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평지전 - 김용의 동방불패의 후일담

제목 : 정사록 ( 正邪錄 ) – 동방불패의 뒷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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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 무렵의 옛 중국옷을 입은 청년이 높은 절벽 위에 서 있다 . 지팡이를 쥐고 있는 청년의 가슴에는 한반도의 지도가 그려져 있다 .

임평지 : ( 가슴을 주먹으로 치며 ) 에잇 , 제기랄 . 구차한 인생 더 살아 뭐해 !

평지는 지팡이를 내팽개치고 “ 으악 !” 하고 소리치며 절벽 아래로 뛰어내린다 . 그 때 절벽 위에서 젊은 처녀가 채찍을 휘둘러 , 떨어지는 평지를 잡아 공중에 멈추게 한다 .

평지 : 누구야 ! 나 좀 내버려둬 !

처녀 : 입 닥치고 가만 있어 .

처녀가 급히 채찍을 감아 올려 평지를 절벽 위로 되돌려 올린다 .

평지 : 으아 , 구차한 내 인생 . 맘대로 죽지도 못하나 !

처녀 : 누구 맘대로 죽으려고 . 당신은 황제의 재산이야 .

평지 : 뭐라고 ?

처녀 : 황제의 재산이 멋대로 자살하면 안되지 .

평지 : 그래 내가 잘못했소 . 그러니 제발 이번 한번만 나 좀 내버려두쇼 .

처녀 : 어허 , 황제께 충성을 다해야지 .

평지 : 당신은 누구길래 나를 다그치는거요 ?

처녀 : 나는 황제의 딸 , 주찬미 ( 朱讚美 ) 공주요 .

평지 : 어이쿠 귀하신 공주님을 제가 몰라 뵀습니다 . 장님이라 눈이 안 보이니 용서해 주십시오 .

공주 : 괜찮소 , 맘 놓으시오 .

평지 : 그런데 공주께서 어찌 이곳에 ?

공주 : 내 일찍이 당신을 주목하고 있었소 .

평지 : 저를요 ?

공주 : 그렇소 . 오늘도 한참 전부터 당신을 따라온 것이오 .

평지 : 그렇다면 공주님도 제 사정을 잘 아시겠군요 .

공주 : 물론이오 .

평지 : 아시다시피 저는 남자 구실도 못하는 괴물에다가 눈도 안보이는 장님이오 .

공주 : 그렇다고 생을 비관하면 안되지 .

평지 : 저는 또 제 아내를 제 손으로 찔러 죽였소 .

공주 : 누구나 살다보면 실수하는 것이오 .

평지 : 저는 천벌을 받아 마땅한 놈입니다 . 그냥 죽게 놔 두시란 말이오 .

공주 : 벌을 줘도 황제가 주는 것이오 . 어찌 임의대로 행동하는 것이오 .

평지 : 그렇다면 제가 어찌해야 할까요 ?

공주 : 황제를 뵈러 갑시다 . 당신의 눈도 황제라면 고쳐줄 수 있소 .

평지 : 네 ? 제 눈을요 ?

공주 : 그렇소 . 중독된 눈에서 독을 제거하면 다시 볼 수 있을 것이오 .

평지 : 네 , 공주님 ! 분부 받잡겠습니다 .

공주가 평지를 부축해 일으키고 둘은 발걸음을 옮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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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는 황궁 . 명나라 무렵의 중국 황제 복장을 한 중년남자가 보좌에 앉아 있고 , 그 가슴에는 미국의 지도가 그려져 있다 . 바닥에 임평지와 공주가 서 있다 .

공주 : ( 절하며 ) 부황을 뵙습니다 .

황제 : 오 , 그래 . 찬미야 . 강호 유람은 재미있었느냐 ?

공주 : 네 , 폐하 , 박진감 넘치는 일이 많았습니다 .

황제 : 듣기에 , 내 휘하의 사파 ( 邪派 ) 세력이 망가졌다던데 .

공주 : 말도 마십시오 , 폐하 . 사파의 우두머리가 모조리 죽었어요 .

황제 : 임아행도 동방불패도 모두 죽었다지 .

공주 : 네 , 폐하 . 다행인 건 정파 ( 正派 ) 의 맹주를 자처하던 오악검파 ( 五岳劍派 ) 의 장문인들도 많이 죽어버려서 세력이 많이 약해졌어요 .

황제 : 그러게 말이다 . 힘의 공백 상태야 .

공주 : 현재 무림을 주도하고 있는 영호충은 원래 오악검파 중 하나인 화산파 제자로서 정파 소속이었죠 .

황제 : 화산파에서 인물 났구만 .

공주 : 그렇지만 영호충은 임아행 교주의 딸 임영영과 친분을 맺으면서 사파 사람들과도 친하게 지낸 자입니다 .

황제 : 정파와 사파는 서로 철천지 원수로 여기며 싸워 왔는데 특이한 존재야 .

공주 : 그러니 영호충은 정파도 아니고 사파도 아니어서 중립적인 위치죠 .

황제 : 정파와 사파를 넘나들며 헷갈리게 하는구만 .

공주 : 우리는 하루빨리 사파 세력을 복원해야 합니다 .

황제 : 그건 그렇고 자네 임평지 .

평지 : ( 절을 하며 ) 소신 임평지 폐하를 뵙습니다 .

황제 : 자네는 어쩌다 눈을 다쳤나 ?

평지 : 부모의 원수를 갚다가 원수에게 반격당해 눈이 중독됐습니다 .

황제 : 자네 , 내게 충성을 맹세한 건 잊지 않았겠지 ?

평지 : 남자를 거세하며 황제 폐하께 충성을 맹세했으니 어찌 다른 마음을 품겠습니까 ?

황제 : 거세니 환관이니 너무 괘념치 말게나 .

평지 : 이를 말씀이옵니까 .

황제 : 자네가 내게 충성을 다한다면 벽사검법의 모체 ( 母體 ) 인 규화보전을 전수해 주지 .

평지 : 아니 규화보전을요 ?

황제 : 남자를 거세하고 여성화된 상태에서 오를 수 있는 궁극의 경지가 규화보전에 담겨있어 .

평지 : 감사합니다 , 폐하 .

황제 : 또한 자네 눈도 고쳐주겠네 .

평지 : 제 눈을요 ?

황제 : 사양치말게 . 그런데 중독을 제거하려면 내공을 많이 소비하게 되서 회복수련이 필요하네 .

평지 : 회복수련 동안은 꼼짝도 못하시니 적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지켜드려야죠 .

황제 : 그래 , 자네가 날 좀 잘 지켜주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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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궁 안의 작은 방 안에서 황제가 , 앉아 있는 임평지의 앞에 서서 두 손을 뻗어 임평지의 몸 안으로 내공을 불어넣는다 . 시간이 지나자 임평지의 손가락 끝에서 검은 물이 뚝뚝 떨어진다 .

황제 : ( 거친 숨을 몰아쉬며 손을 거두고 ) 평지 자네의 독은 이미 제거됐네 . ( 평지의 얼굴을 긴 천으로 휘감아 평지의 눈을 가려주며 ) 빛을 바라보지 말고 하루만 요양하면 눈이 다시 보일걸세 .

평지 : 감사합니다 . 폐하 .

황제 : ( 규화보전을 평지의 손에 쥐어주며 ) 눈을 뜨면 무공에 더욱 정진해 주게 .

평지 : 분부 받잡겠습니다 , 폐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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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후 황궁 .

황제 : 아 , 개운하다 . 몸이 완전히 회복됐어 .

평지 , 공주 : 경하드립니다 , 폐하 .

황제 : 그래 , 고맙다 .

공주 : 부황 , 이제는 사파의 재건을 위해 나서야죠 .

황제 : 잘 말하였다 . 사파의 재건이 당면 과제지 .

평지 : 폐하 외람된 말씀이오나 , “ 사파 ” 는 “ 정파 ” 놈들이 우리를 비하해서 부르는 말인데 , 어찌하여 폐하께서 스스로를 사파라고 부르십니까 ?

황제 : 허허허 . 맞는 얘기다 . 하지만 나는 괘념치 않는다 .

평지 : 상관 없으시다고요 ?

황제 : 그래 . 정파는 착한 척이나 하는 바보들이고 , 우리 사파가 악역을 맡아 인류문명을 발전시켜 왔지 .

공주 : 악역이 없으면 게으른 인류는 발전이라고는 꿈도 못 꾸겠죠 .

황제 : 참 그건 그렇고 임아행과 동방불패 모두 죽었다지 ?

평지 : 예 , 일월신교의 전후임 교주가 모두 죽었습니다 .

공주 : 부황이라면 그들을 다시 살려낼 수 있죠 ?

황제 : 그럼 그렇다마다 . 내 능력이라면 그것쯤 .

평지 : 제가 일월신교의 본부에 가서 두 교주의 시체를 가져오겠습니다 .

황제 : 그래 , 언플라자 언덕에서 만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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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후 언플라자 언덕에 황제가 서 있고 , 멀리서 임평지가 수레에 임아행과 동방불패의 시체를 싣고 다가온다 .

황제 : 어서와라 평지야 , 수고했다 .

평지 : 아닙니다 , 수고는요 뭘 .

황제 : 두 교주를 다시 살리려면 내공을 주입해야 하고 , 또 회복수련을 해야 하니 , 그동안 평지 자네가 날 지켜주게 .

평지 : 분부 받잡겠습니다 .

황제가 임아행과 동방불패의 시체에 각각 한손씩 대고 내공을 주입한다 . 황제의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고 머리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기를 두시간 . 이후 마침내 두 교주가 살아나 한숨을 내쉬면서 일어나 앉는다 . 임아행의 가슴에는 영국 지도가 그려져 있고 , 동방불패의 가슴에는 일본 지도가 그려져 있다 .

임아행 : 아이고 살았다 . 죽는줄만 알았네 .

동방불패 : 여기가 어디지 ?

황제 : 반갑네 . 다시 돌아온 걸 환영하네 .

임아행 , 동방불패 : 아이고 황제폐하 !

황제 : 사파의 재건을 위해 우리 오늘을 기념하세 .

임아행 : 물론이죠 . 제 흡성대법을 사용하면 인민의 내공을 빨아들여 더욱 강해져서 금방 세력을 키울 수 있습니다 .

동방불패 : 저도 임 교주와의 옛 은원을 잊고 협력하겠습니다 .

임아행 : 폐하 , 정파는 지금 어떤 상황입니까 ?

황제 : 영호충이 맹주를 맡아 지도력을 발휘하고 있네 .

임아행 : 그 친구 , 진작 알아봤습니다 . 큰 인물감이었죠 .

동방불패 : 영호충은 정파와 사파를 넘나들며 두루 친분을 나눈 사람이라서 우리로서도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습니다 .

황제 : 현재로선 그렇지 .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영호충도 달라질걸세 .

임아행 : 어떻게 말씀입니까 ?

황제 : 재야에 있을 때는 평화다 우호다 말하기 쉽지만 . 막상 권력을 잡고보면 욕심과 의심에 사로잡히는 것이 모든 인간의 본성이야 .

평지 : 제가 그를 만나서 살펴보고 오겠습니다 .

황제 : 좋은 생각이네 . 나를 도운 후 일주일 후 떠나게 .

평지 : 분부 받잡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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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후 화산 . 임평지가 영호충 , 임영영과 함께 앉아있다 . 영호충의 가슴에는 중국 지도가 , 임영영의 가슴에는 홍콩 지도가 그려져 있다 .

평지 : 사형 ,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

영호충 : 덕분에 . 자네가 우리 화산파에 몸담았던 걸 잊지 않으니 고맙네 .

평지 : 지금은 사파의 은혜 안에 있지만 , 과거에 정파의 일원이었음을 기억합니다 .

영호충 : 참 그건 그렇고 임아행과 동방불패 교주가 부활했다지 ?

평지 : 네 , 황제가 소생시켰습니다 .

임영영 : 네 ? 아버지가 되살아나셨다고요 ?

평지 : 그렇습니다 . 축하드릴 일이죠 .

영호충 : 미안하지만 나는 달갑지 않네 . 앞으로 무림에 큰 해악이 될 일이야 .

평지 : 사형은 정파의 맹주가 됐다죠 ?

영호충 : 응 , 소림사와 무당산이 도와줘서 말이야 .

임영영 : 아직 정파의 세력은 아주 미약해요 . 많은 장문인이 죽었고 피해가 크니까요 .

영호충 : 그렇지 .

임영영 : 오라버니한테 흡성대법을 사용하라고 내가 재촉하고 있답니다 .

평지 : 아 , 사형도 임아행 교주한테서 흡성대법을 배웠죠 ?

영호충 : 응 . 요즘 흡성대법을 사용해서 인민의 내공을 빨아들이고 있는데 마음이 편치만은 않아 .

평지 : 왜요 ? 인민들의 불만이 쌓여서 민중봉기라도 일어날까봐요 ?

영호충 : 정파가 흡성대법이라니 왠지 안어울려 .

임영영 : 점점 거대해지고 있는 사파 세력과 대등하게 맞서려면 흡성대법을 써서 빨리 힘을 길러야한다고요 .

평지 : 사형이라면 사파의 자본과 정파의 인민을 결합시켜 큰 발전을 이뤄낼 거라고 기대되요 .

영호충 : 말이라도 고맙네 .

평지 : 오늘은 이만 가보겠습니다 .

영호충 : 또 보세 .

임영영 : 또 봬 요 .

평지 : 안녕히 계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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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에서 내려온 평지 . 사파의 황제께 뭐라고 보고할지 고민하며 석양의 노을을 바라다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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