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프롤로그 느낌이 어떤가요?

알현실에는 적막만이 감돌았다. 함성소리와 쇠끼리 맞부딪치는 소리, 대지가 울리는 듯한 달음질 소리가 황궁 밖 상황을 가늠케 해주고 있었다. 새하얀 대리석을 시작으로 세상 온갖 치장을 이곳에 모두 쏟아부은 것 같은 화려한 알현실 내부와 다르게 바윗덩이를 이용한 투박하고 제멋대로 생긴 왕좌에 한 남자가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 치렁치렁한 금발을 부드럽게 늘어뜨린 남자는 마치 좋은 음악을 듣고있는 양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까딱거렸다. 이따금 발을 움직이거나 손가락으로 왕좌의 팔걸이를 가벽게 톡톡 치기도 했다.

잠긴듯 닫혀있던 알현실의 문이 천천히 열릴 때 남자는 감았던 눈을 뜨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내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 자신과 똑같은 금발을 한 또 다른 남자는 숨을 헉헉대고 양손검을 바닥에 질질 끌고 왕좌를 향해 똑바로 다가오고 있었다. 왕좌에 앉은 남자는 얼굴 한 가득 함박 웃음을 품은 반면 다가오는 남자는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왕좌 아래까지 다다른 짧은 금발의 야생마처럼 거칠어보이는 사내는 어울리지 않게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그런 모습을 비웃기라도 하듯 왕좌에 앉은 남자는 미친듯이 웃기 시작했다. 숨까지 헐떡이며 새어나오는 웃음을 가까스로 억누른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구나, 렉스. 8년만인가? 9년?"

렉스라 불린 사내는 여전히 고개를 들지 않았고 다만 조용히 입을 열 뿐이었다.

"예, 9년만입니다. 레오폴드 폐하."

폐하라니! 레오폴드는 그 누구도 아닌 렉스의 입에서 나온 그 두글자의 짜릿한 울림을 한껏 만끽했다.

"형이면 된다. 그나저나 9년. 그럼 너도 이제 서른이 넘었겠구나. 나는 이제 마흔이 넘어버렸지. 결혼은 했니?"

두 사람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평범한 대화를 나눠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이런 대화가 오가는 이 상황 자체가 레오폴드는 놀랍기도 했다. 옛날 같았으면 벌써 덤벼들었을 녀석이 이렇게나 차분해지다니.

"할 겁니다. 이 모든 일이 끝나면요."

레오폴드는 다시 한 번 웃었다. 소름끼칠 정도로 기분나쁜 고요함이 그의 웃음소리를 더욱 증폭시키는 것만 같았다.

"설마 그 꼬마계집과 말이냐?"

하마터면 렉스는 자신도 모르게 레오폴드에게 덤벼들 뻔 했다. 단숨에 그의 목을 베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꾹 참으며 그는 주먹을 쥐고 몸을 떨었다.

"예. 그 아이와 할 겁니다."

레오폴드는 피식 웃더니 렉스를 향해 빈정거렸다.

"할 수 있다면 해보거라. 이 모든 일이 끝나면, 말이다."

말을 마치고 그는 왕좌에서 몸을 일으켰다. 마흔이 넘는 나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위풍당당한 그의 몸은 렉스로 하여금 자신보다 두 세배 큰 것 처럼 느껴지게 하기에 충분했다. 식은 땀을 흘리며 렉스 또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일어선 그대로 자신을 거만하게 내려보는 레오폴드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과연, 참으로 아버지를 닮아가시는 군요, 형님."

렉스가 기억하던 아버지는 60대임에도 노인이 아니었다. 그 육체의 거대함은 마치 든든한 성벽을 떠올리게 했는데 마치 그 모습을 지금 이 순간 다시 보는 것 같아 감회가 새롭기도 했다. 그만큼 레오폴드가 얼마나 혹독한 수련을 해왔는지도 알 수 있었다.

"너는 불가능하겠지. 어떤 의미로든 말이다."
"겉모습 좀 닮은 걸로 우쭐해지실 필요 없습니다."

처음으로 레오폴드의 얼굴에 미소가 사라졌다. 렉스는 레오폴드가 황제의 자격이 없음을 에둘러 표현하고 있었고 레오폴드는 당연히 그 의미를 알아챘다.

"말재간이 늘었구나. 옛날엔 단순했잖니."
"현명한 친구가 는 것 뿐입니다. 그들에게 늘 배우고 있죠."

이제 레오폴드의 얼굴에는 표정이란 찾아볼 수 없었다. 두 사람은 똑같이 무표정이 되었고 그제야 비로소 그들이 형제로 보였다.

"행복하니, 렉스?"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남자는 티스푼으로 푸딩을 떠올리듯 알현실의 대리석 바닥에 박혀있던 자신의 장검을 뽑아들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한 걸음씩 계단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내 어머니를 죽이고..."

움직일 때 마다 갑옷이 맞부딪치는 마찰음가 렉스의 귀를 거슬리게 했다.

"내 여동생도 죽이고..."

레오폴드가 망토 끈을 풀었다. 검붉은색과 금색의 조화가 훌륭하게 이뤄져 있는 황제의 상징이 연극 끝난 꼭두각시마냥 힘없이 바닥에 널브러졌다.

"이제는 내 제국마저 파괴하고..."

어느 새 레오폴드는 렉스 앞에 서 있었다. 가만히 서서 검을 휘두르기만 해도 상대에게 치명상을 입힐 만큼 가까운 거리였다. 그들은 눈빛만으로 상대를 베어버릴듯 노려보았다.

"행복하냔 말이다! 대답해보거라!"

거짓말처럼 레오폴드의 얼굴이 변했다. 방금 전까지 보여준 온화한 표정들이 전부 가면으로 느껴질 만큼 분노로 추하게 일그러져 오한이 들게 만들 정도였다. 그와 다르게 렉스는 슬픈 표정이었다. 감정이 남아있지 않은 것 같던 그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은 슬픔을 얼굴에 담아냈었다.

"왜 이렇게...나에게 열등감을 느끼는 거야. 당신은 모든 것을 가졌잖아. 나에게 집착할 필요 없어. 그냥 좋은 황제가..."
"닥쳐라!"

레오폴드와의 대화에서 렉스는 처음 진심으로 놀라고 말았다. 자신이 알던 윌베른 제국의 황태자는 이런 거친 단어를 일부러 입에 올릴 만큼 상스러운 사람이 아니었다. 차라리 이런 단어는 과거의 자신이 자주 구사하던 것이었다.

"넌 나에대해 하나도 모르지. 난 평생 너에게 열등감을 느끼며 살아왔다. 언제나 글허지 않은 척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가 계셨던 덕분이지."

렉스는 마음이 답답했다. 레오폴드는 그런 렉스를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네가 검을 잡고 1년 뒤인 15살, 내 나이가 딱 9년 전 너와 같았지. 10년이나 검을 잡아온 청년이 겨우 1년밖에 안 된 소년에게 처참하게 패배한 기분을 너 따위가 알겠니? 황태자라는 무거운 짐을 지지 않고 자유분방하게 살는 네가 내가 그동안 받아 온 압박감을 알기나 하겠니? 그러다가 어느 날 너는 여동생을 죽이고 황궁에서 도망쳤지. 널 잘 따르던 아이였는데. 살아있었다면 아리따운 처녀가 되어 뭇 남성들의 마음을 몽땅 사로잡았을거야. 아, 엘루시아. 널 지키지 못한 날 용서해다오."

마치 정신나간 사람 같았다. 렉스는 답답한듯 그 말에 반박했다.

"그 애는 내가 죽인게 아냐. 아직도 내가 죽였다고 믿는거야?"

미처 반응도 할 수 없었다. 순식간에 다가와 렉스의 멱살을 잡아챈 레오폴드의 눈에는 광기가 서려있었다.

"개소리 하지마. 네가 죽인게 아니라면 넌 도망치지 않았어야 했어."

분노 때문인지 엄청난 악력으로 자신의 멱살을 잡는 그의 손을 렉스는 뿌리칠 수가 없었다. 대신 당당하게 레오폴드의 눈에 정면으로 맞서기로 했다.

"황궁의 모두가 날 범인으로 몰았어! 가만히 앉아서 죽을 날을 기다리란 거야? 내가? 그럴리가 없지! 난 진범을 찾아야만 했고 그 자식을 내 손으로 죽여야만 했어! 당연히 황궁에서 도망칠 수 밖에 없잖아! 죽으면...엘리의 복수를 할 수 없으니까..."

팍, 하고 레오폴드는 거칠게 렉스의 멱살을 놓아주었다. 그러고는 다시 무표정하게 렉스를 바라보았다. 그런 그를 보며 이번에는 렉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행복하냐고 물었지?"

말이 끝남과 동시에 렉스는 자신의 대검을 양손으로 단단히 쥐고 가볍게 들어올렸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이제부터 행복해질거야."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레오폴드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나왔다. 다음 순간 금속이 맞부딪치는 소리가 알현실에 울려퍼졌다. 준비동작도 없이 전광석화같은 남자의 베기동작을 둔하디 둔한 양손검으로 훌륭하게 막아낸 소리였다. 레오폴드가 다시 미소를 되찾았다. 그는 만족스러운 듯 큭큭댔고 렉스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방어 태세를 풀지 않고 다음 공격을 경계했다.

"넌 결코 행복해지지 못할거다. 이 내가 절대 허락치 않아. 자, 렉스. 우리 마지막 대련을 시작하자. 옛날처럼. 네가 실전같은 대련을 주장했던 그 때 처럼 말이다."

다시 한 번 무섭게 레오폴드가 연속으로 공격해 들어갔다. 렉스는 공격들을 가벼운 몸놀림으로 피하다가 간간히 검을 이용해 막기도 했다. 두 사람은 마치 9년 전 그 날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그 때를 떠올리며 그들은 눈을 마주쳤다. 서로 말하지 않아도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둘은 미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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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쓰는 녀석의 프롤로그인데 본 이야기가 보고 싶어지나요? 모 사이트에 올리긴 하는데 프롤로그가 매력이 없는지 1화부터 조회수가 걍 안 올라가더라고영.

별로 느낌이 안 오면 프롤로그만 뒤집어 엎어버릴 생각이긴 합니다...넵...