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긴 어디지.
머리가 어지럽다.
안개 속에서 무언가가 바쁘게 움직인다.
그러다가 새까매진다.
아무것도 안 보인다.
그래서 시야가 어둠에 익숙해질 때까지 기다린다.
이윽고 소파 아래에 있는 펜과 먼지가 보인다.
조금 있자, 비릿한 피 냄새가 코를 찌른다.
그와 함께 격렬한 통증이 옆구리에서 느껴진다.
정신이 든다.
얼마나 정신을 잃었던 걸까.
그리고 이게 대체 무슨 일일까.
...
그러니까 오늘 나는 피곤한 몸으로 차에서 흘러나왔다.
어두침침한 조명이 흔들거렸다.
지하주차장은 누군가 지켜보고있는 거 같아서 엘리베이터를 종종걸음으로 탔다.
모터 소리가 가득한 엘리베이터는 누가 위에서 보고 있는 거 같아서 재빨리 집으로 들어왔다.
컴컴한 집은 누가 문 뒤에 서 있는 거 같아서 불을 더듬어 켰다.
그 때,
긴 그림자가 뒤에서 다가와서 내 옆구리를 찔러댔던 게 기억이 났다.
그리고 뛰어가는 발자국 소리와 경보음이 멀어져가던 것도.
...
나는 구급차를 부르려고 움직이려고 했으나 피를 너무 많이 흘렸는지 움직일 수가 없다.
하지만 그럴수록 고통만 느껴졌다.
영원한 시간이 멈춘 것 같았을 때, 빛이 이리저리 방을 훑는 게 보였다.
넘어진 등 뒤로 사람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그들이 나를 제발 구해주기를.
움직이지도 않는 혀로 기도를 해본다.
"그러니까 이게 그 유명한 현장인가?"
"네, 옛날에는 CCTV도 렌즈를 가리면 소용이 없어서 범인을 잡지 못했어요. 그래서 신기술로 현장을 보존한 겁니다."
"첫시도 치고는 잘 보존되었군. 사건 당시 그대로 멈춰있는 것 같아. 보게, 저 시체도 방금 막 죽은 것 같잖아."
"아직 죽기 전이죠. 우리 쪽에서도 한번 살리려고는 했는데.. 정지를 풀면 어차피 쇼크사로 죽을 거래요."
"유족은?"
"없어요. 부모도 벌써 백년 전에..."
"박물관에서 전시되는 이유가 다 있었군"
"괜찮잖아요. 첫 시간정지현장. 풀리지 않는 연쇄살인 미스테리..."
"어, 그래. 그래.. 그럼 피해자는 계속 이 상태로 둬도 좋은 건가?"
"네, 어차피 과학자들도 시간정지된 이상 아픔도 느끼지 못한다고도 하고."
"좋겠네. 아가씨. 편히 쉬라고."
나는 귀를 의심했다.
찔린 배의 통증은 계속 느껴진다.
"아픔과 슬픔은 없으니까"
추위가 몰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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