 다시 큰 소리로 외쳤다 .

두 사람이 무슨 관계인지 모르겠지만 난 그저 이 행성을 떠나고 싶은 마음뿐이야 . 그러니 여자들만 풀어주면 조용히 물러나지 .”

? 지금 협박하는 거야 . 상황 파악을 못하는 군 . 대화로 해결하자는 건 너에게 기회를 준거야 . 착각하지 말라고 .”

롭이 목소리가 들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 제나의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

나머지 손가락을 다 꺾어놓기 전에 나오는 게 어때 .”

제나가 고통 받는 것이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 지금 나가면 모든 게 끝이라는 것을 헬릭은 잘 알고 있었다 . 하지만 이 불리하기만 한 상황을 해결할 다른 뾰족한 방법도 떠오르지 않았다 . 다시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고 롭의 목소리가 뒤를 이었다 .

얼른 결정하는 게 좋겠어 . 제나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재미있어지려고 하거든 .”

헬릭이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 조금의 틈만 있다면 , 제나와 자신에게 유리한 아주 조금의 틈만 있으면 좋겠다고 헬릭은 생각했다 . 어째서인지 세번째 비명소리는 더 멀리서 들려오는 듯 했다 . 마치 잠결에 듣는 것처럼 . 소리가 잦아들자 방금 전까지 가슴 한 곳을 짓누르던 미안함이 옅어진다 . 진통제 때문인지 , 상황에 대한 방어기제인지 알 수 없다 . 컨테이너 쪽을 스코프로 살펴보지만 , 놈들은 박스 뒤에 몸을 숨기고 있어 , 털 끝 하나 보이지 않았다 .

심장을 움켜쥐는 듯한 저음의 포효가 울려 퍼진 것을 바로 그 때였다 . 컨테이너 상자 위를 우아하게 뛰어오른 백호 한 마리가 놈들이 몸을 숨기고 있는 상자 뒤 쪽을 내려보며 울부짖고 있었다 . 유전자 조작으로도 막을 수 없었던 , 수 만년의 시간이 만들어낸 종의 본능이 눈을 뜬 것이었다 . 녀석이 내지르는 울부짖음은 사냥감들에게 공포를 불러왔고 , 그 공포는 금세 주변으로 퍼졌다 . 사냥감이 내뿜는 공포의 냄새가 사냥꾼의 잔혹함을 증폭시켰다 . 어슬렁거리던 움직임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 단단한 다리 근육들이 리듬 있게 울렁거렸다 . 그렇게 바닥으로 뛰어내리는 듯싶더니 다시 다른 쪽 컨테이너 위에 올라섰을 때는 목이 꺾인 남자 하나가 입에 물려 있었다 .

비명과 함께 혼비백산한 다른 한 놈이 머리를 내놓는 것을 헬릭은 놓치지 않았다 . 방아쇠를 당김과 동시에 놈의 뒤통수에서 붉은 것이 터지는 것 같더니 쓰러졌다 . 그리고 그와 맞물려 헬릭의 것이 아닌 다른 총성이 울렸다 . 롭이 백호를 향해 총을 쏜 것이었다 . 하지만 그것은 제나의 저지로 빗나갔고 레베카와 제나가 롭이 쥔 총을 막기 위해 엉겨 붙었다 . 헬릭이 뛰어가 롭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자 그제서야 롭이 손을 들고 뒤로 물러섰다 .

죽이지는 않겠지 ?”

비열한 미소와 함께 녀석이 물러서자 헬릭이 바닥에 쓰러진 제나를 일으켜 세웠다 . [u12]  

바닥을 짚는 제나의 손가락이 엉망으로 꺾여 있었다 . 제나가 일어서자 헬릭은 천천히 권총을 뽑아 야옹이를 겨냥했다 . 야성을 찾은 녀석이 자신들을 공격하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 그러나 그런 걱정은 기우였는지 , 조금 전까지 사냥꾼의 눈빛을 하고 있던 녀석이 어느새 얌전히 앉아 피로 붉게 물든 주둥이로 앞발을 핥고 있었다 . 헬릭은 야옹이를 겨누던 총구의 방향을 바꾸어 롭을 겨누고는 라이플을 뒤로 돌려 맸다 .

아까도 이야기 했지만 , 우리가 이럴 필요 없잖아 . 말로 해결하자고 .”

여전히 미소를 띠며 말하는 롭에게 헬릭이 대답 대신 놈의 손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 롭이 관통상을 당한 왼손을 오른손으로 움켜쥐며 비명을 내질렀다 .

접에 이야기하던 때와는 상황이 달라졌지 . 게다가 난 신사적인 편도 아니고 ……”

롭의 얼굴이 일그러져 예의 그 비열한 웃음도 자취를 감추었다 .

미안해 설마 이 놈들이 구출신호를 듣고 올 거라고는 ……”

제나가 전에 볼 수 없던 표정으로 말끝을 흐렸다 .

당신이 항해사 였다는 이야기는 들었고 , 이드와 레베카 그리고 저 롭이란 자의 관계가 매우 궁금하긴 하지만 , 지금은 적당한 때는 아닌 것 같군 . 일단 여기를 벗어난 다음에 이야기하자고 .”

말을 마치고 헬릭이 롭에게 물었다 .

. 너희 일행이 몇 놈이나 남아있지 ?”

글쎄 , 나도 잘 모르겠는데 . 손가락으로 세어봐야 할 것 같은데 이 모양이라서 .”

롭이 다시 빈정거리자 헬릭이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관통상을 당한 왼손을 다시 쐈다 . 이번에는 집게 손가락 근처에 맞았는지 겨우 붙어있는 듯 손가락이 덜렁거리며 흔들렸다 . 분노 섞인 비명을 내지르며 롭이 헬릭을 노려보았다 .

이제야 내 마음에 드는 얼굴이 됐군 . 그래 , 몇 명이나 남아있지 ?”

정확히는 나도 몰라 . 넷인가 다섯 .”

얼굴은 험악했지만 놈이 순순히 입을 열자 , 헬릭이 총구로 움직이라는 시늉을 하면서 말했다 .

그럼 이제 조종실로 안내해 .”

롭이 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몸을 돌려 문 쪽으로 걸어갔다 . 헬릭과 일행이 녀석을 따라 긴 복도를 지나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

허튼 짓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

헬릭이 이렇게 말하자 롭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

나를 여기 대장쯤으로 여기는 모양인데 , 이 우주선은 누구도 통제하는 사람이 없어 .”

그 말이 끝나자마자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조종실이 나타났다 . 조종실에는 남자 셋이 그들이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소총을 겨누고 있었다 .

잠시 정적이 흐르고 나서 , 헬릭이 먼저 입을 열었다 .

여기 우두머리가 누구지 ?”

순간 세 남자의 시선이 롭에게 향하는 것을 헬릭이 눈치챘다 . 하지만 이내 가운데 있는 남자가 입을 열었다 .

우두머리 같은 건 없어 . 총을 내려놓고 물러나면 목숨은 붙여주지 .”

그래 ?”

헬릭이 롭을 겨누고 있던 총구를 바꿔 말을 한 남자의 머리를 날려버리고 다시 롭을 겨냥했다 . 너무 순식간의 일이라 다른 두 놈은 넋 나간 얼굴로 서로를 바라볼 뿐이었다 .

쏘지 못할 거면 총을 내려놓고 물러서 .”

헬릭의 말에 한 놈이 머뭇거리며 총을 내려놓고 양손을 들고 물러섰지만 , 다른 한 놈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 하지만 겁먹은 표정이나 작게 흔들리는 총구에서 놈이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대충 알아챌 수 있었다 . 그때 뒤쪽에 물러서 있던 제나가 앞으로 한 발자국 나오면서 말했다 .

! 총 내려놔 .”

그러자 폰이라 불린 놈이 놀란 얼굴로 제나를 쳐다봤다 .

제나 ? 정말 제나야 ?”

그래 .”

폰이 제나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총구를 천천히 떨구자 그것을 보고 있던 롭이 소리쳤다 .

겁쟁이 자식들 !”

헬릭은 레베카에게 그들을 묶게 하고는 폰이란 자에게 물었다 .

너희들이 전부인가 ?”

헬릭의 물음에 폰이 고개를 끄덕였다 . 그제야 헬릭은 조종석에 앉아 등받이에 등을 길게 눕히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 아까 권총으로 한 놈의 머리를 쏠 때부터 시야는 흐렸다 . 진통제로 막아왔던 통증들이 의자에 앉는 순간 안도감과 함께 밀려왔다 . 하지만 아직 쉴 수 없었다 . 롭이란 자가 아직 위험 요소로 남아있었고 , 제나와 어떤 관계인지 아직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들이 많이 남아있었다 .

! , 이제 이드와 레베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

헬릭의 물음에 총상 입은 손을 움켜쥐고 있던 롭이 일그러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뭐야 ? 뭐가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고 있었다는 건가 ? 재미있군 , 재미있어 .”

또 쓸데없는 말들을 늘어놓는군 . 널 죽이기 전에 궁금증이나 풀어볼까 했는데 ……”

헬릭이 이렇게 말하고 권총을 겨누자 제나가 지그시 눌러 내리며 말했다 .

이제 충분해 . 더 이상은…… 내가 이야기해줄게 .”

그녀의 시선이 롭을 향하더니 이내 , 레베카 쪽으로 움직이는 것을 보면서 헬릭은 총을 내리고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

그때 우리는 OTP 가 관리하는 행성에 화물을 운반하는 중이었어 . 단순하고 반복적인 스케줄이었고 별로 특별한 것은 없었지 . 저 롭이라는 사내가 OTP 화물 관리원으로 우주선에 타기 전까지는 말이야 . 단지 귀중품이 끼어 있나 싶었을 뿐이었어 . 사실 그때는 괜히 귀찮은 물건을 배달하면서 사고나 생기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 귀찮은 물건보다 저 롭이라는 사내가 진짜 문제였지 . 롭은 꽤 사교성이 좋아서 금방 화물선의 다른 동료들과 친해졌지 . 나중에 알았지만 , OTP 화물을 빼돌릴 계획이었기 때문에 화물실에 자유롭게 오갈 생각으로 친해진 척 한 거야 .”

화물 관리원이었다고 하지 않았나 ? 그런데 화물을 훔치려고 했다고 ?”

“GPC 의 스파이거나 , 돈이 필요했거나 동기는 확실히 모르겠어 . 어쨌든 그 날 놈이 화물실에서 물건을 빼내는 걸 이드가 발견하고 , 녀석에게서 빼앗아 도망친 거야 .”

이제부터 재미있는 부분이야 !”

이죽거리며 롭이 덧붙이자 제나가 놈을 노려보며 말했다 .

그런데 빠져나갈 구멍이 없던 놈이 수를 쓴 거야 . 이드가 가져간 물건이 팔리면 그 돈을 같이 나누자고 선원들을 꼬였지 . 결국 , 선상 반란이 일어났고 나와 이드는 화물과 함께 비상탈출을 시도했어 . 거기서 이드가 ……”

죽었나 ?”

헬릭이 묻자 제나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

아니 , 하지만 머리를 맞았어 . 날 구하려다가 …… 이드는 사실 …….”

안드로이드였거든 . 스스로는 이전 인간일 때의 기억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어서 사이보그라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 아 중요한 걸 빠뜨릴 뻔 했군 . 제나와는 연인 사이였거든 . 안드로이드가 되기 전부터인지 , 나중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야 .”

제나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롭이 다시 끼어들었다 . 제나는 잠시 롭을 노려보다 다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

놈들은 비상탈출선도 공격했어 . 다행히 이 행성에 착륙하긴 했지만 .”

그럼 화물은 ? 그건 뭐였지 ?”

신형 전자두뇌라고 하더군 . 결국 난 이드의 기억만이라도 되살리기 위해 신형 전자두뇌는 이드의 부서진 두뇌 모듈과 합치고 네가 보았던 로봇에 이식했지 . 하지만 이드는 돌아오지 않았어 .”

그럼 지금의 레베카는 ?”

이드의 원래 몸에 이곳에 남았던 안드로이드 잔해를 섞어서 만든 거야 . 그걸 수리하려고 애쓰는 걸 보면 , 이드의 기억이 남아있는 것 같지만 그건 일부일 뿐이야 .”

왜 내게 사실대로 이야기하지 않았지 ?”

딱히 거짓말도 하지 않았어 . 이런 곳에서 처음 만난 사람에게 할 이야기도 아니었고 . 내가 엔지니어라는 거나 레베카에 대한 이야기도 완전히 틀린 이야기는 아니었고 .”

헬릭은 쓴웃음을 짓고는 이내 롭을 바라보며 말했다 .

저 신형 인공두뇌란 걸 왜 빼돌리려고 한 거지 ? GPC 에서 왜 저걸 필요로 하는 거야 ?”

돈이 가장 큰 이유지 . GPC 에서 저걸 원하는 이유 따위야 내가 알 필요 있나 ? 단지 새로운 연구를 위해서라고만 알고 있을 뿐이야 . 난 저걸 넘겨주기만 하면 끝 이었어 . 그런데 저것들이 설치는 바람에 돌아가지도 못하고 떠돌아다니게 된 거지 . 선금을 너무 많이 받아버려서 말이야 .”

롭이 이렇게 말하고는 잠시 킥킥거리며 웃더니 말했다 .

물론 내가 협상할 처지가 아니란 건 알고 있지만 , 저 레베카인지 이드인지 알 수 없는 머릿속의 두뇌 모듈만 돌려주면 우리 모두 행복해질 수 있다고 . 이드의 기억은 원래대로 살려서 이식하고 , 난 모듈을 넘기고 너희들은 돈도 챙기고 말이지 . 어때 나쁘지 않잖아 ?”

제나가 롭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 .

그게 몇 년 전이지 ? 그들이 아직도 네 말을 듣고 순순히 돈을 줄까 ? 내 생각에 네 최선의 선택은 지금처럼 떠도는 것뿐이야 .”

그러자 롭이 왼쪽 눈썹을 치켜 올렸다 내리면서 말했다 .

! 그건 네 말이 맞아 . 그런데 내가 알고 있는 게 꽤 많거든 . GPC 에서 알고 싶어하는 것들에 대해서 말이지 . 그래서 저 프로토타입의 신형 전자두뇌와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이 합쳐져야 그들에게 필요한 정보가 된다는 말이지 . 저 물건이 없을 때는 내 정보도 쓸모가 없지만 그게 아니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는 거지 .”

롭의 말에 헬릭이 다시 총을 겨누었다 .

, 그럼 그게 뭔지 한 번 들어볼까 ?”

내 생명줄을 내가 놓아버릴 것 같아 ?”

롭이 웃으며 대답하자 헬릭이 머리를 겨누고 말했다 .

지금 말하지 않으면 평생 말할 수 없을걸 .”

헬릭의 말에 롭이 코웃음을 치자 바로 총구가 번쩍였다 . 롭의 왼쪽 뺨을 스쳐 피가 배어 나오자 헬릭이 말했다 .

재수가 좋은데 ! 이렇게 빗나가는 일이 많지 않은데 말이야 .”

그리고 다시 총구를 들자 롭이 말했다 .

이야기할 테니 그만해 . 말이 안 통하는군 .”

“GPC 에 내가 이야기를 하나 흘렸지 . OTC 에서 테라포밍을 막 끝낸 행성 하나에서 이상한 실험 하나를 하고 있다고 말이야 . 물론 내가 그 실험에 대해서 알 수 있는 보안등급은 아니지만 . 난 봤거든 . 그 행성에 수송되는 물품 내역들을 . 그 수상한 물품 목록에 관해 이야기 했더니 GPC 의 누군가가 뭔가를 눈치챘는지 이상한 말을 하더군 .”

수상한 물품 목록이라니 그게 뭐였지 ?”

돼지들과 사료 그리고 유전자 공학에서 사용하는 장비들이었지 . 그런데 그 물량이 말 그대로 어마어마했거든 . 말 그대로 웬만한 행성 하나를 뒤덮을 만한 수준이었으니까 . 난 뭔가 수상한 실험이라고만 생각했는데 GPC 에서는 뭔가 감을 잡은 모양이더군 . 내게 그 행성으로 수송되는 물품 목록을 빼 오라고 하더니 어디서 알았는지 그 신형 두뇌 모듈 샘플을 빼 오면 두둑한 보상을 하겠다고 했지 . 내가 거절할 이유가 있나 그래서 두둑한 선급을 받아서 이 우주선에 올라탔지 .”

그 정도가 알고 있는 전부라면 협상이 되질 않겠는데 .”

헬릭의 말에 롭이 웃으며 말했다 .

마지막 패까지 다 꺼내 놓게 하는군 . 내가 호기심이 많아서 그 신형 두뇌 모듈이 어떤 건지 조사를 좀 했거든 . 그랬더니 그게 일반적인 두뇌 모듈이 아니었다는 거지 . 하이브 마인드 ( 집단지성 ) 를 연구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거야 . 여왕개미나 여왕벌처럼 집단을 지배하는 강한 의지 혹의 지성을 시뮬레이션하기 위해서 말이지 . 유전자 조작을 위한 장비 , 어마어마한 수의 돼지 , 그리고 그 두뇌 모듈 . 여기서 나도 GPC 녀석들이 떠올린 걸 나도 떠올리게 된 거지 .”

그런 실험이라면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도 가능할 텐데 . 돼지의 뇌를 연결해서 집단 지성을 실험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

헬릭이 이렇게 말하자 롭이 놀란 눈으로 말했다 .

너도 꽤 머리가 돌아가는데 , 내가 이야기도 안 했는데 알아차리고 말이야 . 맞아 ! 의미가 없지 . 그런데 우리 같은 사람들도 의미 없다고 생각하는 실험을 왜 하려고 하는 걸까 . 우리보다 더 잘 알고 있을 텐데 말이야 . 그리고 GPC 에서도 그 실험에 대한 정보를 원하고 말이지 . 그래서 난 OTC 의 연구라는 걸 더 조사해보기로 했지 . OPP-0434 에서 이루어지는 실험의 목적 말이지 . 그걸 알아내기 위해서 돈을 쓰긴 했지만 , 결국 GPC 녀석들이 혹할 정보를 알아냈지 . 그 실험이 집단 지성을 테스트하기 위한 게 아니라 거대한 유기 컴퓨터를 만들기 위한 실험이라는 걸 .”

그 정도의 정보는 아마 GPC 도 알고 있을걸 . 그리고 두뇌 모듈도 이제는 필요 없을 거야 . 이렇게 시간이 지난 경우에는 더욱더 ……”

헬릭이 이렇게 말하자 롭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

알지도 못하면서 제멋대로 지껄이는군 .”

롭의 말에 헬릭이 코웃음을 치더니 말했다 .

자기 일에 대해서는 너무 순진한 구석이 있는데 , GPC OTP 에 대해서는 내가 더 잘 알고 있으니 믿어도 좋을 거야 . 그러니 GPC 에 갈 생각은 지워버려 .”

웃기지 마 !”

순간 , 롭이 제나에게 달려들었다 . 흥분한 놈이 제나의 총을 빼앗아 헬릭을 겨누는 순간 헬릭이 먼저 발사했다 . 지금까지 어느 순간에도 능글맞게 웃던 놈이 자기 생각이 틀렸다는 게 드러나자 순간 이성을 잃고 광폭하게 변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

이제는 어떻게 하지 ?”

제나가 롭의 시체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

원래 생각했던 대로 여기를 벗어나야지 . 하지만 그 전에 난 좀 쉬어야겠어 .”

그래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게 . 레베카 좀 도와줘

제나가 조종석에 앉는 순간 , 헬릭은 눈을 감았다 .

얼마나 잤는지 알 수 없었다 . 어느 새 의료용 침대 위에 옮겨져 있었다 . 치료가 진행되었는지 통증은 많이 줄어들어 있었다 . 헬릭이 침대에서 내려서자 때마침 레베카가 의료실 안으로 들어왔다 .

일어났어요 ? 몸의 회복이 굉장히 빠르네요 .”

. 그런데 말투가 왜 그러지 . 레베카가 맞아 ?”

헬릭이 뭔가 다른 것을 느끼고 묻자 그녀가 대답했다 .

! 소개가 늦었네요 . 전 이드 에요 .”

수리 한 건가 ?”

. 레베카 시절의 기억도 남아있어요 . 하지만 감정 정보가 없는 기억이라 생각해 내고 싶진 않네요 . 혹시 레베카가 그립나요 ?”

딱히 그런 건 아니지만 적응은 되지 않는군 .”

헬릭의 말에 이드가 웃으며 말했다 .

제나는 조종실에 있어요 . 제가 안내해 드릴게요 .”

헬릭은 이드를 따라 조종실로 향했다 . 조종실 안에는 제나 이 외에도 폰이란 자가 조종석에 앉아 있었다 . 헬릭이 그들을 쳐다보자 제나가 말했다 .

삼 일 만에 이렇게 걸어 다니다니 대단한데 . 저 두 사람은 신경 쓰지마 . 도와주기로 했으니까 .”

믿을 수 있는 건가 ?”

폰은 나랑 친한 사이였어 . 어쩌다 휩쓸려서 놈들과 한패가 됐지만 .”

다른 쪽은 ?”

이드가 감시하고 있지

누군가에게 휩쓸려서 적이 됐다면 , 그게 제일 믿지 못할 것 같은데 .”

그래도 어쩔 수 없었어 . 이 큰 우주선을 나 혼자 움직이기는 힘드니까 .”

헬릭이 으음 하는 소리와 함께 조종석에 앉았다 .

어디로 가고 있지 ?”

지금까지 벌어진 일을 모두 보고하고 가장 가까운 행성으로 이동하는 중이야 . 아마 몇 시간 후면 도착할 거야 .”

그래 , 이제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는군 .”

헬릭의 말에 제나가 잠시지만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가 금세 지우고는 말했다 .

, 그래 , ! 네 물건은 그 곳을 떠나기 전에 다 챙겨왔어 .”

고맙군 , 말도 하지 않았는데 .”

잠시 두 사람의 대화가 끊기고 침묵이 이어졌다 .

혹시라도 …….”

먼저 제나가 입을 열었다 .

어디 갈데가 없다면 우리와 함께 지내지 않겠어 ?”

제나의 말에 헬릭이 말없이 창밖의 우주를 바라보았다 . 잠시 그의 눈이 흔들린 것 같다고 제나가 느낀 순간 그가 입을 열었다 .

고맙지만 꼭 해야할 일이 있는데 시간이 너무 지나버렸어 .”

그런가 ? 그럼 할 수 없지 .”

제나가 웃자 헬릭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

고마웠어 .”

나야말로 , 당신이 아니었다면 거기서 빠져나오지 못했을 거야 .”

제나의 말에 헬릭이 미소지으며 제나의 어깨를 두드리며 일어섰다 .

격납고에 1 인용 우주선이 있어 . 페딤이 손을 봐 놓았을거야 . 짐도 실어놓았고 .”

같이 지내자더니 내보낼 준비는 다 해놓았군 .”

헬릭이 웃으며 제나 쪽으로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 , 제나가 등 뒤에서 그를 안으며 말했다 .

떠날 줄 알았지만 물어보고 싶었어 . 언제나 한 가닥 희망은 있는 거니까 .”

헬릭이 제나의 팔을 풀려고 손을 가져가자 그녀가 말했다 .

예전에 안았던 것처럼 감동스럽지는 않네 . 연락 같은 건 안하겠지 ?”

그녀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

잊지 않는다면 언젠가 연락할지도 모르지 .”

헬릭의 말에 제나가 팔을 풀자 헬릭이 말없이 조종실을 나왔다 .

목적지의 대기권에 진입하는 것을 확인한 헬릭이 격납고로 향했다 . 야옹이에게 먹이를 주고 있는 페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자 그가 겁에 질린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 대신 야옹이를 향해 손을 흔들고 1 인용 우주선에 올라탔다 . 잠시 후 지상에 착륙하자 격납고 문이 열리며 제나와 이드가 나타났다 .

보안 요원들이 곧 올 거야 . 그전에 가 .”

우주선 안의 통신장치로 제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헬릭은 조종석의 창밖으로 손을 흔들고 있는 제나를 내려다보고는 자동조종장치의 목적지를 가까운 민간 착륙장을 찾아 지정했다 . 제나가 그간 있었던 일을 어떻게 설명할지 궁금했지만 큰 걱정은 되지 않았다 . 마지막으로 눈인사를 하고 나가 헬릭은 태운 우주선이 격납고를 빠져나가 공중으로 사라졌다 . 제나는 잠시 서서 우주선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다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

잘 가 . 사냥꾼 아저씨 .”

자유종 2018-05-16 (수) 11:51
개인용 비상탈출 캡슐이 행성 중력권 안으로 들어섰다. 대기권 진입을 위해서 가스를 분사하며 위치를 조정했다. 캡슐의 움직임이 안정되고, 점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헬릭은 이 캡슐 안에 잠들어 있었다.
헬릭은 세린의 흔적을 찾기 위해 셀돔으로 향하다가 테러집단 "여왕의 아이들"에게 붙잡혔다. 간신히 비상탈출 캡슐로 탈출했으나 불운이 끝나지 않았다.
헬릭은 장기수면에 빠져 깨닫지 못했지만, 비상탈출 캡슐은 탈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화물선에 인양되었다. 구조가 아니라 인양인 이유는, 헬릭을 '인간 거래시장'에 내다팔기 위해 화물칸에 실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딘가에 팔렸다면 일단 깨어나기는 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화물선은 정박하기 전에 현상금 사냥꾼의 공격을 받았고, 전투 중에 화물칸 해치가 개방되면서 헬릭은 또다시 엉뚱한 곳을 표류하기 시작했다.
티모33 2018-05-16 (수) 12:22
한편의 스페이스 오페라를 눈앞에서 본 것같네요.
감사합니다. :)
     
       
글쓴이 2018-05-16 (수) 17:29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픽스업 형식으로 쓰고 있는 스페이스 오페라중 최근작 입니다. 틈날 때 쓰는 소설이라 10여년이 지나는 동안 책 한권 분량이 될까 말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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